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다른 사람은 글을 잘 쓰는 데 제 글을 보면 창피해요”
공저 초고를 제출하고 글을 집계하고 단톡방에 공유하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 글을 읽어보면 모두가 잘 쓴 글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주눅이 든다. 얼마나 더 읽고 더 쓰고 더 뒤척여야 저런 표현이 가능할까 고개가 떨궈진다.
열 명의 작가가 같은 주제로 글을 써도 열 편 모두 다르다. 그들이 살아온 경험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이미 있던 것을 자기 스타일로 변환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쓰는 행위의 왕도다"라고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정철 작가는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은 하늘을 놓고 경쟁하지 않는다. 해와 달이 낮과 밤을 나눠 가질 수 있었던 건 서로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낮과 밤이 다르듯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다. 낮은 낮대로 아름답고, 밤은 밤대로 아름답다. 투박하더라도 자신만의 글을 쓰면 된다. 초등학생이 비뚤비뚤 그린 그림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듯이.
회사 동료 K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에 가면 그의 음정과 박자는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제멋대로였다.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이 노래를 꽤 잘 부르지만, 유독 그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한 음절 한 음절 또렷하게 발음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우리는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가을 야외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팀별 제기차기 게임에서 J의 차례가 되었다. 체격도 좋고 운동신경도 뛰어날 것 같아 모두가 기대했다. 단 한 번만 성공하면 우승할 수 있는 상황. 두 번의 연습 기회에서 모두 헛발질을 했지만,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마지막 도전을 지켜보았다. 결국 본 게임에서 헛발질로 실패했지만, 그는 가장 뜨거운 격려 박수를 받았다.
평생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단번에 걸작을 그려서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그림 그리는 것이 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생산품이 아니라 꾸준히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하루 쓴 사람과 이틀 쓴 사람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한 해, 두 해를 넘어 삼 년, 오 년의 시간이 쌓이면 글은 분명 달라진다.
"작가님, 다른 사람은 글을 잘 쓰는데 제 글을 보면 창피해요."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고 주저앉아 울기만 한다면, 영원히 자전거를 탈 수 없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페달을 밟게 된다. 넘어져 창피했던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데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 꾸준히 책을 읽고, 배우고, 끊임없이 쓰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색채가 묻어나고 붓끝에 힘이 실린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