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망토 채채 Jul 19. 2020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은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다룬 영화, <밤쉘>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가 꺼려진 건 사실이지만, 사람이 없는 동네 영화관의 시간대를 포착해 꼭 보고 오리라 다짐한 영화가 있었다. 바로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이미지 출처: https://movie.naver.com/


감독: Jay Roach

배우: Charlize Theron, Nicole Kidman, Margot Robbie 등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09분 

국내 개봉: 2020. 07.08

줄거리: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인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트위터 공격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다. 한편, 동료 앵커인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언론 권력의 제왕’이라 불리는 폭스뉴스 회장을 고소하고 이에 메긴은 물론, 야심 있는 폭스의 뉴페이스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 역시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데…  최대 권력을 날려버릴 폭탄선언 이제 이들의 통쾌하고 짜릿한 역전극이 시작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91143)




 3명,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 


밤쉘은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다루고 있다. 다만 이 영화의 무대는 <폭스 뉴스>에서 일어난 실화 바탕이라는 것. 그리고 그 무대는 최근의 한국 현실을 빼닮았다. 


갑자기 어느 순간,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리가 없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집단에서나 이런 류의 성폭력은 늘 있어왔다. 옛날에는 그저 피해자가 숨거나, 피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했을 거다. 왜냐고? 일을 공론화했을 때 벌어지는 2차 가해, 보복 때문이다. 권력에 맞서 싸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좌천되거나, 잘리거나 등등 다양한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말한 사람에게 혹자는 말한다. "왜 더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피해자를 탓한다. 


직장은 우리의 생계를 이어나가게 해주는 곳이며 동시에 사회적 자아를 충족하는 곳이다. 당장 그만두면 생활이 어려운데, 모두가 그렇게 당장 그만둘 수 있을까? 이 곳에서 나는 더욱 성장하고 싶고,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은데 그걸 포기해야 할까? 내 잘못도 아닌 일로 말이다. '케일라 포스피실'도 그렇다. 폭스뉴스에서 그녀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 열정을 누군가가 이용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그녀는 끊임없는 자기 검열에 빠진다.


내가 약해 보였나? 

내 옷이 문제였나?

내가 무언가 잘못했나?


끊임없이 말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자신을 계속해서 되돌아본다. 정작 그런 행동을 가한 사람은 뻔뻔하게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데 말이다. 





 일상화된 직장 내 성폭력 


가해자들은 뻔뻔하다. 그리고 피해자를 탓한다. 왜냐, 자신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게 흠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직장 내에서도 여전히 '여혐'은 존재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앵커라도, 직업인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적인 대상으로 치부된다. 영화 초반에서는 폭스 뉴스의 메인 앵커인 '메건 캘리'와 트럼프가 설전을 벌인다. 그리고 트럼프는 1년이나 그녀를 공격한다. 외모, 몸매로 여성의 전문성을 깎아내리고, 생리를 해서 예민하다는 따위의 말을 트윗한다. 과연 남성이었어도 그렇게 했을까? 절대 아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동등한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성적 대상화시키며 조롱하고, 자신보다 아래에 놓는 것이다. 정작 그들 자신은 한 번도 그런 평가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메건 켈리'가 본인의 피해 사실을 밝힐지 말지 고민하는 시점에서도 한 남자동료는 말한다. '네가 이 사실을 말하면 폭스뉴스는 몰락할 것이고 나도 잘릴 것이다'라면서.




 직장에서 여성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여성 앵커는 변호사라는 전문성, 진행 능력 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폭스 뉴스에서는 딱 붙는 원피스에 힐을 신고 다리를 노출한 채 얼굴을 드러내야 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여자건 남자건 성별에 관계없이 직장에 일하러 왔다. 하지만 요즘에도 어떤 일에는 여자가, 어떤 일에는 남자가, 라는 식으로 성역할을 고정시킨다. 내가 막내라서 커피를 타는 것과, 여자라서 커피를 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조직의 상부에 위치한 수많은 사람들은 저급한 농담을 하거나 여성 직원을 차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 사람이라는 이유로 언제까지 이것이 합리화될 수 있을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불편하게 느껴야 한다. 


회사에서 내부 시상을 할 때, 왜 꽃은 '젊은 여자 직원'이 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반말을 찍찍하는 무례한 남성의 사례는 너무 흔하다. 결국 친구들과도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여자가 높은 자리에 많이 가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긴 하지만, 그건 아마 10년 이상은 흘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를 우대하지 않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




 3명의 선택,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은


이 영화에서 중심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3명의 주인공들의 선택은 약간씩 다르다. (공통점은 셋 다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지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레천 칼슨'은 치밀하게 준비해서 거대 권력에 맞설 준비를 한다. 그리고 터뜨린다. 그녀의 소송은 결국 폭스 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의 옷을 벗게 한다. 보상금은 물론이고. 

실제로 2016년 이 소송은 미디어 산업 내에서는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다룬 것이라 한다. 


'메건 켈리'는 영화에서 현실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레천의 소송이 나왔을 때 그녀는 곧바로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의 커리어와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한다. 하지만 딸을 보며 용기를 낸다. 적어도 내 가족이 사는, 살아갈 세상에서는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지.


'케일라 포스피실'은 유일하게 가상의 캐릭터다. 그래서인지 다소 캐릭터가 모호한 부분도 있었다. 영화 적으로라면 그녀 역시 소송을 걸거나, 폭로를 했을 텐데 별다른 움직임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지막에 폭스 뉴스를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다른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게 미디어가 아니어도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공부를 하거나, 피해자를 돕는 일을 하거나 등 다른 '행동'의 길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다만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케일라가 겪었던 성희롱을 그대로 카메라 워크로, 화면으로 담아야 했나 싶긴 하다. 누군가에게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건 정치 문제가 아니다 


이게 왜 잘못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잘못이 있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중세 마녀사냥식의 말과 다를게 무엇인가. 이건 '성폭력' 문제고, 정치 문제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회사든, 학교든 위계가 존재하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든 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발생할 수 있다. 


바뀔 때까지 말할 수밖에 없다. 계속 잘못되었다고 우리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사람으로 존중해달라고, 너의 그 행동은 어디서든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고. 


작가의 이전글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끝은 어디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