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재능일까요? 용기일까요? 사랑일까요?
지난주 토요일 공저 출판기념식을 했다. 저자들은 교보문고 부산점에서 책을 품에 안고 사진을 찍으며 쑥스러워했다.
“작가님 제 책을 다른 사람이 안 봤으면 좋겠어요”
책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작가가 있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자신의 치부와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책이 나왔다는 것은 이미 용기를 내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남 앞에 내놓는 일이라 쑥스럽다. 작가들은 안 쓰고 부끄러운 것보다 쓰고 부끄러운 것을 택했다.
2017년, 첫 책을 썼을 때 모든 게 내 치부였다. 글쓰기는 내 경험을 쓰는 행위다. 33년간 거의 매일 술만 마셨다. 책 내용이 온통 술 마신 이야기였다. 글쓰기 코치가 솔직하게 써라고 해서 솔직하게 글을 썼다. 술집에서 여자하고 술 마신 것도, 술 마시다가 옆 테이블 사람과 싸우다가 파출소 불려간 것도, 룸살롱 가서 기백 만 원 카드값 긁었던 것도, 아내 몰래 보증섰던 이야기, 회사 상사와 인사부서 욕하는 것도 다 썼다.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고 맨날 술만 마셨던 내가 글을 썼다는 게 무식한 용기였다.
내가 쓴 글이 책이 될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내에게 봐 달라고 초고를 내 밀었다. 후회했다. 아내가 몰랐던 내 치부가 다 드러났다. 이후 아내는 한동안 나와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나는 뭔가를 배우려면 가르치기부터 한다. 초보가 왕초보에게 가르치듯이. 컴퓨터 배울 때도 책에서 배우거나, 교육 중에 배운 내용을 옆 동료에게 가르치기부터 했었다. 가르치다 보면 질문을 받게 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배운다. 이런 선순환이 내 실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통신부 정보화 경진대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르치다 보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거라는 기대로 자이언트라이팅 코치과정을 입과 해서 수료했다. 글쓰기 코치가 되어 가르치고 있다. 매주 5시간 글쓰기 공부하고, 매주 1시간 30분 가르치고 있다. 글쓰기 분야는 다른 분야하고 다른 것 같다. 금방 늘지 않는다. 재능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2년 넘게 글을 써도 늘지 않는 것 같다. 가끔씩 나는 글쓰기에 재능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괴테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을 때, 괴테가 사를로테라는 여성에게 러브레터를 1,800통이나 썼다는 사실을 알았다. 괴테가 천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러브레터를 썼기 때문이다. 나는 몇 편의 글을 쓰고 있는가? 일주일에 겨우 서너 편 쓰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다. 계속해서 많이 써가는 동안 부분적으로 재능이 드러난다.
"내가 아우슈비츠의 시간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글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글을 써야 할 동기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학생 때 내 이탈리아어 성적은 보통이었고 역사 성적은 형편없었다. 내가 특별히 흥미를 느낀 과목은 물리와 화학이었다. 그래서 나는 화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글을 쓰는 세계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직업이었다. 수용소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1945년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2년 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 《가라앉는 자와 구조된 자》 등 여러 권의 책을 남겼다. 그는 “인간에 대한 지칠 줄 몰랐던 관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고백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를 글을 쓰게 했다.
얼마 전 사무관 승진에 두 번째 탈락한 K라는 후배가 연락이 왔다. 뜻밖에 연락이라 당황했다. 지난달 승진에 탈락되어 힘들었는데 우연히 내 책을 읽었다고 했다. 세 번이나 승진에 탈락되어 힘들어했던 내 글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글쓰는 행위는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독자가 위로를 받거나 동기부여받거나 공감받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내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글 속에 작가의 사랑이 담겨 있다. 나쁜 의도로 책을 쓰는 사람은 없다. 독자를 위하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책(글)은 독자를 위한 러브 레터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재능이 생기고, 쓰는 자체가 용기다. 작가는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글 쓰는 게 의미가 없다. 나의 경험을 통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이 담겨있다. 괴테의 러브레터가, 아우츠비츠 생존 작가 프레모 레비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재능이 생긴다. 쓰는 자체가 용기다. 독자에 대한 사랑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재능, 용기,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다. 결국 글쓰기는 독자에 대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