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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Aug 28. 2023

못 보던 잡초가 반찬이었다니

본의 아니게 5도2촌 생활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것들이 예상 외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의 재미이지만 5도2촌까지 하게 되다니. 본격적인 시골 생활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인데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그 집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번에 갔을 땐 집 뒤쪽으로 돌나물이 잔뜩 있는 걸 보고 매일 뜯어다가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었다. 이 집에 나보다 먼저 와서 살고 있었던 남편은 그게 먹는 거였냐며 신기해했다. 돌나물이 도시집에 있는 아이방보다 더 넓은 면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걸 몰랐다니. 이 남자랑 시골 생활 해도 되는 건가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돌나물은 내가 청소년 시기에도 즐겨 먹던 반찬이었다. 나는 주택 살이가 처음이 아닌데 (남편은 처음, 그러므로 주택 생활은 내가 선배다) 고등학교 때에도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았다. 그때도 돌나물은 돌나물이라는 이름답게 돌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흙이 많은 마당 가운데에선 볼 수 없었고 마당 끝 돌이 많은 곳에서 채취할 수 있었다. 가끔 '돈나물'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돌나물이다. 영국에 살았던 십여년동안은 먹어본 적이 없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트에서 본 기억이 없어서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 추억의 식재료였다. 그러니까 함부로 밟고 다니지 말라고 남편아.


표준국어대사전은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을 텃밭이라고 정의한다. 시골집에 수북한 잡초들을 보며 저건 뭘까 생각했다. 집터에 딸린 '땅'은 확실한데 집터에 딸린 '밭'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농사를 짓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 어르신들의 밭을 보면 깻잎 고추 포도 옥수수 난리도 아닌데 우리집만 그런 게 없다. 돌나물도 그냥 집 뒤를 산책하다가 발견했을 뿐이지, 내가 키운 게 아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시골집에 들렀다. 남편은 아직도 돌나물이 잔뜩 있으니까 가서 먹으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봄나물이라서 봄에 가장 맛있다. 이젠 밟아도 된다고, 내년 봄부터 다시 먹자고 이야기하는데, 남편 발 사이로 또 못 보던 잡초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왠지 그 잡초는 edible green(먹을 수 있는 푸른 채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외갓집에서 괜히 뛰놀기만 한 건 아니었던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거 저번에 왔을 땐 못 봤는데.. 여기저기 많이 보이네?"


너에게서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느낀 거야


어제 반대쪽 마당에 제초제를 뿌렸다는 남편을 괜히 흘겨보았다. 아이도 나를 따라했다.


"엄마가 먹는 샐러드가 있는데 약을 뿌리면 어떡해!"


아이가 이야기하는 샐러드란 민들레나물을 뜻한다. 지금은 없지만 나는 꽤 비옥한 땅을 일구며 사셨던 외갓집의 손녀였다. 초등학생 때까지 주말이나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 갔기 때문에 냉이 쑥 감자 대추 옥수수 고구마 고추 쌀 등등의 모습을 알고 있으며 심지어 양봉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꿀은 할아버지가 주는 건줄 알았는데 마트에서 파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고 '샤부샤부'는 꿩고기를 뜻하는 낱말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외할아버지가 사냥을 해서 잡은 꿩은 우리에게 늘 끓인 물에 데쳐먹였고, 그걸 할아버지가 샤부샤부라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도시에 샤부샤부전문점들이 생길 때 나는 '꿩고기가 이렇게 대중적이게 됐다고?'하며 혼자 착각을 했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 시골집에 처음 갔을 때 민들레나물을 지나치지 못하고 뽑아서 밥과 함께 먹었다. 꿩 샤부샤부를 먹던 국민학생이(!) 어른이 되어 키우는 초등학생은 새로 이사갈 집에서 민들레나물을 뜯는 엄마를 기억하고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다시 남편이 딛고 선  땅 사이사이에 보이던 edible green으로 돌아가자. Daum에는 훌륭하게도 꽃검색 기능이 있지만 잡초검색 기능은 없다. 하지만 그 식물이 쇠비름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꽃검색 기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쇠비름 옆에 또 다른 식물이 잔뜩 있는 걸 알게 되었는데 걔는 파란 (또는 보라) 꽃을 달고 있었다. 꽃검색 기능을 작동시키니 그건 닭의장풀이었고 닭의장풀은 무쳐서 먹을 수 있는 거였다.  

닭의장풀(Common Dayflower)
깨끗이 씻어서
데치고 양념해서
접시에 올려두고 sns용 사진을 찍는다

 먹어보니 어느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왔던 것 같은 친숙하고 익숙한 맛이 났다. 식감은 고춧잎이나 시금치 같다고 해야 할까. 처음 해보는 거라 양념을 좀 진하게 했지만 먹어보니 다음엔 소금으로만 양념해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맛과 식감이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은 닭장 근처에서 이걸 흔히 볼 수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꽃의 모습이 닭 볏 같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고 여러가지이다. (닭벼슬이 아니라 닭 볏이 맞다)  


그러면 다시 그 Edible green, 쇠비름으로 돌아가자. 닭의장풀 만큼이나 너무 흔해서 꽃이 없었어도 금방 검색이 가능했던 쇠비름. 이 역시 먹는 거라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입수하고 씻어서 데쳐서 무쳤다.

쇠비름은 데치니까 색깔이 변했다
쇠비름나물

쇠비름나물의 첫인상은 통통한 고사리 같은 식감이라고 해야 하나, 채취할 때와 씻을 땐 몰랐는데 데쳐서 무칠 때보니까 미끌한 느낌이 있다. 외국 식재료로 따지자면 ladies fingers라고 불리는 Okra(오크라)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오크라도 씻을 땐 모른다. 썰어보거나 씹어보면 속에 약간의 미끌거림이 숨어있는 먹을거리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물론 맛은 오크라나 고사리와 전혀 다르다. 미끄럽지만 아삭아삭한 느낌도 있어서 씹는 느낌이 좋다. 신맛도 약간 있다. 인터넷에서 토양오염이 있는 곳에서 채취한 쇠비름나물은 수은이 함유되어있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한다고 하니 옆에서 남편이 자신있게 말하길, 최근에 토양과 지하수 오염 검사를 진행했는데 (단독주택은 이런 걸 의뢰해야 한다는 점이 귀찮다)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안전한 땅임을 강조했다. 그래, 먹자 먹어.


일요일 저녁에 다시 도시집으로 돌아오면서 양념하지 않은 쇠비름을 좀 챙겼다. 시골보다 서울에 살았던 시간이 훨씬 더 긴 친정엄마에게 이게 뭔지 아시냐고 물으니, 먹는 거긴 한데 당신이 어릴 땐 너무 흔해서 안 먹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칫. 또 엄마는 닭의장풀은 알아듣지 못하셨지만 다른 말로 달개비라고 한다고 하자 그건 알아들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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