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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선 Sep 21. 2023

내가 음치였을 때

<너의 목소리가 보여>, 줄여서 ‘너목보’라고 부르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미스터리 싱어 그룹에 음치와 실력자가 숨어 있는데,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나와 립싱크로 말하고 노래한다. 이 중에서 가짜 직업과 목소리로 노래 실력자인척 연기하는 음치를 찾는 추리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너목보’가 시작한 해는 2015년, 그해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과 즐겨 보았고, 이번에 새로 시작한 열 번째 시즌은 아홉 살 아들 포함 셋을 위한 방송으로 낙점했다. 본방송 시간을 못 맞추니 VOD를 결제해 보는 게 벌써 세 번째다.


음치와 실력자를 가르는 외모가 있을까? 여러 해 이어진 ‘너목보’를 보니 외모로 그걸 알 도리는 없었다. 음치도 얼마든지 연습을 통해 잘하는  할 수 있었다. 진실의 무대에서 소름 돋는 실력에 눈이 동그래지거나, 속았다는 허탈함에 할 말을 잃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별한 즐거움이다. 실력자 중에는 더러 음악전공자나 무명가수가 있지만, 대부분은 관련 없는 직업에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을 가졌다. 실력자의 가창력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사실 음치들의 거침없음이다. 주변은 모두 귀를 틀어막고 싶은 표정인데, 자신만은 그토록 신나는 무대. 부럽다. 조금도 신나지 않던 내가 음치였을 때를 기억한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6학년 때 단소 동아리를 하며 약간의 관심을 두던 국악을 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우게 되었다. 국립국악중학교 1기 학생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 때 학업성적이 대체로 좋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장을 곧잘 받아오던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고 눈에 띈 곳이 그 학교였다. 입시시험에 가창도 있었는데 내가 만일 음치였다면 합격하지 못했겠지.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이거나 오래 꿈꿔온 길이 아니기에, 그때 낙방했다면 다시는 관심을 안 둘 분야였다.


부푼 마음으로 다니게 된 왕복 3시간 거리 학교에서 인생의 대반전극이 시작됐다. 음악교과가 너무나 부진했던 것이다. 오선보를 읽고 쓰는 수업이 있는데, 그 활동은 마치 미궁 속에 들어간 듯 느껴졌다. 엄마가 학교로 불려 오셨다. 과외를 알아보라 했다고. 그렇게 부족함을 채워갔지만 중간 이상의 실력은 못 되었다. 단소 시험날까지 악보를 못 외운 나를 당황해하며 바라보는 선생님의 표정이 지금도 보이는 것 같다. 다음 해 전공수업을 하며 '구음'이라는 벽이 부딪혔다. 구음이란 국악기 소리를 입으로 부르는 것인데, 구음을 하면 내가 의도한 음과 다른 음이 귀로 들려왔다. 다시 해봐도 계속 불안정한 음정이 두렵기 시작했다.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지 일 년 만에 나는 음치가 되어 있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나만 아는 공포였다.


 




‘너목보’의 음치들은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는 걸까? 열다섯 살의 나는 내가 음치 같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시험이나 선생님이 시킬 때만 하고, 친구 따라 노래방 갔을 때만 노래하며 흥얼대는 콧노래도 의식적으로 안 했다. 콧노래라는 게 의식하고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음악적 자유행동을 통제하며 시험을 위해 연습하고 정확한 음정을 내려고 나를 닦달했다.


목소리는 마음대로 안 되어도 악기는 달랐다. 같은 구간을 끝없이 연습하니 나중에는 눈 감고도 연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거문고 소리가 괜찮다 여겼고, 타고난 실력은 못되어도 열심히 연습해 간 날에는 '네가 나보다 잘하는구나!'라는 선생님의 감탄사도 들었다. 국악고와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했고 그 과정이 쉽진 않아도 목표를 이루어내는 성취감은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음악의 즐거움에서 점점 멀어지는 점이었다.


