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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태일 Jul 27. 2023

면접관曰,
창업하셨어요?

나는 독립꾼입니다. ep.16



창업 후 1년 1개월이 되었다. 여전히 코로나19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뉴스에선 그다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 같다. 작년 이 맘때쯤에 창업을 하면서 코로나19로 더 움츠렸던 겨울이 생경하다. 하지만 1년 동안을 정리하면 '에너지 가득한 2022년'을 보냈던 건 확실하다. 퇴사와 동시에 아이가 태어났고, 창업을 하며 크고 작은 행운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움츠려들 수밖에 없는 겨울 한가운데 서있다. 창업자가 아닌 '피고용자'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채용을 고려하는 고용인이 아닌, 면접을 통해 취업이 되어야 하는 피고용인이 되었다. 결국 '생존'을 위한 투쟁은 똑같다.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을 위해 안전한 일상을 구축해야 하며, '나'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월이 되었고 면접을 위해 옷매무새를 다듬고 집을 나섰다.




"회사를 창업하신 건가요?"



채용시장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수많은 '훌륭한 인재를 찾는 헌터'들이 있다. 11년 만의 이직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리더급의 연차라서 인지 '헤드헌터'라는 분들에게 종종 포지션 제안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광고, 마케팅 등의 에이전시들은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도 '혹시 아는 분 계세요?' 식의 관계 중심으로 직접 채용에 힘쓰는 분들도 계신다.


내 입장에서는 뭐든 나쁠 건 없다. 나의 경력기술서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투자하기 좋은 인재로 보인다면 말이다. 어쨌든 채용 시장에서 나는 '리더급, 팀장급, 국장급, 임원급, 실장급' 등의 직책에 포지션을 제안받고 있고, 기업의 규모에 따라 '실무, 차장, 부장, 이사' 등으로 직급 제안을 받고 있다.


결국엔 '실무와 관리자' 사이에서 연봉이 달라지고, 질문이 달라지고, 평가가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항상 듣는 질문이 있었다.


회사를 창업하신 건가요? 어땠어요?



솔직히 예상은 했다. 분명 창업에 대한 관심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거짓말을 좀 보태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애로사항을 얘기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눴던 것 같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오히려 1년의 과정과 경험등이 정리되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스스로 뭐가 부족했고, 뭘 잘했는지 구분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포지션, 면접에 따라 적합한지 아닌지가 결정이 되는 듯했다.


『"네, 퇴사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명함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주변에서 관심을 보여주고 궁금해하길래 사업자를 내봤습니다. 쉽게 만들 수 있더라고요''

''육아하면서 시간도 제 마음대로 관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사람 만나고, 안부 전하다 보니''

''일이 연결되고, 기회가 생겼고, 선제안도 해보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A to Z 실무부터 간단한 세무를 하며,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게 영업이었고 결국 사업''이었습니다.

''1년을 해보니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시간 효율'이 뛰어났고,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영업의 확장, 경영자로서의 성장,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 홀로서기의 멘탈관리, 개인경영의 리스크' 등 장기적으로 봤을 때 리스크를 깨닫고 다시 한번 팀,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성장하는 조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


헤드헌터들은 한 직장에서 10년 일한 충성도를 높게 평가했지만, 사업했던 경험은 '실무'자로서의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 면접을 봤을 때는 비슷하면서도 흥미롭긴 했다. 실무자급을 찾는 곳에서는 '창업'의 키워드에는 호기심을 가졌지만, 조직의 가이드를 잘 따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담', 연봉에 대한 '적정선' 등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임원급의 경우엔 어떨까? '연봉' 보다는 충성도와 창업에 대해서 모두 긍정적인 반응인 것 같다. 결국 '영업과 인재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원과 면접을 보다 보니 스스로의 기준도 조금씩 명확해진 건 있었다.


첫째, '실무'와 밀접해야 한다.

둘째, 함께 일할 수 있는 '팀'이 필요하다.

셋째, '육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필요하다.

넷째, 새로운 '판'에서의 경험이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 적당한 연봉이었다.


결국, '임원'급 보다는 '충분히 사업 관리를 하며

팀을 구축할 수 있는 실무 리더급'이었다.


여전히 실무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고, 장기적으로도 '사업'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마케터로서, 인생에서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업하는게 쉽지 않아요. 그 마음 알죠''

''네,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면접을 보다 보니 실무자급의 면접과 달리 '임원' 또는 '대표이사' 면접을 보는 경우가 있다. 면접이 아니더라도 '커피챗(Coffee Chat_보통은 1:1 형태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편안한 자리에서 이직, 면접, 커리어, 실무 등을 하는 미팅을 의미)'을 하기도 했다.


임원이나 대표이사의 경우, 최소 20년 이상은 일을 하고 있거나 창업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전히 '창업'의 경험을 궁금해했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 과정과 경력을 높게 인정하거나 공감해 주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기억에 남았던 건 '위로'였다. 결국, 취업 결정을 하게 된 건 '내려놓는'다는 건데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지,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미련과 용기 등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마냥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실패 경험들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분도 계셨다. 관리의 리스크, 대출 리스크, 비즈니스 모델의 아쉬움 등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 내 앞에 있는 건 여전히 사업하는 사람들이었다. 버티고 있든 좋은 기회로 성장을 꾀하든 알 수 없었다. 다만 '생존'을 위한 투쟁은 매한가지였다. 공통된 점이라면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보였다. 훌륭한 파트너를 만났고, 일 잘하는 인재를 채용했고, 힘이 되는 사람이 항상 옆에 있다는 거였다.


그들이 지쳤을 때, 힘들었을 때, 사업에 괴로워했을 때 항상 돌파구가 된 건 '사람'이라고 했다.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랄까.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위로'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죽으면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는데 사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종이 쪼가리일 뿐인 '사업자'일 수 있어도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기 때문에 내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큰 아쉬움과 쓰라린 심경인지 사업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빠르게 선택했고, 앞만 보고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폐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이 또한 미련인가..)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은 없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1개월이 되었다. 아내와 늦은 새벽에 약속한 대로 2월 중 취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결정된 건 없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진로'가 결정되어야 한다. 가정의 평화와 창업자의 최후가 결정되어야만 어지럽게 펼쳐진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 않을까 싶다.

복잡하지만 분명한 질서가 있다


면접을 보다 보니 복잡한 출근과 퇴근길을 오랜만에 경험해보고 있다. 자차를 이용하지 않고, 전철을 타고 걷고 또 걸으며 혹시나 코로나19가 옮기진 않을지 걱정도 한다. 최근엔 퇴근길 8호선과 9호선을 탔는데 붕떠서 무중력 상태의 묘한 기분을 느껴본 적도 있었다. 영 달갑지가 않았다. 하지만 터벅터벅 퇴근하듯 어두운 골목을 걷다 보니 집에 와있었다. 


그랬다. 출근과 퇴근은 직장인이 된다면 당연한 일상이다. 과정은 복잡하겠지만 반복의 연속일 것이다. 지금의 나의 일상도 똑같은 것 같다. 창업가에서 직장인이 된다는 건, 크게 다를 건 없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들을 통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또 시작해 보자. 


+


나는 독립꾼입니다. Ep.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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