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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Sep 22. 2021

000. 선심은 초심이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많지만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 분별이 너무 많으면 스스로를 제한하게 됩니다. 바라는 것이 많거나 갈망이 크면 스스로 풍요롭고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명상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은 꽤 오래전에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이 매거진에 한 편의 글도 남기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다.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서. 도저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냅다 쓰기로 했다. 사실 명상에 대한 글 말고도 쓰고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간 읽었던 책들과 흥미롭고도 괴이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감상 등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명상에 대한 글을 쓸 것 같다. '냅다 쓴다'는 다짐이 행동력의 원천이기에 주제나 형식은 없을 예정이다. 명상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개인적 체험 혹은 명상의 효과에 대한 종래의 연구들에 대해 소개할 듯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결심으로는 '명상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불교철학과 명상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그리고 명상 지도자의 커리어를 시작한 쪼랩 강사로서 깊은 이해를 위해 넘어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 그래서 공부와 수행을 정진하면서 그 과정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








맨 처음 소개한 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스승으로 꼽히는 스즈키 순류 선사의 <선심초심>의 서문에 등장하는 말이다. '어쩌다 명상을 배우게됐지?' 생각해보면 참 많은 길을 돌아 명상 수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명상 이전에는 철학이 있었고 철학 이전에는 고전이 있었으며 고전을 탐독하기 전에는 수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전에는 하나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바로 흔들리지 않는 삶이다. 





어릴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온데에는 그것말고 흥미를 돋우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아마 그 정렬된 활자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는 감수성과 호기심이 아주 풍부했고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의문을 또래보다 빠르게 그리고 치열하게 물고 늘어졌던 것 같다. 자신의 에너지에 솔직한 또래 아이들, 예컨데 잘 웃고 우는 친구들 학교-학원-집 루트에 불평하면서도 거기에 몰입하고 또 이따금씩 즐거워하기도 하는 친구들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글을 쓰고자 하니 항상 진지한 논조가 되어 머쓱하긴 한데, 나는 굉장히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을 늘 웃기고 데리고다니는 포지션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에너지를 항상 주고 또 그런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 낮 동안에는 굉장히 랄랄맞게 보내다가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어 나도 집에 돌아온다. 그러면 이제 혼자있는 방의 고요함이 바깥세상의 소음과 대비되어 항상 삐-하는 이명이 들리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 극도로 차분한 상태가 되고 많은 경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어지러움에 우는 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와중에 축구랑 야구에 꽂혀서 밤 새가면서 EPL과 프랑스 리그 등 해외축구를 보고 축구와 야구에 대한 움짤을 만들어 공유하는 팬 블로그도 운영했다. 미래에 대한 요상한 망상으로 지나치게 들뜨거나 과한 자기연민으로 우울해하거나 아니면 킬링 타임용으로 스포츠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어찌돼었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어른들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무질서 무절제한 일상을 보냈다. 굉장히 재밌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대한 내 감상은 많은 부분 '괴롭다'로 채워져있다. 초중고 학교를 다니면서 그리고 대학에 진학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낼 수 없었다. 극도의 즐거움과 극도의 우울을 오갔던 것 같다. 감정상태는 집중력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집중해야할 때는 하지못하고 또 밤 늦게 공부를 몰아서 하기도 하고 시간이 주어지면 도대체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은 많고. 스스로 늘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흔들리며 잠자리에 누우면 (사실 딴짓하느라 눕지도 않지만) 극도의 공허감에 또다시 괴로워했다. 그러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일을 계획하고 또 그 내일이 오늘이 되었을 때는 게으름과 무기력 낮은 집중력 산만함 불안 불쾌 충동 즐거움 등 다양한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다. 




많은 계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이 터닝포인트였다. 커다란 크루즈선을 돌리듯 아주 작은 각도지만 매일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요즘은 위에서 이야기한 과거의 고민들이 상당부분이 아니라 없어졌다. 이제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 해야겠다는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게되었고 이것이 전부다. 명상이 근래의 평화를 이룩한 비결은 아니다. 사실 독서와 글쓰기의 힘이 더 크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는 무엇을 얻었다'는 생각이 없지요.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모두 우리의 광대한 마음을 제한합니다. 무엇을 성취했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 그것이 진정으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라야 진정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길어졌는데 다시 초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선심은 초심이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온전히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초심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의 초심은 머릿속에 있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겠다는 다짐이다. 다시말해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초심이 공부가 되었든 다이어트가 되었든 선 수행이 되었던 노력은 의식적인 반복을 동반하기에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선심을 구현하는 행위이다. 초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4가지다. 1. 감각살리기 2. 겸손하기 3. 몰입하기 4. 공유하기 기특하게도, 어디서 들은 말은 전혀 아니고 개인적 체험에서 알아낸 것들이다. 공유하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명상의 효용과 관련이 있다. 다음 글에서 하나씩 살펴보면 좋지 않을까. 


쓸 날도 많고 쓸 말도 많고 쓸 종이도 차고 넘치니 아래에 새로운 이야기를 욱여넣기보다 

과감하게 다음장 부터 시작하는게 현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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