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첫 번째 웹 브라우저 전쟁이 열렸다. 모자이크, 넷스케이프, 오페라 등 당시의 혁신적인 브라우저들이 등장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하며 시장을 지배했다. 이후 2010년대 들어 구글의 크롬이 등장해 PC 환경의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과 함께 애플 사파리가 모바일 환경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넓혔다. 첫번째 전쟁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가, 두번째 전쟁은 구글의 크롬이 시장을 지배했다. 그런데, AI의 전면적 보편화와 함께 세 번째 브라우저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경쟁의 주역은 AI 기업들이다. OpenAI, 퍼플렉시티(Perplexity), 젠스파크(GenSpark), 디아(Dia) 등 새로운 AI 전용 브라우저들이 속속 등장하며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웹 페이지 열람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의 작업과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지능형 인터페이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AI 챗봇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AI 기반으로 브라우징을 할 수 있다.
퍼플렉시티는 2025년 7월 ‘코멧(Comet)’이라는 이름의 AI 브라우저를 발표했다. 크로미움 기반에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이메일 요약, 탭 관리, 예약과 결제, 문서 작성 등 다양한 작업을 자연어 명령만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초기에는 월 200달러 요금제 가입자에게만 제공하지만 퍼플렉시티는 브라우저가 AI 서비스의 핵심 실행 환경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OpenAI 역시 크로미움 기반의 자체 AI 브라우저를 준비 중이며 채팅 기반 인터페이스로 검색과 동시에 예약, 양식 작성, 콘텐츠 생성 등 복합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젠스파크 역시 광고 차단과 개인정보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면서 사용자가 보고 있는 페이지 뒤에서 자동으로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또한 디아는 AI 전문 기업인 ‘The Browser Company’가 직접 개발한 AI 전용 브라우저다. 탭마다 AI 챗봇이 내장되어 있어서 사용자가 웹 페이지를 읽는 맥락을 파악하고 요약·정리에 활용할 수 있다. 탭 간 대화, 요약, 쇼핑 또는 이메일 작성 보조 즉 ‘웹을 넘는 조수’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이들 브라우저들은 AI 기능이 브라우저의 중심에 있다.
미국 법원은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불법적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그에 대한 규제 조치로 크롬 브라우저의 매각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Perplexity는 이런 법적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구글 크롬 인수를 제안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인수 금액은 45조(345억 달러) 전액 현금 조건으로 크롬의 사용자 기반과 기술 자산을 확보해 코멧 브라우저의 영향력을 단기간에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구글 검색을 기본 엔진으로 유지하고 크롬을 오픈소스로 계속 제공하겠다는 조건까지 제시했지만 크롬의 시장 지위와 구글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성사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이 제안은 AI 브라우저 기업들이 얼마나 공격적으로 시장 점유를 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세 번째 브라우저 전쟁의 본질은 사용 경험의 전환에 있다. 과거 브라우저 경쟁이 속도, 호환성, 보안과 같은 기술적 성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AI를 통한 ‘대화형 인터페이스’와 ‘작업 자동화’가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사용자는 더 이상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대신 자연어로 요청하고 곧바로 결과를 받게 된다. 브라우저는 페이지를 단순히 렌더링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디지털 활동을 통합적으로 중개하는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특히 AI 기업은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어떤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결하든 로그인 아이디, 암호는 물론 평소 자주 사용하는 메뉴 등의 사용 습관과 정보를 기억해 보다 완전한 웹 서비스 사용을 도와주어 Agent 기능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향후 수익 모델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광고 노출과 클릭 기반의 기존 웹 수익 구조는 AI 브라우저 환경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다. 대화형 검색과 자동화된 정보 제공으로 페이지 방문 자체가 줄어들면 검색 광고와 배너 광고의 단가와 총량 모두 감소한다. 대신 AI 연산과 에이전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량 기반 요금제, 프리미엄 구독 모델, 기업용 맞춤형 라이선스가 주류 수익원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브라우저가 단순한 무료 진입로가 아니라 ‘AI 운영체제(AI OS)’로 기능하게 되면, OS처럼 장기적인 잠금효과(lock-in)가 발생한다.
시장 구조도 재편된다. AI 브라우저는 단순 웹 서핑 도구가 아니라 사용자 행동·문서·앱·결제·업무 자동화를 통합하는 ‘프라이머리 디지털 허브’가 될 것이며 이를 둘러싼 데이터 소유권과 API 경제가 핵심 경쟁 축으로 부상한다. 브라우저 자체가 클라우드-에지 연산, 로컬 모델 실행, 멀티 디바이스 동기화를 모두 관할하는 ‘개인화된 AI 인프라’ 역할을 하게 되면 현재의 검색·광고 중심 빅테크 질서는 클라우드·모바일·AI 인프라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결국 향후 3년 내 AI 브라우저 경쟁은 ‘브라우저 점유율’보다 사용자 AI 생태계 점유율로 귀결된다. 개인과 기업이 어느 AI 브라우저를 중심으로 업무·검색·쇼핑·콘텐츠 제작을 통합하느냐가 IT 시장의 패권 경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전쟁은 인터넷 사용 방식을 재정의하는 동시에 브라우저를 중심으로 한 AI 퍼스널 OS 시대의 서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