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징조와 연인들> / 우다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요즘 한국 작가들의 단편을 읽고 있다.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과 박완서의 <이별의 김포공항>에 이어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 우다영의 단편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읽었다. 내가 느끼기에 우다영에게는 그만의 색이 있다. 소설 내에서 그려진 우연의 필연성 및 자체적 완결성이라던가,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서술 같은 것들. 그리고 양자역학의 평행세계라는 개념을 문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방식. 꾸준히 자취를 따라가며 읽어볼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밤의 징조와 연인들>, <노크>, <조커>, <얼굴 없는 딸들>, <미래와 밤>,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 <셋>, <크림>. 이 중 인상 깊었던 소설을 고르라면 <조커>, <기분에 이르는 유령들>, <셋>을 꼽겠다. <조커>는 우다영의 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연의 필연성, 선택의 기로에서 갈라지는 두 개의 세계, 소설 내에서 자체적으로 완결되는,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징조들.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입양된 오빠가 개에게 물려 다치는 것을 본 뒤 그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을 것이 분명한 그 두 가지 일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연결되고 오빠에 대한 죄책감을 남긴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인간의 희생에 대한 감각, 공물 혹은 제물의 역사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인간은 어떤 일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찾는다. 무언가를 희생하면 그만큼 보상을 얻을 것이다, 무언가를 바치면 그에 맞는 결과가 따를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객관적으로 연관관계가 없음에도 인간은 어떤 인과관계 또는 필연성을 찾기 위해 거짓된 논리를 마음속으로 세운다. 현대의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제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오늘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좋은 일이 생겼다면 인간은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어제 액땜해서 그런가?라고. 이렇듯 인간은 수많은 필연적 우연, 독립적 사건들의 집합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인 것이다. 거짓되고 비합리적인 의미를 말이다. <조커>는 우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만든 거짓된 의미, 허상에 매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조커>의 후반부는 선택의 기로에서 갈라진 세계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과거에 카페에서 소개받기로 했던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아는 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주인공의 아내는 선물로 긴 부츠를 준비한다. 너무 답답하지 않겠냐는 주인공의 말에 아내는 대답한다. 발목에 개에 물린 상처가 있어서 드러나는 걸 싫어한다고. 주인공의 과거에 카페에서 소개받기로 했던, 발목에 개에게 물린 상처가 있던 잡화 디자이너를 떠올린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때 소개받기로 했던 여자와 만나 결혼한 자신을 상상한다. 묘한 점은 그것이 전혀 상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소설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주인공에서 발목을 개에게 물린 잡화 디자이너와 결혼한 주인공으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 속에서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주인공과 잡화 디자이너와 결혼한 주인공이 모두 현실처럼 보인다. 삶의 불확실성을 두 갈래의 다른, 그러면서도 어딘가에서 중첩된 세계로 표현하는 결말은 매력적이었다. 양자역학에는 평행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지점마다 그 선택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결과의 세계가 각각 갈라져 전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지점들은 서로 어딘가에서 겹칠지도 모른다. 개에게 발목을 물린 상처가 주인공에게도, 카페에서 만난 여자의 오빠에게도, 소개받기로 되어 있던 잡화 디자이너에게도, 주인공을 초대한 부부의 아내에게도 존재하듯이.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서로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는 우연적 필연으로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우다영의 소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다 앞을 봤는데, 놀이터의 사람 없는 그네가 흔들리는 박자가 노래의 박자와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의 감각. 누군가는 대단한 우연이라고 말하는, 다른 누군가는 놀라운 필연이라고 말하는 그런 순간.
소설 속 한 문장
작은 우연이 의외의 패를 만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