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늘 식혜가 있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드는 것이었는데 어린 나는 모든 식혜가 그런 맛이리라 생각했다. 시원하고 청량하면서도 과하게 달지 않아 입이 텁텁하지 않았고 가볍게 부스러지는 무른 밥알은 쌀의 은은한 단맛을 혀 위에 남겼다. 그래서 처음으로 캔에 든 식혜를 먹었을 때 아니 이게 무슨 식혜야 하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것은 밥알이 있다는 것을 빼면 할머니의 식혜와는 너무 달라서 나는 그 또한 식혜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캔 식혜도 식혜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여 남은 밥알까지 털어먹을 나이가 됐을 즈음 할머니는 집보다 병원을 더 자주 드나들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고장 나 투석을 하기 시작했고 손발 끝이 조금씩 거뭇해졌다. 할머니 댁을 갈 때마다 할머니는 조금씩 변해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발을 바닥에 질질 끌었으며 밖에 나갈 때는 휠체어를 탔다. 최근 몇 년간 할머니는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코로나가 조금 잦아들고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아갔을 때 이모들은 나를 할머니 앞에 앉히고 첫째 손주가 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흐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그 잠시 동안 내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짧고도 긴 침묵 뒤에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가 나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곳에 있던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침 아홉 시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열한 시쯤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보는 이모들과 삼촌, 사촌 동생들이 모여 있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몇 년간 깊고도 긴 고통에 시달렸던 할머니를 보며 모두가 할머니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장례식은 정신없이 바빴다. 손님이 새벽까지 이어졌고 잠이 부족한 채 식사와 안주, 술과 음료를 날랐다. 테이블마다 기본으로 올라가는 음료 중에 캔 식혜가 있었다. 술과 탄산음료에 지쳐 캔 식혜를 한 모금 마시자 할머니의 식혜를 먹고 싶어졌는데 그것은 불가능했고 심지어 그 맛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십 년이 넘게 마시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저 그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 곱게 부스러지는 밥알의 이미지만이 혀 위가 아닌 머릿속에 막연하게 떠올랐다.
둘째 날 오전, 장례지도사가 친족들을 모두 불렀다. 입관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귓속말로 어머니를 잘 잡아주라고 했다. 나는 입관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는 목부터 발끝까지 삼베 천으로 꽁꽁 싸인 할머니가 얼굴만 내놓고 누워있었다. 어머니와 이모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트렸고 삼촌은 벽을 보았다. 장례지도사는 정중한 목소리로 고인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시간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딸들은 죽은 할머니의 얼굴과 몸과 머리카락을 만지며 울고 사과하고 쓰러졌다. 나는 오열하는 어머니의 팔을 지탱하며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살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늘어진 채 굳어 있었고 피부는 딱딱하고 차가웠으며 고인 피가 만들어낸 검푸른 자국들이 군데군데 올라와 있었다. 그것은 그저 무생물에 불과해서 슬프기는커녕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듯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는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가운데 홀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굉장한 잘못을 하는 것만 같아 억지로 슬픔을 숨기고 있는 척 진중한 무표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늘어선 친족들이 우는 동안 할머니의 관을 운구할 때도 내 머릿속은 뭐가 이렇게 무겁냐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실제로 관은 정말, 매우 무거웠는데 할머니의 시체만이 들어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무게였다. 나는 장례식장 측의 실수로 염을 할 때 쓰던 도구들이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관을 들고 리무진이 들어갈 수 없는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파헤쳐진 무덤 안에 낑낑대며 관을 내려놓은 뒤에는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할머니의 집에 모여 유품 정리를 시작했다. 옷들은 전부 모아 의류 수거함에 넣었고 가방과 이불은 일반쓰레기로, 휠체어와 이동식 환자 침대에는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였다. 마지막이 부엌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냉장고에는 뭔지 모를 검고 하얗고 진득한 액체들이 곳곳에 눌어붙어 있었고 싹이 난 마늘과 썩어 문드러진 양파가 나왔다. 나는 냄새가 지독한 냉장고를 피해 싱크대와 찬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코를 막고 키친타월에 물을 묻혀 싱크대의 얼룩을 문지르다가 찬장을 열었다.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북이 울리듯 둥둥거리는 소리가 비눗방울처럼 터지다 서서히 잦아들었다. 깨끗하게 세척된 빈 페트병들이 싱크대 안에, 전기레인지 위에, 내 발 주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바닥에 앉은 할머니가 양 발바닥 사이에 빨간 깔때기를 꽂은 페트병을 놓고 식혜를 붓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반투명한 액체 속에서 하얀 밥알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할머니는 식혜를 붓기 전에 통을 잘 흔들어줘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밥알이 바닥에 천지로 남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통을 한참 동안 시계 방향으로 휘휘 흔든 뒤 조심스럽게 식혜를 부었고 그러면 페트병마다 적당한 양의 밥알이 들어갔다. 할머니는 식혜를 만들기는커녕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진 뒤에도 싱크대 앞에 서서 손주들이 마시고 남은 페트병을 하나하나 씻었을 것이다. 작은 콜라병에는 참기름을, 오렌지주스 병에는 매실액을, 커다란 사이다병에는 식혜를 담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빈 페트병들은 뚜껑을 열고 찌그러뜨려 커다란 비닐에 넣은 뒤 플라스틱을 모으는 곳에 내놓았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지금도 나는 식혜를 먹을 때면 캔을 시계방향으로 휘휘 흔든다. 적당한 양의 밥알이 입안에 들어오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