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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Aug 07. 2020

가장 평등한 곳

대한민국에 살아있는 가장 평등한 곳 중에 한 곳은 6인실 병동일 것이다.

 키가 크던 작던 어떤 사람이던 상관없이 대략 1.5평의 침대 크기, 순면 코튼으로 이루어진 같은 무늬의 홑겹의 환자복(한 줌의 내복도 허용되지 않는다), 침대 옆 은색의 링거 봉 1개. 모두에게 주어진 같은 양의 소독제와 비누 어메니티가 있는 곳. 이곳은 6인실 병동이다.


창가 자리는 언제나 베스트


 아빠는 버킷림프종으로 혈액암 중에서도 좀 희귀한 암이어서 한번 입원하면 대략 3주 이상의 치료기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나는 수시로 병동에 방문했었다. 혈액암 병동은 19층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뷰가 꽤나 괜찮았다.


 병실 뷰와 침대 위치는 환자들에게는 아주 큰 관심사였다. 유명 음식점처럼 창가 자리는 언제나 베스트 자리로 원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창가에 침상이 배정될 경우, 보호자 간이침대에 다른 침상과 겹치지 않고 창가 쪽 여유 공간을 더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더 프라이빗한 공간이었기에 모든 환자들이 원했다.


“허허허 여기 경치가 참 괜찮단 말이야. 조달청도 다 보이고”

“아빠 거의 호텔로 요양 온 거 아냐. 아빤 지금 강남 호텔 뷰를 누리는 거야!” 


아빠가 병실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을 때 종종 하던 말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빠가 기분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맞장구를 쳤다. 공교롭게도 아빠가 입원한 성모병원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 강남의 유명 호텔과 아파트들 사이에 위치한다. 게다가 아빠가 머물던 병실은 19층이었으니 반포지역 한 복판이 한 번에 보이는 경치를 가지고 있었다.


병캉스 시작


 아마 호텔에 놀러 가거나 고속터미널역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빠가 있는 병동의 풍경과 비슷한 풍경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러니 함이 아닐 수 없다. 가장 부유한 곳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과 가장 가난한 마음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풍경이 같다니. 우울한 기분과 쳐 저 있음은 간병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여기가 최고의 병캉스 호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병동 로비를 돌아다녔다.


병실이 주는 평등함은 온누리에


 병실은 외부와 병실 만을 평등하게 하지 않는다. 6인실 내부에서도 평등함은 실현된다. 병실이 아닌 사회에서 만났다면 입은 옷과 행색 등이 다들 달랐을 사람들이지만, 혈액암 6인실 병실에서는 환자와 환자 가족으로 정의될 뿐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점들은 희석되고 흐려진다. 그나마 간병으로 마음이 지친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다.


 나도 병원에서는 ‘선생 동글’이 아닌 그냥 ‘아빠 딸’로 살면 됐다. 그런 사실이 암환자 가족에게도 오히려 자유함을 주었을 것이다. 선생이란 모름지기 근엄해야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어 학교 근처에서는 길거리를 걸으며 핸드폰 하기도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그저  '아빠 딸'인 나는 병원에서 간병인 침대에 누워서 한숨 자기도 하고 미니 냉장고에서 알로에 병주스를 하나 꺼내 까먹기도 했다.


 사회의 계급장을 떼고 6인실 병동으로 들어온 가족들은 서로 ‘땡땡 환자 가족’으로 살았다. 서로의 말못할 사정을 옆에서 목도했기에 부끄러운 것이 없어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며 조심조심 친해졌다.


계급장 뗀 내 모습을 조금 일찍 마주하니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계급장을 얻기 치열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장 한 장 쌓아지는 나의 계급장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게 매일의 삶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쓴맛은 이런 반짝이는 것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특히 암은 죽을 때나 느끼게 되는 한 꺼풀의 코팅도 되지 않은 내 존재 자체의 모습을 일찍 마주하게 한다. 억울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누구나 맞이하는 순간을 조금 더 일찍 마주하는 것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내 존재 자체를 마주하며 무력감과 자유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없기에 더욱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무력감과 자유함 중,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나의 태도라는 내 자유의지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함을 선택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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