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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Aug 30. 2020

내 팔자에 대한 오해

난 주면 줬지 도움 받을 일은 없는 사람으로 타고난 팔자인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팔자가 바뀌기도 하네


 살면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청하며 지낸 일이 별로 없던것 같다. ‘앓느니 죽지’ 라는 생각에 도와달라고 구차스럽게 말하기보다 그냥 내가 해버리는 성격탓이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다보니 요구와 부탁을 자꾸 반복하며 사는 사람이 일을 무책임하게 하는 경우를 자주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나보다.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했지만 닮고 싶지는 않았기에 도움과 부탁을 하지 않는게 나의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보면 팔자도 바뀌나보다. 아빠가 암에 걸리고 난 후,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은것들이 있다. 역시 함부로 단정하는게 아니다. 아빠도 살다보니 이렇게 상황이 바뀌게 되기도 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녹슬지 않았던 나의 부탁 스킬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서 병원에 있는 순간만큼은 가벼운 엉덩이로 부지런하게 지내자고 다짐했다. 암환자는 지속적인 상태체크가 중요하다. 그래서 열이 조금이라도 오르거나 떨어지는 순간을 예민하게 잡아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마시는 물의 양과 소화활동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항을 체크해야했다. 혈액암 병동에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일중 하나가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항암제를 투여하는 것(낮밤의 구분이 없음)과 시간에 맞춘 생리현상 체크와, 열체크이다. 전부다 시간을 놓치면 안되는 것들이었다. 




 병원에는 환자가 늘 많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환자 병동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들을 맡았기에 늘 바빴다. 내 자존심보다 중요한 지킬것이 있으니 부탁에 부끄러움이 없어져 간호사 선생님이 계셔야 하는 시간에는 쪼르르 달려가서 봐달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나는 뭔가 이상이 있어 보이는 순간에 간호사 선생님들께 “바쁘시지만 오셔서 열체크를 한번 부탁드려요”하고 쪼르르 병동 중간의 간호 데스크로 달려나가 말씀드렸다. 


 여러번 달려나가 간호사 선생님이 ‘에휴 불쌍한 녀석. 한번 가서 봐줘야지’라는 얼굴 표정을 보일때쯤 ‘성공이다!’ 하면서 마음 속의 쾌재를 부른적도 있다. 살면서 사용하지 않아 녹슬고 먼지 앉은 줄만 날았던 나의 부탁스킬은 연마를 통해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의사선생님에게 병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알음알음으로 아는 분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들을 하나 둘 씩 해갔다.


달콤한 도움


“동글! 우리가 괜찮으면 잠시 가도 될까요?”

 도움은 부탁과 요구를 통해서 겨우 얻어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던 것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안부를 물으며 이것저것 도와줄 것이 있는지 미리 살펴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지금 당장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무언가 바라지 않고 우리 가족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반찬, 액수에 상관없는 금전, 상담과 위로 등 다양한 것을 거저 받았다. 그리고 힘들 때 도움을 받는 것은 더욱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주변 사람들의 애사는 꼭 잊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사실 거저 받은 것들로 사네요.


 이런 일을 겪으니 인생이란 엎치락 뒤치락 하기에 늘 겸손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베푸는 쪽이어서 손해보는 것만 같았던 내 팔자도 하루아침에 바뀔지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손해도 아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가만히 보면 다 거저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어질 때는 한 순간이고 그날이 언제일지 사람은 알 수 없다.


 부탁 또한 잘못되거나 부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남들은 줄 수 있기에 주는 것 뿐이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사심없이 주었듯 남도 그랬다. 그러니까 굳이 너무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가 더 많이 줄 수 있는 시기에 주면 되는 것이다. 간단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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