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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선 Feb 26. 2024

빵집의 아이

토요일, 대형 마트 입구의 빵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란한 가운데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떼쓰는 정도가 아니라 겁에 질린 비명 같았다. 아이를 안은 보호자가 밀려드는 인파로 비좁아지는 매장을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빵을 골라 계산하는 줄에 섰는데, 내 뒤에 그들이 섰다. 그때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맹렬히 우는 아이와 보호자의 지친 표정이 가까이 보였다. 벌게진 얼굴로 민방위 사이렌 같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아이 아빠의 냉랭한 한마디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그만해 아빠 화나, 그만 그쳐.’

내 아들이 성 나 있을 때 그만하라고 남편이 다그치는 것을 몇 번 보았다. 평소 순한 그도 아이의 날 선 표정은 견딜 수 없나 보다. 그때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들이 정말 하던 걸 단박에 그칠까 봐. 그럴 줄 아는 아이가 될까 봐. 부처의 경지가 아닌 다음에야, 화를 단숨에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고, 그 화를 억눌러 그 작은 몸과 마음에 가둬놓고 평생을 가지고 살게 될까 무섭다. 그러다 로봇 같은 아이가 되거나, 나처럼 감정이 버거운 어른으로 클까 두렵다.
나는 많이 우는 아기였다 한다. 울었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울지 않게 될 무렵에는 그 자리에 화와 짜증이 자리 잡았다. 기분 나쁜 일은 예수님을 위해 참는 거라고 했다. 본격 학령기에 과업을 감당하려 애쓸 때 온갖 염증이 몸을 덮쳤다. 남들 보기에는 아마도 담담히 제 할 일 하는 아이였을텐데, 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사소한 말한마디에 화가 치밀어 언성을 높이곤 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웠던 것 같다.


엄마가 된 나는 아이를 위한 탐정이 됐다. 내 아이에게 ‘네가 너무 울어 힘들었다.’고 내 부모의 입버릇처럼 말하게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울음은 분명 말이니 알아 들을 수 있다고. 이유없는 울음은 없다고. 아이가 울 때마다 달래며 대화하려 애썼다. 말 한마디 못 하는 아기였을 때도 그 대화*는 통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이는 자연스레 울음을 그치고 다시 맑아졌다. 울어야 할 일이라면 충분히 울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쓸 때,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더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게 된다. 나에게 그건 절호의 기회이니. 불구덩이 속 아이를 구해낼 기회! 활활 타는 불구덩이 속에 아이가 들어가 있는데, 무서워 소리치는 걸 그만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물을 붓고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단 한번, 아이가 칭얼대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날이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찍어둔 영상을 보다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전날 밤에 같이 있던 아빠를 찾는 소리였던 것이다. 입술을 비죽이며 비애 섞인 그 표정은, 아직 말을 못 하는 아이가 간밤에 놀던 아빠가 어디 있냐고  몸으로 하는 말이 분명했다.






빵집에서 울던 아이와 냉랭한 부모를 보며, 내 어릴 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와 내 부모가 그랬겠구나. 우는 아이도, 그 울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도 안쓰러웠다. 힘들어서 어떡해. 어디가 불편했어? 할 수 있다면 내 아이 달래듯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네보고 싶었다. 받고 싶은 아이와 줄 수 없는 부모를 보며 삶의 모든 고통의 시작점을 보았다.
팔순이 다 된 엄마가 마흔 중반이 다 된 딸에게 해명한다. 내가 울면 귀가 울리고 머리가 멍해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예민하고 강한 나를 보며, 어린 시절의 가족 누군가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할까 무서웠다고. 내가 다른 이와 잘 어울리지 못할까 봐 겁났다고. 너무 바쁜데 항상 따뜻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다독여야만 그치는 내가 너무나 버거웠다고.
애정결핍 같다고 여겨지는 내 성장기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때 최선을 다한 것이었으리라. 엄마의 성장기에 받은 것보다 더 내어주려 애썼던 하루하루였으리라. 그녀도 나처럼, 내가 받은 가슴 아픈 그 행동만은 하지 말자 다짐한 최선의 육아였을 테니….

각자 인생이 다르고, 찾고 싶은 답이 다르다. 나는 종종 아직도 빵집의 그 아이같이 되어 버린다. 좋은 딸이 되려고 애를 쓴 끝에도 부모의 한두 마디에 처절히 무너져 버린다. 어라 이것도 답이 아니었던 거네? 그래서 놀랍도록 새로운 마음을 먹어본다.

엄마의 답은 엄마 자신에게 맡기자. 듣고 싶던 다정한 말은 내가 나에게 해주자. 아이야, 우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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