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개월 간의 우당탕탕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할 분이 계실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글을 올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직무는 '신사업 기획'이라는 이름보다는 주로 PO(프로덕트 오너)라는 이름으로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 회사의 크기, 담당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실제 업무가 매우 달라지기에 채용 공고를 잘 읽어보는 게 중요하다.
지난 편에서 언급했듯 입사하자마자 플랫폼의 핵심 중, 공급자(사업자) 사이드를 확보하게 됐다. 고객 인터뷰를 나갔다가 얼떨결에 우리 플랫폼에 입점까지 제안하고 설득했다. 이 사장님이 정말 좋았던 건, 이분께서 다리를 놓아주셔서 다른 대형 사업장 2군데 정도를 설득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사업장에도 이 사장님들의 명성을 팔아 10군데 정도의 초기 제휴에 큰 도움을 얻었다. ("OO 사장님 아시죠? 이분이 이 시장을 처음 만드신 분이에요. 저희 플랫폼은 이분과 함께 시작하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사업장을 설득하곤 했다.) 첫 해엔 운영이나 서비스 방향성을 먼저 잡는 게 목표였기에 사업자 제휴를 추가로 진행하진 않았다.
이때, 인터뷰와 제휴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이 짜는 게 좋은 것 같다.
사업자 인터뷰 및 제휴 프로세스
1. 시장조사 인터뷰 요청(콜드콜, 콜드메일) 및 진행
2. 사장님의 페인포인트, 시장 생태계 이해
3. 이해를 바탕으로 제휴안 준비
4. 제휴안 제안을 위한 미팅, 제휴(MOU)안 확정
5. MOU 행사 진행
6. 언론 배포(PR)
왜 위와 같이 프로세스를 가져가는지?
신사업 기획이든 창업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업이라고 생각한다.
플랫폼은 공급과 수요, 양 사이드의 유저가 있을 때 효력이 있다. 그렇기에 초기엔 다른 것보다 유저 한 명 한 명을 설득하는 영업이 중요한데, 고객 입장에선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사업 제안을 한다면 의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터뷰를 먼저 진행하며 공감과 관계를 쌓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페인포인트를 파악하여 제휴 안을 가져가면 높은 제휴 전환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프로세스가 안 되는 상황도 많을 것이다. 특히 B2B인 경우가 그렇다.)
또한, MOU를 진행하면 PR 활동도 가능해진다. 스타성을 가진 사장님과의 MOU를 행사로 열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하여 언론사 여러 곳에 뿌렸다. (이것도 전부 기획자(내)가 했다...ㅎㅎ)
이 과정에서 아는 지인분 중에 기자 활동을 하셨던 분이 계셔서 원고를 검토받았고 덕분인지 2개의 언론사에서 우리의 기사를 게재해 주고, 방송 인터뷰 요청까지 이어졌다.
사업자를 설득하고 제휴로 이어지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도 일반 고객 유저의 확보도 함께 진행했다. 사업자보다는 고객 확보가 더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의 플랫폼은 계졀성이 강했는데 당장의 기능으로는 일반 유저들에게 계절에 맞춘 가치를 제공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연 유입한 유저의 대부분이 이탈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일반 유저가 플랫폼에 머무를 만한 가치를 제공하는 기능 개발에 바로 돌입했다. 검증 프로세스는 보통 아래와 같이 진행했다.
신규 기능 개발 프로세스
1. 가설 수립 (고객은 ~한 불편을 겪을 것이다.)
2. 인터뷰 진행 (~을 할 때, 어떤 점이 불편하셨나요?)
3. 아이디어 도출 (그 불편 이렇게 해결해 볼까?)
4. 개발 진행 (개발자, 디자이너님. 고객들은 ~한 불편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해요)
5. 데이터 확인 (고객 이탈은 얼마나 줄었지?)
위와 같이 개발을 하면 3가지 장점이 있다.
1. 팀의 동기부여
생각보다 기획자는 팀의 동기부여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위 개발 과정은 고객의 불편을 직접 듣고 해결책을 만들고,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그냥 하라는 것보단 이게 왜 필요하고, 내가 어떤 기여를 하게 됐는지 알 때 더 열심히 하게 된다.
