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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양파씨 Dec 18. 2021

끔찍했던 도살장의 기억

난 언제쯤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비릿한 동물 피, 변 냄새

머릿속까지 그 냄새가 배어들었다.


업무 차 아비장에서 가장 큰 도살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비장의 슈퍼마트의 정육코너에 공급되는 소고기, 양고기가 바로 이곳 뽀흐부에(Port-Bouët)에서 유통된다. 돼지와 양계 도축장은 별도로 아비장의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캐나다와 코트디부아르 정부가 도살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오수와 액체 폐기물 처리과정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었다. 3일간의 워크숍을 마치고 현지 조사를 위해 소 도살장을 찾았다. 도살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지만 이미 묘사 불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수준의 비릿한 냄새였다. 도살장 근처에는 생고기를 사고파는 길거리 좌판이 늘어져 있었다. 나를 포함한 캐나다인 등 외국인 무리가 들어서자 우리를 별안간 쳐다보는 좌판 아낙들과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관리사무소의 간단한 브리핑 후 본격 도살장으로 들어서는데 바닥은 동물 피와 배변 같은 것들로 뒤엉켜져 질퍽했다. 고무장화가 필요한 수준이었다. 우리 일행은 하나같이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표정이 어둡게 굳었다. 날씨가 습하고 뜨겁게 햇살이 내리쬐니 피 냄새가 너 강하게 코를 찔렀다. 그래도 현지인들의 삶과 일터인데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최대한 이상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 했는데, 되려 더 이상한 일그러진 표정이 되는 거 같았다.


도축장에서 바로 고기를 사 가는 사람도 많았다 @Port-Bouet

질퍽한 길 몇 미터가 몇십 미터 같이 느껴졌다. 웃통을 벗은 현지인 남성이 외국인인 우리들을 지친 표정으로 반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의 등에는 자기 몸집보다 큰 소를 지고 있었다. 방금 도살한 소를 박피와 내장 적출 후 다음 장소로 옮기는 모양이었다. 그의 가슴과 배를 타고 핏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한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될만한 어린 남자아이는 양의 몸통에서 잘라낸 머리만 모은 수레를 옮기고 있었다. 양 머리가 족히 못해도 수십은 되어 보였다. "오늘 손님들 온다고 이런 거 옮기지 말라고 그랬지!". 관리소장이 남자아이에 발길질을 해댔다. 그의 호통에 아이는 바닥에 고꾸라져 넘어졌다. 그의 수레에서 양 머리 몇몇이 질퍽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안전, 가공, 세척시설이 너무 부족하다 @Port-Bouet

벽도 없이 시멘트 바닥과 천장으로만 구성된 뻥 뚫린 낡은 도살장에서 소 한 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대여섯 명이 소 한 마리를 절단하고 있었다. 그 흔한 고무장갑도 끼지 않았고, 천장에 소를 고정해 놓은 갈고리와 고기를 절단하는 작은 칼이 전부였다. 남은 고기를 주워 먹으려는 새들이 천장에 그득히 사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고급지게 포장된 고기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뜩해졌다. 다행인지 맞은편에는 새로 지은 신식 도살장이 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리소장은 자랑스럽게 새로 지은 도살장을 보여주며 아직 개장 전이니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곧 캐나다 정부의 후원까지 받을 예정이니 그는 꽤나 흥이 나 보였다. 견학을 마치고 관리소장이 방금 잡아 시장에서 요리한 양 요리를 우리에게 대접했다. 아까 어린 남자애를 걷어차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 딴판이었다. 죽은 소, 피 냄새로 너무 충격을 받은 상태라 도저히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또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한 것을 거절할 수는 없어서 억지로 고기 한 점을 입에 욱여넣었다.


한 달이 넘도록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닭다리를 집었는데 도살장에서 본 냄새가 따라온 것만 같았다. 도살장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변변한 옷가지나 안전장치도 없는 사람들이,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도대체 동물 것인지 사람 것인지 알 수가 없는 피와 뒤섞인 변 냄새. 질퍽한 길바닥. 막연히 언젠가 채식주의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때가 된 건가 생각했다. 아는 지인들도 심하게 식중독을 앓았다거나, 도살에 관한 정책 따위를 조사하다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혔고, 곧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다. 몇 번 참고 억지로 입에 넣다 보니 먹을 만 해졌다. 개도국의 도살장을 직접 견학하고 온 나는 도대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아야 채식을 할 수 있는 걸까.




***

전 세계인이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식량과 식품 관련 온실가스 발생량은 전체의 25%가량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낙농업과 유제품이 15%가량을 차지한다. 식품 별 탄소발자국을 보면(위 그래프) 소고기로 인한 발생량이 특히 높다. 소고기가 유독 온실가스 발생량이 높은 이유는 소 사육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과 산림훼손 때문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34배나 더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낙농산업이 소고기와 유제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산림 훼손과 벌채도 온실가스 발생량에 반영된다. 옥스퍼드 마틴 스쿨의 Macro Springmann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모든 인구가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식량분야의 온실가스 발생량을 60%가량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현실적인 수치는 아니고 식량 분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감축 가능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진국은 채식을 도입할수록 환경, 국민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개도국에서는 되려 빈곤으로 인해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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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BBC 2016 What would happen if the world suddenly went vegetarian?

Forbes 2020 Got Beef? Here’s What Your Hamburger Is Doing To The Climate (forbes.com)

Macro Springmann et al 2016 Analysis and valuation of the health and climate change cobenefits of dietary change | P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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