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튼 Feb 11. 2019

니 할 거 해



늦은 밤. 한산한 버거킹 실내.  


매장 창가 테이블에 20대 후반의 여자1여자2가 마주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길게 세 번 울린다.

여자1은 휴대폰 화면을 본 다음 테이블에 뒤집어 놓는다. 진동음이 꺼진다.


여자2    (웃으며) 살아 있네. 

여자1    (고갤 저으며) 미친 놈이야.

여자2    누군데.

여자1    신입.


곧 이어 다시 여자1의 휴대폰이 길게 두 번 진동한다.  

여자1은 눈길도 주지 않고 얼른 휴대폰을 들었다 뒤집는다. 진동음이 꺼진다.

그 모습을 보고 여자2가 웃는다.


여자2    어쩜 좋아.

여자1    외국 살다 온 애라 그런가? 개념이 우리랑 약간 다른 거 같애.


카운터의 점원이 “613번 고객님~ 613번 고객님~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라고 외친다.


여자2    (번호표를 보더니) 갔다 올게.


여자2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여자1은 테이블 위에 뒤집어진 자기 휴대폰을 본다.

잠시 후 여자2가 감자튀김 하나와 콜라 두 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여자1    땡큐.

여자2    남자친구는 뭐라 안 그래?

여자1    뭘.


여자2가 턱짓으로 여자1의 휴대전화를 가리킨다.


여자1    이런 걸 뭐하러 얘기해.

여자2    너 맨날 남친이랑 세시간씩 통화한다며.  

여자1    요즘은 잘 안해. 그냥... 매일 잠깐 얼굴만 보고 말지.


테이블 위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짧게 한 번 울리고 그친다.

여자1은 휴대폰을 들어 액정화면을 본 다음 조용히 뒤집어 놓는다.  


여자2    (케첩을 뜯어 쟁반 종이 위에 짜며) 매일 볼라면 그것도 일이겠다.

여자1    난 괜찮은데 걔가 힘들지. (사이) 너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알아?

여자2    제목만 들어 봤어.

여자1    내가 얼마 전에 걔한테 사람들 대하는 게 너무 지친다고 그런 적이 있어. 그랬더니 걔가 이 책을 오다 줏었다 그러면서 주는거야.

여자2    내용은 어때? 재밋어?

여자1    나는 좋았어. 전부터 읽고 싶었거든. 그래서 한 절반쯤 읽고 있는데 있지, 책에 분홍색 형광펜 밑줄이 쭉 그어져 있는 거야. 여백엔 작은 글씨로 뭐라고 적혀 있고.

여자2    (웃으며) 남친이가 엄청 감명 깊게 읽었나 보네.

여자1    근데 그게 여자 글씨인거지.

여자2    대-박.

여자1    아닐 수도 있어. 내가 걔 글씨를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여자2    물어 봐. 진짜로 오다 줏은 거냐고.  

여자1    성의가 어디야.


여자1은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여자2    그래서 책은 다 봤어?

여자1    거기까지만 읽었어.

여자2    내일 니 방 들를게, 나 좀 빌려 주라.  

여자1    나 오후엔 어디 가봐야 될지도 몰라.  

여자2    아침 10시는 너무 이른가?

여자1    더 일찍 와도 좋고.

여자2    알았어. 빨리 갈께.


여자1여자2가 감자 튀김을 번갈아 집어 먹는다.


잠시 후 여자1의 휴대폰 진동이 짧게 두 번 울린다.

여자1휴대폰을 들고 화면 잠금패턴을 푼다.


여자2    미친 놈?


여자1은 대답없이 한 손 엄지로 열심히 액정화면을 두드린다.

여자2는 감자튀김을 집던 엄지와 검지를 휴지에 톡톡 두드려 닦는.




끝   

매거진의 이전글 두 쌤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