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화이트 타이거
※ 이 리뷰에는 '화이트 타이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게 인도는 특별한 나라다. 20대 초반, 겁도 없이 우리 삼 남매가 인생 첫 배낭여행을 인도에서 함께했고, 그 덕에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는 우여곡절을 쌓은 곳이기 때문이다. 왜 인도가 그토록 끌렸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떠올려 보자면,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선생님이 인도 여행 후 남긴 “인도는 빈과 부가 빈틈없이 맞물린 곳이야. 참 매력적이더라.”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아서였는지도.
여행 이후로 인도와 관련된 이슈라면 관심이 갔다. 대단하게 내세울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내 삶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인도에서 이루어졌기에 내적 친밀감이 높아서일까. 영화에는 특히 그랬다. 다소 엉성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춤과 음악에 어깨가 절로 움직여지는 인도 영화는 어려움 없이 흥겹다. 인도 영화의 면면을 많이 알고 있다고는 전혀 말 못 하지만, 권선징악이 뚜렷한 이야기는 안심하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빈과 부가 빈틈없이 맞물린’ 사회에서 이뤄질 수 있는 사건을, 제대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주인공 발람이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중국 총리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발람은 성공한 인도의 젊은 사업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대리운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말쑥한 헤어에 나름의 사업가 마인드를 장착한 발람은, 살인 혐의로 수배 중이다. 그의 과거는 인도 카스트 중에서도 하층 계급이다. 발람이 어떻게 하층 카스트에서 성공한 사업자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 그 서사를 짚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얼개다.
발람은 어릴 적부터 명석한 머리가 빛을 발해 큰 도시로 유학 갈 기회가 생겼지만, 대대로 가족을 꽉 잡고 있는 교활한 할머니에게 저지당한다. 그리고 꼼짝없이 집안의 노예로 과자 가게를 이끌고, 때가 되면 결혼해 아이를 낳아 새로운 노예를 공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발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다, 지주인 황새의 두 번째 아들 아쇽이 눈에 들어온다. 발람은 스스로 자신의 주인으로 아쇽을 택한다.
발람은 아쇽의 두 번째 운전수의 자리를 차지한다.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첫 번째 운전수의 약점을 잡아 그를 쫓아내고, 가장 측근 하인으로 자리 잡는다. 발람에겐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마인드를 장착한 아쇽과 그의 아내 핑키가 한없이 평등하고 공평한 주인으로 보인다. 그들을 보필하기 위해 떠난 델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주인을 속여 이득을 취할 궁리를 하는 다른 하인들과는 달리 변치 않는 순수한 충정이 다져진다. 그 과정에서, 발람의 눈엔 보이지 않았을 아쇽과 핑키의 위선적인 면모는 관객에게 손톱에 박힌 작은 가시 같이 불쾌감을 콕콕 자극한다.
아쇽과 핑키는 발람에게 친절한 듯 보인다. 발람에게 함부로 손찌검하고 천대하는 아쇽의 아버지와 형과는 달라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절은 가진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선의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에게 절대 저항할 수 없는 발람을 알기에 기분에 따라, 혹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발람을 휘두른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발람이 양치를 하지 않고, 사타구니를 긁는 것을 면전에서 역겹다며 지적하다가도 왜 제대로 배우려고 생각하지 않냐며 응원을 빙자한 탓을 하고, 발람이 구걸하는 소녀에게 함부로 말했다는 이유로 밤거리에 두고 가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홀로 남겨진 발람은 실직이자 밥줄의 위기감을 느낄 정도인데도. 심지어, 발람의 앞에서 성적인 행위를 하며 그의 존재를 그림자처럼 여긴다.
견고한 발람의 충정은 핑키의 살인을 기점으로 서서히 무너진다. 핑키는 자신의 생일날 술에 취해 발람의 자리를 빼앗아 차를 몰다가 한 소녀를 친다. 아쇽과 핑키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떤다. 발람은 그들을 위해 빈민 소녀 한 명이 죽은 건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을 거라며 안심시키지만 아쇽의 형은 더욱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들은 발람이 혼자 차를 몰다가 소녀를 죽였다고 증언하라며 발람을 협박한다. 결국 그 사건은 경찰에 신고가 되지 않아 유야무야 묻히지만, 그로 인해 핑키는 아쇽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고 발람은 믿어 의심치 않던 주인들의 실체를 마주한다.