고등학생 때 알게 된 한 국악인으로 인해 듣는 귀와 음악적 기준은 더 높아졌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향한 자책은 커져만 갔다. 대학교만 붙으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음악성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해왔던 이 악기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질 지경이 되었다. 2학년 마치고 휴학하고는 다른 분야를 알아보다가 미술대학교 입시를 치러 디자인학도가 되었고 그로써 음악인의 길에서 훌쩍 떠나버렸다. 결정이 힘들었지 후회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디자인 공부하며 유학을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앞둔 시기에 뚜렷한 병이 없는데 자주 아팠다. 단학수련을 하며 건강이 회복되었고 그러다가 아예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수련지도를 하루 네 번까지 하던 어느 날, 목에서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오던 밤을 기억한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햇수가 8년인데, 1년 차에 음치가 됐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던 음악적 능력이 학교도 연습실도 아닌 곳에서 발현되다니?! 이후로 내가 음치라는 설움에서 벗어났다. 노래를 부르면 일단 음정이 잘 맞았다. 하지만 콧노래 같은걸 자연스레 안 하는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한편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꿈은 늘 있었다. 거문고는 다시 안 잡더라도 노래를 배우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 키우며 매일같이 보던 자기 계발 채널에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일을 시작해 보라는 이야길 듣고 수 해 전에 받고 싶던 보컬 레슨이 떠올랐다. 그래서 등록한 학원에서 적잖이 당황스럽던 일은,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면서 부르고 싶은 곡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부르고 싶은 곡은 없고 부르기 싫은 곡은 그리도 많았다. 선생님의 추천 중 하나를 일단 골라 거문고 배울 때처럼 한 소절 한 소절, 선생님을 따라 하며 연습을 했다. 이 부분은 이런 느낌, 이런 걸 강조하며. 힘을 빼고 넣고 하라는데 어려웠다. 무조건 세게 불러지기만 했다. 명치 부분이 막혀있다고 했다. 무엇이 이토록 가득 들어차서 미동도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두어 달의 레슨을 받으며 알게 되었다. 노래를 잘하는 나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아님을. 무대에서 보란 듯이 잘하고 싶은 마음, 그건 오래전 내가 열망하던 바람이지만, 지금의 나에겐 확실히 아니었다. 부르고 싶은 곡이 없는데 무슨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지. 그저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은 욕심일 뿐, 취향도 소질도 부재했다. 시키는 대로 부르려 애쓰며 한편으로 노래를 하는 내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 성가대 연습실에 친구를 따라갔다가 너무 싫어서 다시는 안 갔던 그 기분이 기억났다. 그래, 음악은 나에게 싫은 일이었고 내 선택이기에 묵묵히 했었구나. 나를 토닥이며 레슨을 그만두었다. 노래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몰라도, 진짜 나를 보게 된 점에서 잘한 일이었다. 이후 노래에 대한 욕망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일 년이 훌쩍 지났을 때, 조금 큰 아이와 가족나들이 삼아 노래방에 가게 됐다. 무얼 고를까. 늘 어려운 노래 고르기. 노래수업 때 배웠던 곡을 골랐다. 반주가 시작되고 노래를 하는데, 어? 어! 내 소리에 내가 압도됐다. 보컬 선생님이 강조하던 따라 부르기 어렵던 소절들을 '저절로', '제대로' 부르고 있던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그간 연습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오랫동안 연습을 해왔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악이 노력의 산물이라 여겨왔던 내게, 저절로 굴러 들어온 실력이 당황스럽고 어색했다. 남편의 칭찬도 낯간지러웠다.


 




매주 ‘너목보’를 보며 생각한다. 이젠 음치가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나지도 않아 ‘너목보’ 출연 신청은 할 수 없게 됐군. 그런데, 음치여도 저렇게 신나게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 음정도 잘 맞추는 난 왜, 신나게 노래하지 못하는걸까. 그런 의문이 생겨날 무렵 나는 문득 오래전 애써 멈추었던 흥얼거림을 시작했다. 집에서 노랠 부르니 남편과 아들이 눈이 동그래지며 잘한다고 감탄을 했다. 그런데 그 칭찬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드는 나를 보게 됐다. 내 음악적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가 내 안에 늘 있는 것 같다. 그 자는 끊임없이 날 지적하고 그것밖에 못하냐고 다그친다. 남의 칭찬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그 자는 크고 힘이 세다. 더 이상 그에게 휘둘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또 노래 한 소절을 툭 뱉어버리는 나. 한동안 이것은 차라리 거대한 실험에 가까웠다.


노래를 하면 복잡하던 생각들이 가라앉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너무 가라앉을 땐 노래가 잘 안 나온다. 이제와서 알게된 노래부르기의 장점은 조건없는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감상할때 와는 다른 오래 남는 감각이랄까. 또 신기한 점은 노랠 하면 할수록 머릿속 어디 들어있었는지 모를 그간 들어온 곡들이 자꾸만 술술 떠오른다. 악보를 외우기 그리 어렵던 나는 어디 가고, 들으면 금세 기억이 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꾼 것일까? 이렇게 늦게 찾아온 음악성이라니. 흥이 한껏 살아나는 날에는 알고 있는 모든 노래를 부를 기세로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부르기도 했다. 이제껏 몰랐던 행복을 양껏 누려보겠다는 듯.


이제 분명히 안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건 ‘너목보’ 실력자의 능력이 아니라, 음치여도 당당하게 누리는 음악의 행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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