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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May 06. 2024

[ICELAND] 아무도 모르는 색 (EP.6)

얼음동굴 안의 빙하가 내게 보여준 빛깔

시계는 얼음 동굴 투어를 떠날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22년 12월 21일 오후, 요쿨살론 주차장


요쿨살론과 다이아몬드 비치의 감정에 흠뻑 젖어들었던 나는 오후 1시 반에 정확하게 맞춰 얼음동굴 투어 신청자들이 모이기로 한 픽업트럭에 합류했다. 남부까지 오는 길에 꽤나 우여곡절도 많았고 요쿨살론을 다시 마주했다는 사실이 안겨준 벅차오르는 감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나였기에, 오히려 기운은 배가 되어 힘차게 빙하 투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괜한 노파심에 카메라 배터리 잔량을 체크하며 가이드를 기다렸다.


빙하 투어의 핵심은 이제까지 요쿨살론의 뒤편 높은 곳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던 스카프타펠의 만년설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만년설이 겨울이 되면 바람에 풍화되어 깎여나가 빙하의 표면들을 미려하게 조각하고,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간 면들의 내부에 크레바스와 얼음 동굴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얼음 동굴들을 찾아 떠나는 것이었다. 하이랜드 지역의 일부에 속하기도 하는 이 스카프타펠의 내부 지역은 겨울철에 당연하게도 일반 차량으로는 갈 수 없었다. 굉장히 차량 전고도 높고 힘이 좋은 4륜 슈퍼지프에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모두 탑승하여 이동했다. 그렇게 힘 있고도 차분한 속도로 차가 겨울철 평상시에는 통제 구역으로 금지된 구역, 하이랜드로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얼음의 언덕을 걸었다


몇십 분가량을 이동해 우리가 내린 지점은 화산 활동의 흔적인 검은 자갈들로 가득했고 주변에는 하이랜드의 험준한 산세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리니 그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빙벽들을 발견했다. 바로 억겁의 세월을 계속해서 조금씩 녹았다가 다시 얼기를 반복했던 만년설이었다. 처음 바라보았을 때는 빙벽보다는 그냥 평범한 언덕에 가까워 보였다. 저 거대한 얼음 언덕 위로 우리가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아이젠을 신지 않으면 갈 수 없을 만큼 미끄럽고 위험한 곳이었다. 다만 언제나 아찔한 만큼 그 매력과 아름다움은 배가 되었다. 오후 2시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어느덧 석양이 조금씩 지고 있던 하늘과 시린 빛을 내뿜고 있던 하이랜드와 만년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서히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부지런히 몇 장의 기록을 남기며 투어 가이드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이윽고 얼음동굴들을 보기 위해 본격 거대한 만년설 빙하 위에 아이젠을 신을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기 시작했다. 아이젠을 신었어도 빙벽 위에서 걸어 다니는 걸음은 제법 위태로웠다. 하지만 언제나 신비로움과 호기심이 끌어올려주는 취기란 그 두려움을 잊게 만들곤 한다. 내가 지금 빙하 위를 걷고 있다니,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좀 아까 다이아몬드 비치에서 이번 여행 내내 신고 있던 등산화 밑창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 밑창이 아이젠과 함께 덜렁거리고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이 순간의 감정에 털 끝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아름다운 만큼 위험하니 늘 조심 해야한다.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크레바스의 한 틈으로 투어 가이드가 우리를 이끌었다. 투어를 위해서 미리 사람들이 드나들어도 안전한 곳을 찾아둔 모양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검토한 곳일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크레바스 자체는 정말 아찔 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채로 이곳을 돌아다녔다면 분명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저 틈으로 떨어지거나 끼여서 크게 다치게 될 것이다. 사진으로 다시 회고하는 지금에는 아름답다는 감탄사와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감정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얼음들이 바람에 깎이고, 그 정밀한 조각을 거듭해서 만들어진 모습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 어떤 기록 수단으로도 이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조금의 미련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으로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이렇게 깎으려 해도 쉽지 않겠어'라는 나만 알아들 수 있었던 나지막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투어 일행에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앞에 나타나서 들어서게 된 얼음동굴의 내부에서 만난 빙하의 푸른빛은, 좀처럼 우리가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푸른빛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채 해가 지지 않아 반짝이고 있는 일광과, 가장 깊고 오래된 한기를 동시에 머금고 있었다. 그 모든 요소들이 혼합된 결과로 중후한 푸르스름한 빛깔을 띄면서도 혼탁한 빛은 단 한 점도 품지 않은 채 빛이 투영된 채로 반짝였다. 그 빛을 최선을 다해 담아낸 결과물들이 결국 이렇게 남았지만, 그 온전한 빛깔의 느낌은 나는 어떤 장비로도, 이후의 어떤 후보정으로도 정확하고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스카프타펠의 얼음동굴들이 내뿜는 푸른빛은 뭐랄까, 일상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그런 푸른빛이었다.
동굴에서 나오니 하늘이 조금 더 익어가고 있었다


