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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선 Sep 21. 2023

칭찬만 받는 아이

성격검사를 해보면 MBTI는 INTP, 홀랜드는 I형이 나온다. 이 유형의 주요 특징은 생각이 평균 이상으로 많고 논리적이며, 인간관계보다는 학문과 지식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한동안 의식적으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결과인지 T가 F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어린 나를 돌아보면, 교실에서 아이들과의 어울림보다 앞에서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중요한 아이였다. 친구라면 내가 마음에 드는 한두 아이에게만 찾아갔고, 혼자 다녀도 외로운 줄도 심심한 것도 잘 몰랐다. 내 세상에는 재밌는 것들이 항상 있었기에 ‘심심하다’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가서 갸웃거린 기억이 난다. 앞에서 시키는 그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었고 그게 인정받으면 제일 기뻤다. 내 기억 속 어릴 때 나는 ‘칭찬받는 아이’였다.  


 첫 번째 받은 칭찬의 기억은, 1학년 때 칠판의 글자를 공책에 적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칠판을 한 번만 보지 말고 여러 번 보며 자기가 쓴 것과 비교해 보라고 하셨다. 칠판 한번, 내 글자 한번, 또 칠판 한번, 글자 한번. 그대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큰 목소리로 ‘의선이가 참 잘하는구나. 의선이처럼 하세요.’라고 하셨다. 그 뒤로 내가 더 열심히 했음은 틀림없다. 다음 해인가 경필 쓰기 대회가 있었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언젠가 자기만의 필체를 겨루는 손글씨 대회 입상작이 교보문고에서 전시되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그때는 자기만의 필체가 아니라 한글 쓰는 교과서적인 방법대로 쓰는 거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우리가 아는 ‘궁서체’다. 인쇄되어 있는 모양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상을 받다니 신기할 뿐이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등 3~4학년 정도일 때 두 가지 일이 있다. 독후감 숙제가 있었다. ‘느낀 점을 많이 써라.’ 하신 선생님 말씀을 기억해 뒀다가 글에 내용은 간단하게 쓰고 느낀 점을 많이 써서 냈다. 선생님께서 내 원고지를 들어 보이며 공개적으로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그림을 그려 내면 또 매번 상장을 받아왔던 것 같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일은 내 그림이 교실 장 뒤로 떨어져 분실된 일이었다. 선생님께서 나중에 찾은 내 그림을 들어 보이시며 ‘안 잃어버렸다면 상을 받았을 텐데’ 라며 안타까우신 듯 여러 차례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상장을 받는 것보다 더 기억에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한 번은 난생처음 붓글씨를 썼는데 그것도 상을 받았다.


 6학년 때 아크릴판을 오려가는 숙제가 있었다. 곡선이 들어간 복잡한 모양이었다. 당시 칼로 종이 자르기에 재미를 붙였고, 처음 해보는 아크릴판이었지만 원하는 대로 잘 오려지기에  기분 좋게 학교로 가져갔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 것을 보시더니 아주 큰 목소리로 ‘이거 오빠가 해줬지?’ 하시는 게 아닌가. 내가 했다는 말을 못 믿겠다는 듯 연이어 묻는 선생님 표정이 생생하다. 너무 속상했다.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억울했다. 그때 의심을 받느라 미처 받지 못한 칭찬도 아쉽지만 한편으로 그것도 칭찬으로 접수했다.


  그렇게 받은 칭찬들과 통지표에 찍힌 많은 ‘수’ 점수로 인해,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진 내가 됐다. 6학년 말에 동네 중학교가 아닌 특별한 곳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전교생이 국비로 공부하는 장학생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시험을 치르게 된 학교에 합격했다. 국립국악중학교였다. 그곳에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했고 대학교 입학까지 밀고 나갔다. 돌아보면 모든 게 초등학교 때 받은 칭찬들 덕분이다.  


 최근에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 기억 속의 나보다 실제의 나는 그리 명석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거다. 지금은 바뀐 제도지만 초등 1학년 때 나는 동급생들이 태어난 해의 다음 해 1월 말 생일로, 적게 산 개월수인 채로 입학을 했다. 하지만 유치원 1년을 다닐 때도 내가 열등하다 느낀 적이 없었고, 초등학교도 나에게 두려움의 공간은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학부모 참관수업 때 엄마가 날 보며 너무나 가슴 아프셨다는 거다. 개월 수가 모자라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구나 하셨고, 학교를 다음 해에 보낼걸 그랬나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대로 빠르게 움직이는 반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매번 한 박자 늦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늘 잘하는 칭찬받는 아이인 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엄마는 내가 늘 시작은 느리지만 한번 깨치면 정확히 해낸다며 위로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 성격으로 추측해 보건데, 나는 그냥 나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잘하는 누군가가 있다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테니 부러워하거나 샘내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냥 내 세상을 살았던 거다! 중학교 진학 후 달라진 삶을 살게된 나는 초등학생 때의 고요하고 편안했던 정서를 그리워하곤 했는데, 이게 그 이유일까? 어쩌면 선생님들의 칭찬은 더디지만 노력하는 아이에게 보내는 격려였을지도 모르고, 내가 받은 만큼 다른 아이들도 칭찬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잘 못했거나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겠지만, 내 뇌에는 그런 것들을 싹 지우는 지우개가 탑재되어 있기라도 한 듯 초등학교 때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칭찬’ 뿐이다.


 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받은 칭찬이라면 별것 아니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했고 이게 맞을 거라고 짐작하며 하고 있었을 때 ‘그게 맞다’며 받는 칭찬은 내가 나를 확실히 인정하게 해 주었다. 칭찬의 말은 대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 것인지 한 번만 들어도 참으로 오랫동안 남아 열정의 연료가 되어 주었다. 칭찬받은 순간들의 영상이 저장되어 있는 창고가 머릿속에 있는데, 그곳은 세상의 낡은 것들과 완전히 다른 빛깔을 가지고 있다. 밝고 환하고 따뜻하다.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자신 없음이 고개를 슬며시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때의 영상을 꺼내 재생버튼을 누른다.




 선생님 여러분,
 잘하려고 애쓴 그 순간마다 저에게
 칭찬을 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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