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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02. 2022

냉동 만두

항상 의문이었다. 만두를 왜 좋아하지? 만사모(만두를 사랑하는 모임)가 들으면 기함을 할 소리겠지만, 나는 만두의 맛을 잘 몰랐다. 유일하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만두는 납작 만두였는데, 그것도 쫄면과 함께일 때 한정이었다. 납작 만두 속은 당면과 부추 약간이 전부라서 밀가루 맛이 강하다. 기름에 튀기듯이 바싹 구워내면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 난다. 매콤한 쫄면에 납작 만두를 얹으면 끝도 없이 먹을 수 있다. 쫄면의 아삭한 양배추, 오이 같은 야채와 납작 만두의 바삭거리는 식감이 조화롭다. 그 외의 만두는... 왜 좋아하지?


만두에 넣어 먹는 속은 다르게 요리하면 더욱 맛있다. 굳이 고기와 각종 야채를 다지고 뭉쳐서 밀가루에 감싸 먹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기 때문에 만두는 한 두 개 집어먹으면 금방 물린다. 물리면 맛이 없다. 그렇다고 배가 부르지도 않다. 그런데 만두를... 왜 좋아하지?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조는 소식가라서 한 끼에 먹는 양이 적은 편이지만, 냉동 만두는 한 봉지를 한 끼에 모두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걸 앉은자리에서 다 먹지, 물릴 텐데'하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려 보니 옆에서 하나 두 개씩 같이 집어먹고 있더랬다. 하도 맛있게 먹어서 같이 먹긴 했지만 여전히 만두를 끼니로 먹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 곁들임 음식이라면 모를까.

 



지난 주말에 장을 봤다. 여지없이 1+1 행사를 하는 냉동 고기만두를 카트에 넣는 조를 보다가, 문득 왕새우 만두가 눈에 들어왔다. 새우는 정말 좋아하는 식재료다. 작아도 맛있는 새우인데 왕새우면 왕 맛있을 것이고, 그걸 가공 식품으로 내놓았다는 건 더 맛있게 했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도 냉동 왕새우 만두를 카트에 담았다. 물론 1+1 행사 상품이었다.


일주일에 3일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 끼니 챙겨 먹는 게 일이다. 배달 음식은 매번 쏟아지는 일회용품에 죄책감이 느껴져 내키지 않는다. 밀키트도 같은 이유에서 멀리한다. 건강, 환경, 지갑 사정을 모두 고려한다면 결국 직접 끼니를 만들어 먹어야 한다. 눈 깜짝할 새 점심시간이 되어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다 귀찮았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없고,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냉동실에 얌전히 자리 잡은 1+1 냉동 만두였다. 허기가 시장인지라 평소엔 생각도 못했을 만두가 점심 메뉴로 등극했다. 


만두 굽는 법

준비물: 냉동 만두(군만두, 물만두 안 됨), 에어프라이어

조리 단계

1. 먹고 싶은 냉동 만두를 에어프라이어 용기에 담는다.

2.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180도에 10분 굽고, 뒤집어서 다시 5분 구워준다.

3. 그릇에 담아내고 맛있게 먹는다. 끝!


오랜만에 구워 먹는 만두는 충격이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겉면을 베어 물면 속에 가득 찬 육즙이 팡팡 터졌다. 왕새우 만두는 생새우살을 넣은 것처럼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에 바다 향이 일품이었다. 고기만두는 익숙하지만 한 층 고급스러워진 맛으로 기억 속 맛을 덧칠했다. 아니, 만두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내가 만두를 좋아했나? 발전된 현대 기술이 낳은 주방 가전(에어 프라이어)과 연구의 연구를 거듭한 세계적 수준의 한국 간편식(비*고 냉동 만두)의 콜라보가 빚어낸 만두는 한 끼를 대체할 메뉴로 차고 넘치게 재탄생했다.


손가락 살과 맞바꿔 요리한 양파장아찌를 곁들여 만두를 먹었다. 세상에 너무 맛있어, 정말 맛있어, 이런 혼잣말을 연발하면서. 이제 음식에 편견 가지지 말아야지. 




'왜 먹는지 모를' 만두를 '만능 식품' 만두로 재평가하기 전에도 만두가 맛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있다. 23살 때 싱가포르에 교환학생을 갔다. 이미 그곳에 친구 선이 있었다. 선의 친구인 알제리인 사피아와 셋이 함께 딘타이펑을 갔다. 그때만 해도 딘타이펑이 서울에 한 두 곳 정도 지점을 냈을 때라 대구와 부산에서만 지내던 내겐 새로운 식당이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샤오룽바오와 계란볶음밥을 주문했는데, 그 후로도 딘타이펑을 가면 꼭 그렇게 2가지 메뉴를 주문하게 된다. 그게 최고의 조합이다. 


샤오룽바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만두가 맛있다고 느낀 순간이다. 선은 내게 친절하게 샤오룽바오를 먹는 방법을 알려줬다. 먼저, 만두의 머리꼭지처럼 생긴 부분을 살짝 뜯어먹는다. 다음으로 안에 가득 찬 육즙을 호록 마신다. 마지막으로 간장에 절인 생강을 얹어 한 입에 먹는다. 자칫하면 일반 만두처럼 한 입에 먹어 입 안이 홀라당 까질 뻔했다. 갓 찐 샤오룽바오의 육즙은 매우 뜨겁다. 머리꼭지를 얼마나 뜯어먹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육즙이 흘러나올 정도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간장에 절인 생강과의 조합이 환상이다. 따로 먹으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생강인데, 샤오룽바오와 함께라면 이렇게 조화롭다니. 그때 생강을 두 번 인가 리필했다.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모를 음식도 어느새 내가 직접 해 먹는 요리가 된다. 만두 말고 가지, 고수, 샐러리도 그렇다. 음식 외에도 전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맞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달릴 바에 차라리 빠르게 걷지 싶었던 20살짜리는 이제 매주 5킬로를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러너가 되었다. 수학이라면 질색을 했던 고등학생은 정기 통계를 분석하는 기획자가 되었다. 사는 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대체로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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