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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May 20. 2024

[ICELAND] 분기점 (EP.8)

이제부터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지금부터 내딛는 모든 걸음은 미지의 시공간을 지난다
회픈의 이른 아침, 저 멀리 내가 넘어야 할 험한 길이 보였다


2022년 12월 22일 이른 아침, 회픈 숙소 주차장


 전날 밤의 놀라운 기억을 여전히 품 속에 한가득 안고 있던 채로 숙소에서 눈을 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는 알람을 설정하는 이른 시간마다 모두 제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의 나 자신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일이다. 이것도 이곳 땅이 지닌 신비로운 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침잠 많은 나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일이니까. 회픈을 떠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동부로 떠나는 날이었기에, 오늘 하루부터는 매 순간이 처음이자 새로움이 될 시간의 시작이기도 했다.


앞서 비크에 하루 갇혀 있었기 때문에 회픈에서 보낸 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고작 하룻밤만 자고 나는 다시 이 도시와 이별을 해야 했다. 길고 길었던 자각몽을 끝내고 다시 한번 또렷한 세상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던 곳, 빙하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로라와 첫 재회를 하게 해 준 이 도시는 이제 내게는 소위 '약속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내 기억 속에 새롭게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몸은 서두르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마 계속해서 늦장을 부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새 짐이 제법 불어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접 등에 멘 배낭과 큰 캐리어, 그리고 장을 봐둔 식료품들이 모여 있는 가방까지 한 짐이다. 그 모두를 요란하게 부스럭거리며 낑낑대며 아래층으로 들고 내려가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그즈음에 회픈의 아침 찬 공기를 맞으며 즉석에서 결정했다. 동부로 떠나기 전에 회픈을 차로 한 바퀴 돌고 어젯밤 오로라를 만났던 스톡스네스까지 둘러보고 가기로 한 것이다.


모든 도시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이른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할 때는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무리 일찍 하루를 시작하더라도 누군가는 항상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라는 것이었다. 도시는 결코 잠들지 않았다. 다른 도시와 비교하여 조금은 더 차분했을 뿐, 이곳 회픈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숙소 앞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 우체부 분들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다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여행객들에게는 남부에서 동부로 넘어가는 중요한 요지라고 하나, 알고 보면 회픈은 아주 작은 규모의 도시였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했거나, 계획을 짜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늘 오르내리는 이름이지만, 그 명성에 비하면 꽤나 소박했다. 대신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럼에도 '비교적 얌전하고 차분한' 남부 앞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이며 그 뒤로는 동부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험준한 산맥이 보이고 있어 웅장함과 바닷가의 활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내실 있는 도시라고 할 만했다.


차를 몰아 가장 먼저 간 항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겨울 바다의 찬 바람을 맞으며 부둣가의 고기잡이 배들만 수면 위에서 넘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평소 말수가 적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일을 할 때는 또 그렇게 말없이 확실하고도 우직하게 일을 해나가는 그런 강인한 기운을 느꼈다.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질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같이 생존을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해질녘 아니다. 아침이다.


바다와 항구, 마을이 동시에 보이는 항구 쪽의 끄트머리까지 차를 달려 잠시 세운 후 차가운 아침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전날 밤에는 오로라를 '꽤나 굉장한 배경과 함께 프레임에 집어넣고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앞서 스톡스네스로 향했던 것이었으나, 사실 이곳에서 오로라를 봤어도 꽤나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의 힘,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가진 활력, 그리고 그들이 이루어낸 번영이 지닌 따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했다. 오로라와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 모든 감정을 한 프레임에 담아 사진들로 담아냈다.


이후 항구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골목들까지 모두 둘러보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의 붉은빛이 다소 옅어졌다. 다시 한번 짧은 해가 내게 허락한 결코 여유롭지는 못할 귀한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차를 다시 몰아 스톡스네스로 향했다. 




2022년 12월 22일 아침, 스톡스네스


스톡스네스 초입의 도로 옆 들판에 있던 친구들 (왼쪽), 그리고 다시 만난 바이킹카페 (오른쪽)


간 밤에는 단 한 줄기의 불빛도 없었기에 알 수 없었던 스톡스네스와 베스트라호른의 모습이 점점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웅장하고 거대한데 어떻게 간 밤에는 이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까'라며 절로 혼잣말로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의 이 시점쯤부터는 나 자신과 혼잣말을 자주 주고받고 있었다. 동행도, 마주치는 사람도 별로 없던 나의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 중 하나였다.


