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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Aug 06. 2020

세상에 없는 딸

세상에 없는 딸로 살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아빠가 아프고 나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엄마는 풀타임 간호인이 되었고, 나는 ‘힘을 내요 슈퍼파월 워킹맘’이 되었다. 아침밥을 차려주시던 엄마는 병원 갈 준비를 하셔야 했기에 혼자 준비하고 먹고 가게 되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불 꺼진 집이 나를 맞이하였고, 엄마가 떠난 그대로의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워킹맘 가정주부의 평범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하긴 30살이 어리지는 않긴 하지) 주부가 되다! 갑자기 늘어난 내 역할 변경에 한동안은 집에 들어갈 때 어색했다.


슈퍼파워 워킹맘이 되다! 간병보다는 집안일이 나을 것 같단 말이지.


 뿐만 아니라 퇴근 후 아빠 병원에 자주 들려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는 일이 많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가 풀타임 간호인을 자청하셨기에 난 그 역할은 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이 앞다투어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했고, 엄마와 동생, 나는 원래부터 있던 일이었던 양 의연하게 보호자 역할을 시작했다. 단 한 달 만에 엄마와 나는 새로운 직업이 생긴 것이다.


 조용한 병원에서 오랫동안 아무것도 환자의 옆에서 있는 것 어려운 일이었다. 암병동은 성모병원의 병실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10층이 넘어갈 때쯤부터는 그래야만 해야 한다고 약속이라도 한 듯 엘리베이터를 탄 모두가 침묵한다.

 

 간병이란 무게를 견디는 일이었다. 암병동에 있는 환자, 보호자, 의료인 모두는 암이란 단어로 시작하는 인생의 묵직한 짓누름에 꿋꿋이 버티는 존재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퇴근 후 집안일은 나에게 가장 가벼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직장을 마친 후 저녁쯤 병원으로 엄마보다 훨씬 늦게 출근 도장만 찍고 퇴근하는 날라리 딸이 되었다.


세상에 없는 딸 동글이


 이맘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되었다. 나는 효녀도 하고 싶고 집안 일도 잘하고 싶고 직장에서도 매일의 과업을 잘 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도 장녀로서 의연하고 싶었고 직장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지내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없는 딸’이 되려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평판에 목을 맸을까. 굳이 의연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평판이라기보다 나로 인한 걱정을 더 끼치지 않고 싶었다. 아빠, 엄마, 동생 모두 이미 충분히 어깨가 무거웠기에 짐이 되기보다는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어디 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니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엄마도 나랑 비슷한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엄마도 아주 훌륭한 ‘세상에 없는 암환자 아내’ 역할을 하려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지쳐있을 무렵, 지하철을 타고 강남 성모병원이 있는 고속터미널에서 집까지 오며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잠시 지금을 잊고 작가가 초대한 세계로 잠시 여행하는 시간이 되어 달콤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책에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설명하는데 긴 말이 필요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있는 그대로 투명한 사람’이라고 쓰여진 구절을 봤다.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그 문장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암환자 가족의 애로사항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은 함께 지구만큼 묵직한 무게를 들고 견디는 중이다. 그러기에 모두는 잠깐 어깨 운동하며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더라도 질병이 완벽히 종료되기 이전엔 가족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묵직한 무게의 총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쉬어봤자 가족 중 다른 사람이 짊어져야 할 질량만 늘어나기에 쉬더라도 곧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무게를 지게 된다.


"어휴, 저 사람은 가족이 저렇게 아픈데 저렇게 대충 간병해도 되는 건가"

 때때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물어보게 된다. 내 가족이 아픈데 내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믿도 끝도 없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굳이 간병하지 않아도 가족이며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무게를 지고 있기에,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근육을 조금씩 튼튼하게 훈련 중


 암환자가 처음이듯이 암환자 가족도 처음이다. 할 수 있는 만큼씩 무게를 지탱하는 근육을 늘리면 되는 일이다. 세상에 없는 딸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튼튼한 마음 근육을 가진 나로 살면 될 뿐이다. 또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늘 성장하려 노력하는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세상에 없는 훌륭한 암환자가족’이 되기보다 그냥 나로 살라고 조언했다. ‘그래 뭐 어때! 24시간 대기조가 아니면 뭐 어때. 나는 최선을 다 다하는걸. 내 선에서의 최선을 다하면서 간병을 지속하는 훌륭한 가족이 될래’.  나는 세상에 있는 멋진 암환자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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