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순간이 새로웠다
일어나. 출근하러 갈 시간이야
여느 때와 똑같은 알람이 내 귓가를 두들긴다. 그런데 눈을 뜨면 처음 보는 풍경은 너무나도 다르며, 여전히 요코하마라는 사실에 아침마다 신기했다. 호텔 이불에서 부스스하게 빠져나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그 주간의 일본 요코하마의 공기는 호텔 방 안의 다소 따뜻하다 못해 살짝 더운 공기와, 아침저녁으로는 다소 서늘한 공기가 충돌하며 습습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요코하마 시내 풍경을 창가에 맺힌 물방울들이 흐릿하게 가리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주었다. 물론, 한층 흐릿하게 맺혀 보이는 상도 그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청량하고 맑은 아침 햇살을 가로막을 순 없었다.
간단한 아침을 그 와중 챙겨 먹고 쌀쌀한지, 더운지 알기 어려운 그 사이의 애매한 공기에 아리송한 감정을 느끼며 그 세상 사람들의 출근길에 나도 몸을 내던져본다. 수원에서 성수를 매일 오고 가야만 하는 버스와 지하철의 복잡한 짬뽕이 만든 42km 길이 아닌 걸어서 900m만 걸으면 도착하는 일본 지사 사무실이었다. 그 출근길의 발걸음은 어찌나 가볍던지, 그리고 받쳐주던 날씨는 또 얼마나 완벽하던지. 출근길에 찍어본 사진들을 현상해보니 모든 컷들이 하나 같이 밝게 웃고 있는 기분이다.
요코하마라는 도시에게 느낀 첫인상은 인천 송도나 여의도와 조금 비슷하다는 인상이었다. 빌딩숲이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숲처럼 펼쳐져 있었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그 숲을 빠져나가면 곧바로 바다와 항구가 나를 반겼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무실 밖의 뷰에서 후지산도 볼 수 있다고 일본 지사 직원 분이 귀띔해 주셨는데 아쉽게도 난 보지 못했다.
이곳에서 머물던 일주일 간 느낀 일본 지사 사무실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나마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실 혹여나 하는 걱정이 많기도 했고, 행여나 한국팀의 이미지에 누가 갈 수도 있을까 걱정되어 업무 시간 중 사무실의 많은 장면을 담지는 못했지만, 일본 지사 사무실은 한국팀보다는 훨씬 더 트이고 넓은 공간과 바깥에 보이는 뷰와 바로 맞닿아 있어 개방감이 뛰어났다. 아마도 광각렌즈를 물려놓은 디지털 바디로 사무실 전경을 담을 수만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사무실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일본 지사의 사람들 또한 시원시원했다. 여타 일본 사람들과는 다르게 업무 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으며 영어 또한 내가 본 일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꼭 어떠한 프로젝트를 같이 하지 않더라도 업무 상의 어떠한 순간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은 왜 그렇게 내렸는가 등의 이야기들을 틈틈이 쉬는 시간이나 식사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이야기 했다. 교환 학생 때와는 확실히 모든 분위기와, 상황과, 주제, 깊이가 달랐다. 그들은 나의 업무에 임하는 마음과 자세, 이제까지 걸어온 길, 나의 의견 등을 궁금해했고 자신들의 것과도 교환함에 인색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더 넓은 세상에서의 일들을 경험하고자 하던 욕구에 다시금 불이 지펴진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광기'라고도 표현하곤 하는데, 그것은 하루를 마치 고무줄처럼 길게 잡아 늘려서 작은 사치도 같이 부려주면서 길게 하루를 운용하는 것이었다. 종종 이렇게 하며 아침운동을 하거나, 하루의 늦은 시간까지 운동 루틴을 꼭 지켜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을 하곤 하는데 (물론 늘어지게 놀 때도 그랬다) 이 도시를 보고 있자니, 그리고 하루의 대다수는 그럼에도 업무에 바짝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의 이 도시의 모습에도 꽤나 욕심이 났더랬다.
어느 날에는 그래서 한 시간 일찍 호텔에서 나와 요코하마의 아침을 한껏 만끽하며 아침의 도심도 욕심껏 라이카에 담아내보았다. 요코하마라는 도시가 모두에게 매력적인 것일까 아니면 첫 일본이라는 사실이 나를 취하게 한 것일까. 이유야 알 길이 없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간의 나에게 걱정을 안겨주던 모든 요소들을 잠시나마 잊었고 나는 그 어떤 모험도 자처할 준비가 되었다고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느꼈다. 사진 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나태하기 짝이 없는 생각인데 라이카조차도 무겁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그런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깃털만치 가벼웠던 나의 셔터는 그 도시 위에서 춤을 추었다.
사진 하는 사람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꽤나 특별한 배경이다. 나의 상황과 처지 배경을 떠나서 일본은 카메라 산업을 독일 일변도의 흐름에서 가져와 자신들의 손으로 중흥기를 이루었고, 지금도 그 흐름을 꾸준히 주도해가고 있다. 그러한 장인들이 만들어낸 필름 시대의 산실에서 필름으로 직접 담아낸다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일이었다.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언가 하나씩은 꼭 충분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길었던 서비스 대기 시간이나, 어딘가 하나쯤은 나사 빠진 것 같아 보이던 편의 시설 등의 이용이 그러했다. 그래서 필름으로도 담아내면 결코 과하지 않았고 동시에 부족하지도 않게 모든 것이 담겼다. 첫 해외 출장으로 방문한 도시라는 특별한 감정과 거대한 타이틀을 쥐고 있던 나 자신에게 정확히 알맞은 방식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진에 담기지 않던 생각의 지점들과 인상적인 장면들이 또한 존재했다. 일례로 어느 날 날씨 좋던 점심시간에 마침 사무실에 같이 계시던 본부장님께서 요코하마 항구 쪽에 레드브릭 하우스라는 곳에 파이를 정말 맛있게 굽는 집이 있다며 우리를 직접 데려가셔서 손수 사들고 들어오셨던 날의 햇살과 빨간 벽돌에 반사되던 빛 등의 기억, 겸양 차린다고 소바집에서 점심시간에 '적당히' 시키던 나와 한국팀 동료분을 보고 너희 혹시 소바를 안 좋아하냐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일본 지사 직원 분의 눈빛 등등 아직 기억 속에는 선명하지만 기록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부분들이다. 하지만 괜찮다. 사진으로 부족한 영역은 또 지금의 이 글이 구석구석 채워줄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