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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처럼 Jun 27. 2022

당신의 진정성은 누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가

콘텐츠로 돈 버는 법, 나는 왜 책을 쓰려고 하는가


첫 강의에 40명이 모였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강의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순간 마이크를 내려놨다. 함께한 분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강의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의 공감을 사는 것은 중요하다. 공감을 나눌 수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해도 제대로 전달될 리 없기 때문이다. 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거나, 같은 경험을 했다면 공감하게 된다. 공감하는 순간 마음이 열린다.



엄마가 되어가는 경험


2017년 9월 6일,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 빨랐다. 새벽 1시 양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급히 병원에 전화를 하니 상황을 좀 더 보자고 했다. 새벽 3시가 되어 좀 더 양이 많아져 다시 전화를 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분만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전 9시쯤 되어 심하게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기의 심박수가 빨라졌다. 간호사를 부르니 뱃속에서 잘 놀고 있다 했다. 한참이 지나도 심박수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올라갔다. 다시 부르니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수술을 하자 하셨다. 그리고 불과 4분 뒤 아기가 태어났다.


놀고 있는 줄 알았던 아기는 탯줄에 목이 감겨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탈 없이 아기가 태어났다. 출산 후 대게 아기를 바로 안아본다. 나는 수술 후 한참 동안 몸이 회복되지 않아 4일 만에 아기를 품에 안았다.


결혼하고 4년 만에 얻은 아기다. 누군가에게는 빠르고, 누군가에게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일 것이다. 나에게는 애가 타는 시간들이었다. 지나가는 아기만 봐도, 누군가 임신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왜 나에게는 아기가 오지 않을까' 절망했다. 태어나 무엇인가를 가장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었다.


모든 아기가 귀하지만, 유독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아기라 더 감사했다. 그런데 아기가 조금씩 커갈수록 나는 자꾸 작아지는 듯했다. 하루 종일 말을 못 하는 아기와 둘이 있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아기가 자는 틈틈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기 매일 1권씩 책을 읽어나갔다. 남편은 '틈날 때마다 잠이라도 더 자라'는 말을 종종 했다. 밤새 잠을 설치는 아기 덕분에 나 역시 잠을 설치던 시기였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가 행복하다


당시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기도 어린데 좀 더 있다가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를 넘어서 나는 무엇인가 해야 했다. 아기를 보며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세우기 위해서 무엇이든 말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가 행복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봤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파트타임 일을 해야 되나, 회사에 취직해야 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아기를 집에 두고 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기도 보며 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당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든 어디서든 이동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아기를 키우며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일이었다. 이후 나는 블로그 관련된 정보를 하나 둘 올리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블로그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수익으로 바꾸는지 등 그동안의 경험을 담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덧글로 반응을 보였다. 각자의 고민, 질문들이 이어졌다.


블로그 강의는 아기가 11개월 되던 때 시작했다. 운영하는 블로그에 모집 글을 올렸고, 40명 정도가 신청을 했다. 첫 강의를 할 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모집을 도와주셨고, 첫 강의를 응원해주셨다.



어떤 경험이라도 가치가 있다


심리학자 랜달 햄록은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20년 동안 1만 명 넘는 사람들의 직업 관련 심리 상담을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닌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평소 입버릇처럼 말한다. "누구나 잘하는 것은 반드시 있다. 다만 자신만 모를 뿐이다"라고 말이다. 첫 강의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랫동안 경력이 단절된 채 육아를 하는 엄마들 중에는 본인만 모르는 값진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짧게는 30년 이상을, 보통은 40년 이상을 살아왔다. 자신만의 이야기, 노하우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다. 10년이 넘게 육아만 해왔다 하더라도 각자 남다른 경험은 분명 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노하우, 좁은 집을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살림 노하우,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종잣돈을 모은 노하우, 육아하며 틈틈이 글을 쓴 노하우, 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아이를 영재로 키운 노하우 등 다양하다. 20대, 30대 회사를 다니며 쌓았던 일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이들도 있다. 다만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다.


대부분은 이런 경험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강의를 듣거나 컨설팅을 받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생긴다. 경험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들이 갖고 있는 경험은 각자의 생각보다 분명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기대 이상의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스스로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보여주고, 포장하고, 파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  



공감이 된 이유


강의는 '수익형 블로그'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단순히 전달만 하는 강의보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강의가 컨설팅 같다는 이야기도 여기에서 나왔다. 강의 시작은 항상 자기소개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소개와 하는 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입을 떼지 않고 강의를 듣다 보면, 질문이 있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사라도 나누면 좀 더 쉽게 입을 뗄 수 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대부분 엄마들이 수강생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육아를 하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그동안은 아기의 성장 기록을 담았다면, 일에 대한 고민을 하며 콘텐츠 주제를 넓혔다. 그게 그동안의 블로그로 돈 벌었던 이야기를 담는 거였다.


블로그에 아기 성장 기록을 담다 보니, 자연스레 강의 시작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준 이들 역시 엄마들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후기가 늘어났다. 덕분에 이를 본 작은 가게 사장님, 변호사, 의사, PD, 아나운서, 세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나 컨설팅을 찾아왔다.


물론 시작이 쉬운 건 아니었다. 어렵게 아기가 찾아왔고, 무엇보다 그 순간에는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조금씩 커가는 아기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만큼 나는 작아져갔다. 무엇인가 뒤쳐지는 느낌이 들고, 당장이라도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옆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블로그에 글을 쌓아나갔다. 당장 수입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쌓인 글들 덕분에 나는 세상 밖으로 다시 조금씩 나올 수 있었다.     


첫 강의를 하루 앞두고, 아기와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기는 며칠째 감기에 시달렸다. 거의 매일 병원을 들락거렸다. 나 역시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멈추지 않았다. 출산 후 몸조리를 제대로 안 해 다리와 허리에 통증도 심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강의를 미룰 수는 없었다. 얼마나 서고 싶었던 자리인데 포기할 수 없었다. 40여 명 정도 앞에 섰을 때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아니 덤덤해졌다.


나는 그동안 어떻게 블로그를 키워왔는지 이야기했다. 그저 하는 블로그가 아닌, 어떻게 수익으로 이어지게 했는지를 말했다. 강의를 하던 중 주마등처럼 그동안의 일들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몇 번의 힘든 시기를 겪고 찾아온 아기, 40도가 넘는 땡볕 아래에서 일하던 호주 농장, 15년 만에 지금의 남편을 찾아 스페인에 갔던 일,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온전히 공인중개사 시험에 매달렸던 시간들에 대해 말했다. 수익형 블로그 강의였지만, 사실 나는 온전히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사람들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나간 사람들은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앞으로를 응원하면서 말이다. 강의에서 나눈 나의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였다. 엄마라는 공통점 덕분에 그동안의 경험이 공감되었던 것이다.


사실 사람들 앞에 선 첫 강의였기에 어설픈 건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전문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의 후 후기에서는 '진정성'이라는 키워드가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이미 강의를 하는 나와 듣는 분들은 통하고 있었다.


나는 강의 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공통점을 찾았다. 각자에게는 반드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동기부여를 할 수도, 용기를 줄 수도 있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고, 돈을 벌게 해 줄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끄집어내고, 어떻게 콘텐츠로 만들고, 어떻게 포장하며, 어떻게 팔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자신의 이야기로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러면 굳이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파트타임을 고민하지 않아도 온전히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로 일을 만들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고, 나누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 쯤에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길 바란다. 그래서 누구라도, 각자의 삶이 애틋해지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각자의 삶에 감사함이 충만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과 경제적으로, 일과 육아도 함께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고, 용기가 솟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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