얼음동굴에서 보낸 시간과 지나온 길들은 장황한 설명과는 조금 상반되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나왔다. 마지막 동굴을 지나 동굴 끝으로 나오니 빙하의 다른 쪽 끄트머리로 나와 있었고, 해가 슬슬 지고 있었다. 그래봐야 오후 3시 남짓 했을 텐데, 짧은 해는 정말 빈틈없이 정확했다. 금방 지나가버릴 여명이었지만 찰나의 순간은 아름다웠다. 점점 붉게 익어가고 있던 하늘이 빙하에 반사되어 처음에 봤던 빛깔에서 좀 더 신비로움을 더했다.


다시 슈퍼지프가 기다리던 곳으로 돌아와 요쿨살론으로 돌아오던 길에 연신 아쉬움에 계속 지나온 길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대자연이 아무 때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하이랜드 지역이라는 그 의미부여가 계속 내게 미련의 틀 속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음동굴이 머금고 있던 빛깔이 소위 '색을 섞는 작업'을 하는 사진가로서의 내게 주었던 신선한 충격도 한 몫했다. 그렇게 다시 요쿨살론으로 돌아갔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었다.




2022년 12월 21일 늦은 오후, 요쿨살론 주차장


나는 투어 일행과 작별 후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요쿨살론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 위에 서 있었다. 8년 만에 마주 했지만, 재회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또다시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긴 채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기록과 기억에 서툴렀고,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지금 이곳에서 새롭게 담고 있는 이 기록들이 그때보다는 훨씬 덜한 후회를 남기게 해 줄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고, 언젠가 또다시 이 빙하 호수와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한번 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나 자신이 되어 이곳에 설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2022년 12월 21일의 마지막 여명의 붉은빛을 머금은 시린 빛깔의 빙하,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1번 국도를 함께 바라보았다. 그것은 현재의 아쉬움을 묻은 채 내가 계속 나아가야 할 미래이기도 했다. 그 모든 의미를 담아 한 장 한 장 집중하며 소중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아이슬란드의 남부가 나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그려내던 자각몽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이제는 형체가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도, 다시 기록을 통해 기억을 되돌려 낼 수 있었으며 그날의 공기와 빙하가 내뿜던 빛깔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수많은 색들을 작업을 하며 만들어본 내게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아무도 모르는 색'이었다. 험난한 시간과 약간의 무거운 마음들을 모두 벗어던진 채 나는 석양을 만끽하며 남부의 거점 도시 회픈을 향해 달렸다.


요쿨살론과 작별하던 마지막 순간, 빙하 위에서 휴식을 즐기던 물개들도 보았다.
다음에 또 만나자.


