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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Dec 24. 2023

숨을 쉬기 위해 음악을 찾는 우리들

박지윤의 정규 10집 앨범, 그리고 함께 만든 사람들


토요일 오후. 박지윤 님의 정규 10집 앨범이 나와, 모처럼 눈 감고 휴식하며 진지하게 들을 음악으로 골랐다. 그런데 이거...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온몸이 아프도록>에서, 두 번째는 <사랑을 사랑하고 싶어>에서 도저히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거 누가 만든 노래야.. 이거 가사가 어떻게 이래.... 오케스트라 선율은 어떻고...... 이런저런 의문이 들며 휴식은 뒷전에 두고 음악 감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괜찮다고 말해줄 거야>에서 (내적) 눈물이 또르르..... 그리고 직감했다. 이 앨범은 명반이 되겠구나.



하루하루 쌓아올린 노래의 기록

앨범 발매일은 12월 14일, 1인 기획사 박지윤크리에이티브를 통해 발매되었다. 총 10 트랙으로 CD는 한정판으로 발매가 되었는데, 책자 형태로 발매가 되어 구매욕을 불러일으켰다......

10집 앨범 커버 출처: 벅스뮤직

앨범은 <숨을 쉰다>로 시작해 <고래, 달빛 아래 꿈>으로 끝나는데 첫곡과 마지막 곡이 박지윤 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다. <고래, 달빛 아래 꿈>은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과 끝에 일부러 배치한 의도도 있다고 한다.


트랙리스트는 사실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앨범 전체의 흐름이 하나의 영화를 보고 난 느낌으로 표현되게 하고 싶었어요. 첫 번째 곡 ‘숨을 쉰다’는 이번 앨범을 만드는 마음을 알리는 곡이고, 마지막 트랙인 ‘고래, 달빛아래 꿈’은 이 앨범을 모두 듣고 난 뒤에 남는 희망적인 여운이기를 바랐습니다.
- 뉴시스 인터뷰 중,


이 앨범의 타이틀이자 첫 곡인 <숨을 쉰다>는 앨범을 만들게 된 어떤 표지 같은 곡이다. 묵직한 피아노의 도입으로 시작된다. 숨을 내뱉는 듯한 보컬이 인상적인 곡이다.

숨을 쉬기 위해 노래를 불렀고, 살아 내기 위해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
그렇게 2년 동안 담아낸 앨범. 누군가에게도 그런 빛이 되기를 바라며...

- 앨범 소개 글 중에서


<온 몸이 다 아프도록>은 그냥 첫 구절에서 마음이 '쿵'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나 지금 이별했는지..?

나는 아직도 네 생각에
텅 빈 웃음으로 살아
나는 아직도 네 생각에
내 온몸이 다 아프도록 널 생각해

- 박지윤, 온 몸이 다 아프도록


곡이 진행될수록 오케스트라의 고조되는 선율이 인상적인데, 전자음도 중간중간 가미되어 또 너무 어쿠스틱 하지도 않다. 박지윤 님 공식 채널에 라이브 영상이 올라와 있다.

공식 채널, 박지윤 - '온몸이 다 아프도록' LIVE - 2023

가사는 솔직하면서도 정제되었다. 마음의 충격이나 아픔이 크면 이렇게 온몸이 아플 수 있겠지.. 뭐랄까. 그런 것들을 굉장히 직설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곡의 화자가 아픔을 잘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대망의 <사랑을 사랑하고 싶어>. 어떻게 보면 '사랑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를 부연 설명하고 있는 가사인데도 불구하고, 곡의 진행에 따라 움직이는 화자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냥 가사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이 곡이 타이틀인지 모르고 들었는데도 정말 한순간에 빨려 들어갔을 만큼, 대단한 곡이다.

출처: 박지윤 공식 유튜브, 10집을 만들며 - 박지윤 인터뷰 2023


이 곡은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행위예술가 박승우 님만 등장해 퍼포먼스를 하는데, 이 노래에서의 격정적인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광활한 몽골의 자연과 함께...

박지윤 <사랑을 사랑하고 싶어> 뮤직비디오


<사랑하게 해요>는 자연의 소리가 담긴 곡으로, (노리플라이) 권순관 님과 작업한 곡이다. 곡 길이가 약 5분에 달할 정도로 긴 곡이다. 이 앨범에서 환기되는 역할을 하는 비교적 밝은 무드다. 권순관 님 곡은 딱 역시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유일한 기타 기반의 곡 <그래서 미안해>는 임헌일 님이 작곡. 반가운 이름들이다. <바래진 기억에>, <봄, 여름 그 사이>라는 노래들을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당시 인디음악에 빠져있었던 나도 자주 찾아 듣게 되는 노래였고, 당시 정준일, 임헌일, 권순관 님과 같은 분들과도 작업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꽃잎>은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예쁜 노래다. 아름다운 연주곡 위에 살포시 올려진 노랫말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인 전진희 님의 곡인데,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지만 오케스트라가 더해져 전달해 주는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 잔잔한 풍경에서 뭔가 더 스케일이 커졌다고나 할까.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이 곡이 현악기 선율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연주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곡이다. 그냥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기도... 진짜 비 개인 아침 심상이 저절로 떠오른다. 가사도 뭐랄까 하나하나 수공예로 빚은 섬세한 느낌이다. 굉장히 서정적이고 여린 감성이 잘 느껴지고, 제일 시적인 곡이다. 박지윤 님의 음색과도 참 잘 어울린다. 핸님도 그렇지만 전진희 님도 본인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아티스트한테도 딱 맞는 곡을 줄 수 있는지.