다시 한번 스톡스네스로 들어가기 위해 바이킹카페에 차를 세우고 입장 티켓을 발권하기 위해 입구 쪽으로 다가가니 바이킹카페의 뒤쪽으로 펼쳐져 있는 광활한 검은 모래밭과 바다와, 평야가 보였다. 그랬다. 바이킹카페 너머로 깊고도 깊은 어둠이 집어삼켜 정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그 모습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앞서 남부를 지나오던 길에서는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압도하는 힘을 보여주었던 아이슬란드, 이번에는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광활한 세계를 눈앞에 펼쳐 나의 기를 눌렀다.


왜 어젯밤 스톡스네스로 진입 이후 이따금 길들이 푹신하게 느껴졌는지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비포장 도로 위에 함께 깔려 있던 검은 모래들이 바로 그 정체였다. 다시 말해 어젯밤의 그 상황은 정말로 위험했던 게 맞았다. 비포장도로는 자갈밭이었지만, 해변가로 이어지는 검은 모래밭과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해 여차하면 모래밭에 차가 빠졌을 수 있었다. 멋모르고 자갈밭 비포장도로 끝까지 운전하겠다고 계속 전진했다가 모래밭에 처박혀 조난당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자정 가까운 시점에 근처에 민가라고는 단 한 채도 없던 이곳에서 조난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아찔했다.


그러니까 어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비포장도로와 모래밭의 경계가 모호한 이 길을 운전하고 있던 것이다.
검은 모래가 깔린 해변은 언제 걸어도 고풍스러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렇게 정처 없이 한동안 스톡스네스를 걸었다. 구석구석 다 둘러보려면 이틀은 걸릴 것이라는 말이 꼭 맞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해안가와 바로 인접한 말 목장과, 과거 바이킹들이 거주했던 과거 거주형태 복원지 정도를 둘러보며 (이 나라의 민속촌 정도의 개념이라고 할만했다.) 끝없는 '광야'를 계속해서 걸었다. 정처 없이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 나를 저 높은 곳에서부터 굽어보던 베스트라호른과 마주 보았다. 대낮에 다시 마주 선 베스트라호른을 기록으로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 함께 첨부된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멀리서 작게 보이는 것을 찍은 것 같지만, 사실 저 정도 거리에서도 굉장히 높고 험준해서 웬만한 화각의 렌즈에는 저렇게 한 프레임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피사체였다. 초광각 렌즈를 카메라에 물리고 나서야 간신히 검은 모래밭과, 산세의 윤곽과 몰아치는 파도까지 함께 담아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슬슬 동부로 떠나는 여정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퍼져가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부에서 동부로 넘어가는 여정도 만만치 않은 거리를 자랑했으며, 그곳까지 가는 길에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이제 나도 알 길이 없었다. 즉, 이 이후부터는 나도 완벽한 '초짜'이자 초행길을 걷는 자가 되는 것이다. 기억 속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샤이어를 떠나던 프로도와 샘이 나누던 대화가 함께 기억났다. 


샘 : 바로 여기에요.
프로도 : 여기?
샘 : 여기서 단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집으로부터 떠나온 것 중 가장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 대화에서 프로도는 샘에게 함께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한 걸음을 함께 내딛자고 하며, 그 시점부터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본격 궤도에 오르게 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그의 삼촌 빌보가 프로도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샘에게도 들려준다. "문 밖을 나서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지. 길로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계속 발을 떼지 않으면 어디로 휩쓸려갈지 알 수 없어."라고 말이다. 저 멀리 베스트라호른을 계속 바라보던 나의 마음도 비슷한 감정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새로움이란 존재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을 향해 내딛어야만 새로움과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스톡스네스로부터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 바이킹 카페에 들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갈길이 급했지만, 이곳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바이킹 카페에 잠시 들러서 차 한잔 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다. 스톡스네스의 실질적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장소라는 의미가 컸고, 오로라와 만났던 밤에 어둠 속의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경험을 하게 해 준 모든 일의 시작점이었던 이 장소에 이미 퍽 정이 들어버린 탓이었다.

내부는 사실 간단한 기념품을 팔고 있으며 그 외에는 통상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카페의 모습이었지만, 오두막집 내부의 아늑한 분위기와 쇼케이스 위의 나무간판이 꽤나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바이킹카페로 들어오기 직전에 이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샬롯이라는 친구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스톡스네스 깊숙한 곳에서 차를 몰아서 약 2km 정도를 운전해서 다시 나가야 바이킹카페가 있는 초입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 나를 향해서 히치하이킹 사인을 보내던 이 친구를 보았다. 


"안녕, 미안한데 혹시 네 차 좀 잠깐 태워줄 수 있을까? 내 차가 저쪽 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거든, 내 차까지만 데려다주면 좋을 것 같아."


"물론이지. 뒷자리에 타도 돼."


이 정도의 아주 짤막한 대화였고, 주차되어 있던 샬롯의 차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2-3분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여정을 시작한 이래로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혼잣말로 나 자신과 대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나였기 때문에 이 여행에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모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샬롯을 본인 차 앞에 내려다 주고 바이킹카페로 들어가니 다시 그 카페 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샬롯을 만났다.