2022년 12월 21일 저녁, 회픈


요쿨살론에서 회픈은 이전에 방문했을 때는 분명 지척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운전으로 80km 거리였다. '왜 가깝다고 생각했지. 기억이 단단히 왜곡 됐던 게 틀림없어.'라고 운전을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물론 이 날 하루에만 거진 350km를 달렸으니 80km쯤은 슬슬 '별 것 아닌 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하던 찰나였다. 마치 경기도에서 서울로 나가는 사람이 한 시간 반 정도 소요시간은 '갈만한 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 과 같은 이치의 체감이 이곳에서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거리와 시간에 대한 기억에 왜곡에 대해 투덜거리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창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해 질 녘 남부 지역 1번 도로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석양은 그런 그림이었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그림.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내가 회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들렸던 곳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신발 가게였다. 낮에 다이아몬드 비치에서 갑자기 등산화의 밑창이 뚝 떨어져 버린 해프닝에 대한 결과였다. 오랫동안 신지 않았던 등산화를 적당히 수선해서 신으면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에 밑창이 다 삭아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나였다. 속된 말로 일종의 '멍청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 고어텍스 재질이냐 아니냐를 두고 한화로 약 20만 원과 30만 원 사이에서 약 10분을 고민하던 내 신세가 퍽이나 우스웠다. 한국에서는 더 좋은 퀄리티를 세일로 10만 원대 초반으로 샀을 텐데, 차와 비행기 값은 응당 치러야 할 값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이런데 나가는 20만 원은 너무나 아까웠다. 덕분에 아이슬란드 회픈에서 구매한 그 '귀하신' 등산화는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했고, 지금도 우리 집 신발장에 잘 모셔져 있다. (최근에는 탁과 함께 다녀온 설악산에도 신고 갔던 바 있다)


'아마도'이 날의 마지막 사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아니었지만.
회픈에 예약했던 호스텔에 간신히 도착했다.

팔자에도 없던 신발 쇼핑을 마치고 마트에도 문을 닫기 전에 빠르게 들려, 식료품 구매까지 해결 후 이 전날 밤에 들어갔어야 했던 회픈의 그 호스텔에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곧바로 방에 짐을 던져놓고 밥부터 제대로 해결할 심산으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카메라 역시 애진작 내 방에 함께 내던져 놓고 소위 '퇴근'한 상태였다. 


아마도 이 시점즈음부터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생각대로 이 여정이 쉽지는 않구나'라고 말이다. 그 불안한 심리를 아무도 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의 부엌과 호스텔 복도에 처음으로 누군가 나타나 내 뒤에서 나를 부르며 무언가를 물어보려 했던 사람에게 내가 소리 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랐던 장면에서 나 스스로도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나 스스로 이 여행에서는 모든 부문에서 '총력전'이라고 외쳤으니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이렇게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다니는 여행에서는 운전도, 계획도, 밥하고 빨래하는 것들까지 모두 내가 혼자 해내야 했다. 삶의 모든 무게를 다 짊어지면서도 언제나 아들의 빨래와 따뜻한 밥, 그 외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신경 써주시던 엄마의 위대함을 이 순간 다시 느꼈다. 너무 길게 감성에 젖어 있으면 푹 삶은 양배추처럼 감정이 늘어져버릴 것만 같아 다 지은 밥을 반찬과 함께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이제 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이대로 씻고 쉴 것인가, 혹은 '여느 때처럼' 조금이라도 기회가 날 때 다시 오로라를 찾아 나설 것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였다. 그리고 여행 초반부 이미 몇 번의 기회를 날려버린 나는 이내 곧바로 후자를 선택했다. 사실 슬슬 조바심과 걱정이 밀려오던 참이었다. 누군가는 3주를 있어도 오로라를 한 번도 못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는데, 나도 겨우 잡아낸 이 기회에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걱정을 일순간에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반전이 필요했다.


문득 카메라를 켜고 이 날의 마지막 찍은 사진을 보니, 해가 다 떨어진 회픈으로 들어오던 1번 국도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사진은 이게 아닐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나갈 채비를 시작하며 렌즈와 삼각대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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