핑키가 떠나고 아쇽은 무너지고, 발람은 여느 델리의 하인들과 같이 가끔씩 아쇽을 속이며 자기의 돈을 모아간다. 어느 날, 발람은 자신을 찾아온 먼 조카를 아쇽에게 소개한다. 아쇽은 너그럽게 휴가를 주지만, 그건 발람이 아닌 다른 운전수의 면접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조카와 함께 동물원을 방문한 발람은 한 세대에 딱 한 개체만 태어난다는 ‘화이트 타이거’를 만난다. 어릴 적, 시골 학교에서 명석한 두뇌로 “네가 바로 화이트 타이거야”라는 말을 들었던 발람. 그는 이대로는 절대 벗어나지 못할 현실을 깨닫는다. 평생을 닭장에서 산 닭은 문이 열려도 닭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문이 보이지 않는 듯이, 나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듯이. 발람은 이전부터 열려있었지만 외면하던 그 문으로 뛰쳐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쇽을 죽인다.
영화에서 발람은 두 번 기절한다. 어릴 적,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하던 아빠의 장례식에서 한 번, 동물원에서 백호를 보고 한 번. 두 번의 기절 모두 발람의 삶에 기점이 된다. 첫 번째 기절은 아버지의 삶의 마지막을 보고 자신은 가족(정확히는 할머니)이 만든 닭장에 갇혀있다는 걸 깨닫는다. 할머니가 지시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고 살기로 결심하고 아쇽을 택한다. 두 번째 기절은 닭장을 뛰쳐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계급이라는 닭장에 갇힌 닭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벗어났으면서도 여전히 하인이고, 주인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스페어타이어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열린 문으로 뛰쳐나가기로 결심한다.
아쇽을 죽인 후, 발람은 조카와 함께 떠난다. 아쇽의 아버지와 형에 의해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이 죽임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짐작해도 돌아보지 않는다. 발람은 아쇽에게 배운 사업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뇌물로 경쟁자를 없애고, 아쇽이 남긴 돈으로 남다른 퀄리티의 차량을 공급하고, 자신의 가족이라 칭하는 기사들이 사고로 빈민 소년을 치더라도 돈으로 대신 사죄한다. 하인으로 살지 않는 법을 알게 된 발람은 승승장구한다. 자신이 죽인 주인, ‘아쇽’의 이름을 달고.
경쾌한 톤으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도 발람의 심리 변화를 빠트리지 않는다. 발람을 이해하고, 발람의 성공을 응원하게 만든다. 기형적인 인도의 카스트와 빈부격차, 그 속의 위압적이거나 혹은 위선적인 지배자, 그리고 감히 위로 올라갈 생각조차 못하는 빈민층의 모습을 보자면 발람의 편에 서지 않기란 힘들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엔 잘 만들어진 영화가 주는 유쾌함과 동시에 풀리지 않은 찝찝함이 마음에 남는다. 발람은 본인은 자신의 주인들과 다르다고 거듭 강조한다. 자신의 직원들을 가족이라 칭하고, 업무 상 발생한 사고(그게 살인일지라도)에는 유가족에게 돈으로 보상하며 책임진다고 말한다. 발람에게는 닭장을 뛰쳐나와 지배자로 서게 된 자부심이 보인다. 돈으로 아래를 억압하고 휘두르던 이전의 주인들과,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는 발람이 앞으로도 쭉 다를 수 있을까?
리뷰를 위해 영화를 다시 보며 제목에 대해 생각했다. ‘화이트 타이거’는 어릴 적 명석한 발람이 들었던 칭찬이자 한 세대에 한 개체만 태어난다는 특별하고 신성한 존재다. 그런 존재가 왜 하필이면 동물원 철창에 갇힌 모습으로 영화에 보였을까? 닭장을 뛰쳐나온 발람은 화이트 타이거(지배자)가 되지만 여전히 철장에 갇혀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발람의 주인이었던 지주 황새의 첫 번째 아들 몽구스는 아쇽과 반대되는 인물이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인물. 아쇽이 미국이 미래이니 IT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몽구스는 중국이 미래고 석탄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아이러니하게도, 몽구스를 싫어하고 아쇽을 따랐던 발람은 영화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인도와 중국이 미래다.” 발람의 이상향은 아쇽이었지만, 현실은 몽구스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보는 내내 막힘없었지만, 그 이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잘 만들어진 인도 영화였다.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