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송이 Jul 13. 2023

퇴사합니다.

절반쯤 무섭고 절반쯤 설렙니다.


"팀장님, 저... 퇴사하려고요."


이 말을 내뱉기까지가 참 오래 걸렸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퇴사는 응당 맞이하게 될 이벤트다. 하지만 수개월을 고민해야만 했다. 이유는 이 회사를 떠나서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둥지를 틀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하게 됐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가고 싶던 회사에서 마침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내가 지원했고, 마침 팀장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마케터에서 기획자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플랫폼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직이었음에도 굉장히 스무스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3년을 일했다.


3년 중 거의 절반은 재택근무를 했다. 덕분에 출퇴근의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일을 했었다. 그리고 슬슬 재택이 답답해질 무렵, 정부 정책이 완화되면서 일주일에 몇 번은 출근을 하게 되었다. 동시에 회사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나로서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기존의 사무실은 출퇴근 왕복 1시간이었다. 이사한 위치는 출퇴근 왕복이 4시간이다. 차가 막힌다 싶으면 5시간이 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주 골치 아팠지만, 그래도 주에 2~3회 정도만 출근하는 회사의 방침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꾹 참으며 다녔다. 이 업계 대부분의 회사가 채용 공고를 틀어막았던 시기라 딱히 이동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육 개월 정도를 지냈다. 그리고 회사는, 하반기부터 출근을 주 4회로 변경했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향후 몇 년간의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항상 불안했다. 플랜 A, B, C정도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나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면서 시도했던 플랜 A, '이직'은 번번이 실패했다. 대중교통에 갇혀 있는 것이 힘드니, 자차로 출퇴근을 하는 플랜 B는 판교에서 강남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워에 퇴근 3시간을 소요하며 장렬히 포기했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바로 플랜 C, '퇴사'였다.


그래, 퇴사하자.


마음먹은 이후에는 생각보다 쉬웠다. 팀장님께 의사를 밝혔고, 감사하게도 한 번 잡아주셨다. 회사의 휴직이나 병가 제도를 활용해서 좀 쉬다오라는 제안까지 해주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병명이나 의료 기록으로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결국 활용하진 못했지만, 그런 배려를 해주는 사실 자체가 참 감사했다.


퇴사를 확정하고 남은 휴가 일수를 확인한 다음 마지막 출근일을 정했다.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도 완료했다. 이제 남은 건 인사팀과의 면담과 퇴사 서류 제출이다. 하지만 아직 출근일이 약 일주일 정도 남았다.


퇴사를 2번째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이 시기가 회사를 다니기 가장 좋다.


퇴사일이 정해지고 인수인계가 끝난 이 시점. 누구도 나에게 일을 더 하길 기대하지 않고, 퇴사해서 부럽다는 덕담을 던지는 이 시기. 그리고 퇴사 후 할 일의 목록을 적고 기대에 부푼 날들.


나는 31살이다. 누군가는 좀 늦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바라볼 때라고 하고, 누군가는 뭐든 다 해볼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아직 덜 살아봤기에 정답이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은 세 번째가 답이라고 믿고 가보려고 한다. 


"퇴사하고 뭐 할 거예요?"


일단은 좀 쉴 거다. 그리고 그동안 못 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볼 거다. 글도 쓰고, 여행도 가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나는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져서, 사회에 내보일 명함이 사라져서, 무엇하나 생산적이지 못한 나 스스로가 못나 보여서 종종 작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그래볼까? 아니, 살면서 몇 번 더 그런들 그게 무슨 문제일까.


어쨌든 퇴사하는 마당에, 약간 더 자유롭고 즐겁게 잘 살아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