2. 실패를 기반으로 성장
또한, 위 과정은 고객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번 가설은 안 먹혔으니 다음엔 이런 가설에 기반하지 않는 다른 걸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 과정을 통해 팀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에서 기능이나 제품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인터넷에선 얻을 수 없던 더 좋은 아이템을 발굴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는 3번 정도의 인터뷰 사이클을 거쳤을 때, 20~30개의 아이디어 목록을 만들 수 있었다.
3. 설득 및 협의의 용이성
동기부여든 설득이든 위 과정은 팀뿐만 아니라 임원과 대표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리 직원들이 필요 있/없다고 백날 얘기하는 것보다 고객 한 명이 필요 있/없다고 말하는 게 더 임팩트있다. 계획을 세우고 원하는 만큼 결과를 냈는지, 무엇을 새로 얻었는지 정보가 쌓이기에 이를 싫어하는 상급자를 본 적이 없다.
위에서 이탈율이 너무 높아 플랫폼이 활성화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게 실험의 목적이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우리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체재를 사용한 사람들을 모았다. 다만, 이때는 모집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내가 여기저기 커뮤니티나 SNS에 제안 메일과 댓글을 달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유사 경험이 있으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렇게 5명 정도 인터뷰를 어찌저찌 진행하고 인사이트를 정리했다. 인터뷰에서는 고객에게 원하는 아이템을 묻지 않고, 어떤 불편이나 감정을 느끼는지, 행동을 하는지 물었다. 결과를 종합해 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는 키워드를 뽑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플랫폼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능을 리스트업 해보고 커뮤니티 기능을 도입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건 실수였다ㅎㅎ)
기능을 만드는 걸로 결론은 났지만 어떤 세부 기능이나 UI가 좋을지 판단하기 위해 노코드 툴을 활용해 프로토타이핑을 했다. ppt처럼 버튼을 누르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는데, 대략적인 스케치부터 제작까지 디자이너와 함께 4시간 정도 투자해서 만들게 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가설 수립부터 프로토타이핑까지 이틀 만에 했는데 참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프로토타이핑된 화면과 기능 중, 우리가 필수로 넣기로 한 기초 기능들은 개발자에게 미리 만들어 두고 있으라고 요청했다. 나는 개발자가 기초 작업을 하는 동안 잠재 고객들이 있을만한 장소로 출장을 가서 프로토타입을 테스트 해달라고 요청하고 다녔다. 그렇게 5명 정도 인터뷰를 하고 불편점을 정리하고 회사에 돌아와 추가로 화면 설계를 진행하고 개발로 넘겼다. (물론 사업자 측에서 불편해 할 수도 있는 기능들은 따로 전화를 돌려서 도입에 대한 의견을 묻고 진행했다.)
위 모든 과정을 거쳐 서비스 도입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결과는? 당연히 망했다. 이탈율도 개선되지 않았고, 커뮤니티엔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더 큰 문제들은 기능 구현의 난이도가 높은 것도 많아서 추가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류 투성이에 사용성까지 나빴다.
3개월 동안 첫 사업자를 모으고, 고객에게서 첫 결제를 받고, 언론에 우리 제품과 회사를 노출시켰다.
물론 여전히 이탈율은 심각했고, 고객에게 핵심 가치를 제공할 수 없었고 여기에 적지 못한 수많은 개발, 실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운영까지 많은 문제가 있었다. (CTO분과 몇 시간씩 싸운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제휴를 맺었을 때, 고객이 우리 서비스에서 첫 결제를 했을 때를 생각하면 모든 걸 견딜 수 있었다. 얼마나 좋았냐면 첫 결제 고객분께 너무 신기해서 바로 전화를 걸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직접 뵈러 간 적도 있었다.
이처럼 신사업을 만드는 기획자는 정말 잡다한 일을 하지만 결국 고객에게 기존에 없는 가치를 전달하기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2편 정도 나눠서 위 과정 이후에 있었던 각종 기획 업무와 서비스 투자 유치 등의 사건, 퇴사와 전반적인 회고를 남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