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에서 8년 전의 나를 만났다
이 여행의 첫 목적지를 내비에 찍었다
2022년 12월 18일 오후,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시내 시청사 건물 근처의 어느 한 구석의 주차장을 용케도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 기준에서의 공영 주차장 비슷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짐작 가는 곳이었다. 아이슬란드의 도로와도, 수령받은 차와는 친해지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아주 넉넉하진 않지만 꽤나 아늑하고 아주 이질적이지는 않은 이 빨간 차가 나름 듬직하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마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안전한 도로와 도시였지만 이곳을 벗어나 본격 링로드에 오르게 되면 이 차와 어떤 모험을 겪을지 모를 것이기에 그 든든한 첫인상에 퍽 믿음을 갖게 되었다.
차를 주차하고 본격 레이캬비크에서 첫걸음을 떼어본다. ‘아 아직은 내가 꿈꾸던 그곳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는 생각이다. 너무나 오랜만인 탓이었을지, 그 시절의 내가 생각보다 친구들과 레이캬비크를 본격적으로 돌아다니지 않았던 것일지 조금씩 헷갈렸다. 레이캬비크는 인구가 약 13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이곳에서도 연말에 설렘과 즐거운 기운은 머무르고 있었다. 이내 사람들의 발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보다 많이 들려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이 가득 쌓여있고, 길의 곳곳이 얼어있는 길을 헤쳐나가며 서서히 도시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레이캬비크 항구와, 신시가지를 지날 때만 해도 레이캬비크가 잘 내게 다가오지 않고 있던 나의 발걸음이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경계를 건너는 횡단보도를 건너자 무언가 머릿속에서 팍 하고 튀어 오르는 기분이 들며 익숙한 주변 풍경들이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어딜 가던 남산타워와 롯데월드 타워를 볼 수 있듯, 이 도시에서는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같이 높게 솟아 있는 할그림스키르스캬 교회가 보이는데, 드디어 구시가지에 들어서며 저 멀리 그곳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로소 나는 그렇게 진정으로 아이슬란드에 돌아왔다. 약 7년 전의 이곳에서 친구들과 고요한 밤거리를 거닐고 있던 나 자신의 모습도 그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저 멀리 보이는 할그림스키르스캬까지 걷는다.
그곳까지 걸어가며 점점 그때의 기억도 함께 선명해져 감을 느낀다. 너무 긴 시간의 간극이 있었기에 가게와 특정 위치 하나하나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좀 전의 주차장에 처음 내릴 때의 나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상태였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그때의 기억 조각들을 다시 맞춰내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이걸 만나기 위해 그토록 긴 시간을 돌아와서 마침내 다다랐다.
할그림스키르스캬 교회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경외심이다. 완만한 곡선으로 시작하여 그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리며 단숨에 뻗어 올라가는 곡선이 주는 선의 힘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고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바르셀로나의 ‘엘 사그랏꼬르’에서 전해진 일화에는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상을 보여주며 사탄이 예수에게 ‘이 세상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라고 시험에 들게 했던 일화가 함께 떠오르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바이킹이 둘러보던 드넓은 세상은 어땠을까 하는 기대감에 표를 끊고 교회 최상층부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표를 끊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오후 4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해 질 녘에 다다른 시간이 물들인 시린 빛과 타오르는 높은 색온도의 조화로 레이캬비크의 경관은 그야말로 감성 최대치의 장관이었다. 할그림스키르스캬의 전망대는 사방으로 뚫려 있어 레이캬비크로부터 모든 방향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해가 떨어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표준줌과 망원줌을 계속 바꿔가며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눈에도 최대한 담아두느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순간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매일 이 경관을 보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낼까, 그 마음으로 사는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모든 게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놀라움이었다. 또한 레이캬비크뿐 아니라, 서북부의 보르가네스 쪽으로 빠져나가는 1번 국도 방향도 멀리 내다보여, 레이캬비크에 아직 머물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벌써 링로드를 단숨에 주파할 것만 같은 투지도 끓어오르는 기분도 느꼈다. 마침내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반신반의하며 ‘시동이 반쯤 덜 걸린 상태’의 나 자신도 완전히 그 순간 털어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교회 문을 열고 나오니 도심에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내리 깔린 뒤였다. 하지만 레이캬비크의 밤은 소란스럽지는 않아도 충분히 밝고 따스함이 머무르는 시간이었다. 도시의 전체를 분주하게 둘러보았으니 이제 그 구석구석을 찬찬히 뜯어보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해가 지고 일을 마쳐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가게들도 하나둘씩 빠르게 문을 닫고 있었다. 집에 두고 온 가족이라는 존재와 나 자신의 시간을 중시하는 유럽 사람들 다웠다. 그들의 하루 끝 감정까지는 차마 도촬이라는 생각에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그들의 발걸음, 표정, 응시하는 모습들 하나하나를 기억 속 깊은 곳에 최대한 오래오래 담았다.
아이슬란드의 밤은 감성과 평온함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도시와 번화가를 벗어나는 순간 가로등조차도 전혀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아마 이 레이캬비크를 벗어나면 그러한 밤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모험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밤을 아직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 머물고 있었기에 극야를 달리고 있는 이 계절의 하루하루를 아직은 지켜만 보기로 한다. 나는 언제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한 두 걸음 정도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해 충분히 누리고 감사하되,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손에 거머쥐지 않은 것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과한 탐욕을 부리면 분명 탈이 날 것이다. 대자연을 만끽하는 여행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원칙이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속도와 조급함을 아이슬란드의 밤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중에 차분히 다스리며 다시 차로 돌아왔다. 바로 숙소로 들어갈지, 무언가 작당을 해볼지 고민이 되는 시간 약 7시경이었다. 장거리 여행에서 나의 원칙은 첫날에는 무조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나만의 원칙이었지만 그래도 7시는 무언가 살짝 서운한 시간이다. 그렇게 ‘Now What?'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나는 이내 내비에 다음 목적지를 찍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