"안녕, 다시 만났네. 혹시 같이 앉아도 될까?"


"당연하지."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합석 제안을 아이슬란드에서 다 해본다. 어쩌면 혼자 여정을 보내고 있던 도중에 나는 괜찮다고, 충분히 단단한 나 자신이라고 되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의식 중에 발현된 나의 외로움일지도 몰랐다.


프랑스에서 여행을 왔다는 샬롯은 알고 보니 프로 승마선수였다. (예상치 못한 직업이 대답으로 나와서 놀랐다.) 내가 반시계 방향으로 링로드를 돌고 있었던 것과 달리 샬롯은 마찬가지로 회픈까지는 똑같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다시 여기부터 방향을 되돌려 레이캬비크 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외에 여행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여행 직전에 있었던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가볍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하고 이내 헤어졌다. 진지하고 의미 깊은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 여행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사람과 상호작용을 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오로라를 다시 만나겠다는 소소한 목표를 들고 아이슬란드 링로드 길에 올랐지만, 나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것들이 감정선의 통제까지 포함하여 이렇게나 많았다. 동부로 가는 길부터는 다시 단단해지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시키며 차에 올라탔다. 


바이킹카페에 있던 개. 검은 모래 해변과 같은 새까만 색이 인상적이었다. 계속 저렇게 지키고 서있는 바람에 차 문을 닫지 못했다.


2022년 12월 22일 오후, 동부로 가는 길


다음 목적지는 아이슬란드 동부의 거점 도시인 에이일스타디르라는 곳이었다. 말은 거점 도시라고 했지만 이 도시의 인구 역시 약 2,200명 정도로 매우 작은 도시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구글맵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 이름이었다. 지금부터는 새로운 모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앞서 머릿속에 지나갔던 반지의 제왕 속 장면에 나도 함께 뛰어들어 외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이제 새로움 위에 내딛을 준비가 됐어."


스톡스네스를 벗어나 다시 1번 국도 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내 베스트라호른을 관통하여 동부로 가는 길로 이어지는 터널과 다시 만났다. 어쩌면 이 여행 최고의 분기점이 될 곳이었다. 지난 기억 속 과거의 나를 데리러 왔던 것이 남부까지의 길이었다면, 이 구간 이후의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중요한 터널을 이번에는 지나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며 이곳을 통과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차를 몰아 진입하기 시작했다.


제법 길었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친다. '동부로 가는 길은 어떨까.', '혹시 위험하면 어쩌지.', '대부분 바다를 끼고 보면서 가는 길이던데 풍랑이 세게 치면 안 될 텐데.' 등등의 시시콜콜하고도 부산스러운 걱정들이다. 그런 생각들과 한바탕 뒤섞여 세탁기처럼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쯤, 터널 반대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밝아져 오는 저 편의 존재들, 순간적으로 빛이 눈앞을 잠깐 가렸다. 그리고 이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며 일순간에 다시 시야기 되돌아왔다.


나는 새로움 위에 첫 발을 내디뎠다.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던 것은 시리도록 푸르고 맑은 이 날의 하늘과, 아무리 대낮이었음에도 계속해서 하루의 시간 속 함께 머무르던 석양, 그리고 채 벗어나지 못한 험준한 산세였다. 베스트라호른을 벗어났지만 이 길목에 험준한 산세는 계속해서 나의 왼편에 그 위세를 뽐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 험한 곳에 어떻게 이런 길을 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웅장함과 광활함이었다. 이 구간을 지나는 도중에 나보다 훨씬 멀찍이 떨어진 도로 전방 위로 순록 한 마리가 건너는 진귀한 순간도 목격했다.


차에 소란스럽게 틀어놓은 노래와 함께 계속해서 험준한 산세를 구경하며 나아가다 문득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에이일스타디르에 들어가면 아무리 빨라도 초저녁이 될 것이었기에 이동 구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한국에서 엄마가 싸주셨던 멸치 볶음이 아직 넉넉하여 이 멸치볶음으로 회픈 숙소에서 주먹밥을 미리 만들어 통에 담아 왔다. 이런 정성은 또 사진이나 기록으로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운 추상적 가치인데, 이게 기록이 가지는 한계다. 대신 차를 세우고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엄마의 마음이 담긴 점심을 먹는 그 순간의 감정을 그 시각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하여 직접 음성 언어로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동부로 가는 길은 날카롭고 아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아름다움을 갖췄다.


계속 이어서 재촉하던 길에는 슬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부딪히는 파도의 힘에 굴복하여 굴곡지고 패인 지형, 피요르드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남동부 해안선 구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구간부터 에이일스타디르로 길을 재촉하고 있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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