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후반 타지에서 결혼생활을시작했다. 설렘은 잠시, 결혼직후 마음의 준비 없이 찾아온 아이 소식에 정신과 육체에 큰 변화가 왔다. 그걸 제대로 다스릴 경황없이 육아를 하며 산지 6년 차, 내면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짜증으로 화로 튀어나와, 남편이나 아이에게 미안한 일들이 생기곤 했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자기계발 콘텐츠들을 즐겨보고 애쓰지만 나를 무겁게 만드는 나도 모르는 그것은 그 자리에 늘 있었다. <글쓰기공작소>의 저자 이만교 작가님의 페이스북을 자주 들여다보았는데, 어느 날 피드에서 이런 문장을 봤다.
‘글을 쓰는 동안, 자기 안에 뭉친 부분을 풀어낼 수 있고, 말하지 않은 자신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을 읽어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비로소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내 안에 무엇이 도대체 가슴에 사무쳐가고 있는 건지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학교 선배이자, 음악가였다. 내 인생 최고의 롤모델로 닮고 싶었고 같이 어울리고 싶었던 사람. 그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긴 글을 처음 써봤다. 소설인지, 수필인지, 일기인지도 모른 채. 나 자신을 온전히 꺼내어 보려 애쓰며. 갈망과 기쁨, 슬픔이 한데 엉켜 마음이 엉망진창이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다 쓴 글을 다시 읽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이건 내 일기장 속의 글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게 한 촉발이 되어준 <글쓰기공작소> 저자에게 보내기로 했다.
‘제가 작가님 글을 보고 제 글을 하나 썼는데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게 무슨 글일까요? 왜 제가 이걸 썼는지 알고 싶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메일로 글을 보냈고 답이 왔다. 요약하자면 이런 답이었다. 이 글은 일기에 가까운 개인적 회고담이라 평가하기보다는 공감해야 하는 글이다. 특정한 장르 글쓰기가 이루어지면 그때는 그 글을 평할 수 있다. 그리고 합평이 가장 좋은 글의 평가 방법이다.
합평은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이 의견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것인데, 문예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공부 방법이라 했다. 그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었고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도 어디 물어볼 곳이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들락거리다가 그 작가님의 카페에 가입하고 합평회가 열리기를 기다렸는데 연락을 못 받았다. 그러다가 인연이 찾아왔다. 책 반납일이 다 되어 주말 늦게 찾아간, 집에서 조금 먼 도서관에서였다. 1층 게시판을 무심히 들여다보는데, ‘수필문학 동아리 회원모집’이 보였다. 세상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10년 넘게 이어져온 동아리인데, 코로나로 쉬다가 재개하려 한다고 했다.
한 달여를 기다려 참석한 첫 모임에서 내 인생 첫 ‘합평’을 체험했다. 그동안 학교나 회사에서 일로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과 즐거움이 있었다. 대학 교양과목으로 ‘말과 글’ 수업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또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써내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각자의 감상문을 보며 의견을 나누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그때 수업 이후 다시 못 느껴본 그 좋은 느낌을 문학 동아리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었다.
문학동아리에 나간 지 다음 달이면 만 일 년이 된다. 이 주에 한번 오는 그 시간에 미처 내 글을 제출 못할 때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그렇게 모여 있는 시간자체가 나에게 큰 위안과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글로 옮겨 놓은 내 경험과 생각 그리고 감정, 그리고 타인의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당신을 또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하는 두 시간은 달콤하게 흘러간다. 글의 완성 자체보다는 글을 완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나의 첫 합평 작품이 된 울면서 쓴 그 글을 제법 담담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꿈에 나오는 그때의 장면들이 사라졌고, 자동 반응하던 부정적 감정이 달라졌다. 불행하다 여겼던 과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글쓰기 선생님들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이 문장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용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번 더 옮겨본다.
글을 쓰는 동안, 자기 안에 뭉친 부분을 풀어낼 수 있고, 말하지 않은 자신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을 읽어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비로소 만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