다툼은 아무 힘이 없고
사랑만 남을 것을 알면서도
차가운 빗속에 떠다니는 꽃잎 되어
정처 없이 흐르네

- 박지윤, 꽃잎


그리고 8집에서는 아무래도 편곡자인 용린 님 영향인지 기타 사운드 기반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한 곡 빼고 피아노 기반이다. 작곡가 분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의 라이브 앨범도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기에 음악 스타일의 변화 같기도 하다.

박지윤 유튜브, 박지윤 10집을 만들며 - 톤 스튜디오 최민성 엔지니어 팀장님과의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앨범에서 믹싱과 마스터링이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컬이 매우 선명하고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려서, 큰 스피커로 들을수록 좋았다. 코멘터리 중에이번 정규앨범의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 등 엔지니어링을 도맡아주신 톤스튜디오 최민성 팀장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소규모 라이브도 종종 열리는 것 같던데 꼭 가보고 싶다.



나의 마음을 건드린 것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진정성을 건드리는 음악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뭐랄까,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노래의 가치랄까.

박지윤 유튜브, 박지윤 10집을 만들며 - 오케스트라 편곡자 김건 님과의 만남

이번 앨범에서 특징은 단연 오케스트라 사운드 같다. 5곡이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이루어졌고, 곡과 잘 어우러지는 현악기 선율이 감성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전 앨범과 비교했을 때 곡의 완성도 자체가 좀 더 다듬어진 느낌인데, 오케스트라도 한몫을 했다. 더욱 섬세하고 정교해졌달까.

박지윤 유튜브, 박지윤 10집을 만들며 - 오케스트라 편곡자 김건 님과의 만남

1곡을 제외하고 모든 곡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도맡아 하신 김건 님. 말씀하시는 것도 너무 차분해서 엄청 신뢰가 갔다..(어쩐지 교수님)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건드린 것은 가사다... 흑흑. 이번 앨범에서 가장 참여도 비중이 높은 헨(hen)님의 가사는.. 양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섬세하다.


이제 난 사랑을 알았기에
주고받는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알게 됐지
그 빛나는 것들을

- 박지윤, 사랑을 사랑하고 싶어 (작사: 헨)

박지윤 유튜브, 박지윤 10집을 만들며 - 뮤지션 Hen 님과의 만남


난 행복할 거야
내가 바라던 날 만나고 말 거야
난 내게 주어진
오늘 하늘빛을 사랑할 거야

셀 수 없이 찾아오는 고민들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
마음껏 안아주고
꽃피우게 바라볼 거야
빛을 낼 거야

- 박지윤, 괜찮다고 말해줄거야 (작사: 헨, 한석규)


이 노래는 내 새해 첫 곡으로 당첨.. 날 울린 가사.. 자기 확언이랄까. 행복하겠다는 의지랄까. 그런 것들이 담긴 곡인데 나를 믿고 걸어가야겠다는 마음이 퐁퐁 샘솟는 위로되는 노래다.

박지윤 유튜브, 박지윤 10집을 만들며 - 뮤지션 Hen 님과의 만남



같은 결의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


앨범 코멘터리 중에서, 점점 음악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 사라진져서 아쉽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음악을 계속해나가다 보면 이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되나 보다. 박지윤 님이 대부분 직접 연락을 드려서 작업이 시작된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뭐랄까 같은 결의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작업기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헨님과 함께 한 코멘터리 너무 재밌게 봤다. 정석적으로 성실하게 작업하시는 태도도 인상적이었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잘하는 작곡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원래도 치즈 <변명>, 이소라 <그대가 내맘에 이렇게>, 선우정아 <체크인>, 조유리 <멍> 등등 너무 작업한 곡들을 좋아했다. 특히 조유리 <멍>은 크레딧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그 앨범에서 제일 좋았던 노래인데, 아니 이 곡도 헨님이...?! 이런 느낌. ㅎㅎ... 이번에 객원보컬과 함께한 미니앨범 [사랑의 경도]도 너무 좋고, 특히 이민혁 님과 함께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노래가 정말로 너무 감성에 와닿는다....... 밤에 자기 전에 매일매일 듣고 있다. 정말로 감성충전되는 느낌. 앞으로도 정말 계속 음악 해주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레슨도 받고 싶다..?ㅎㅎㅎㅎ.... 이 마음을 담아 스포티파이에 헨 님의 곡들을 모아놓은 플리도 만들었다.


내가 왜 이토록 크게 끌리나. 객관적으로 어쩌고저쩌고 해도 생각해 보면 결국엔 같은 결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 인듯하다. 사랑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사랑하고 싶은 마음. 두렵지만 다시 또 사랑하고 싶은 그런 마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박지윤 님은 처음 이 노래 데모를 듣고 울었다고 한다. 근데 그 마음을 너무 알 것 같다. 노래가 좋은 것도 그렇고, 가사가 와닿는 좋은 곡을 들어서도 그렇겠지만, '내가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가 되었구나, 나에게도 이런 곡이 오는 날이 있구나'라는 벅찬 마음이 컸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늘 똑같이 반복되고 늘 그 자리인 것 같아도 하루하루 살아내면 결국엔 작은 빛이 돼 다가오는 게 있다고 믿고, 늘 쉬는 숨이 대단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음악을 대하고 싶습니다.

- 뉴시스 인터뷰 중,


이번 앨범을 계기로 그녀의 예전 앨범도 함께 듣고 있다. 결국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내는 삶의 태도가 음악에서도 빛을 발한 것 아닐까. 보컬도, 곡도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내 것'을 진심을 다해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코멘터리로나마 엿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연말에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나의 진심도 누군가에게 통하길 바라본다.


나 역시 숨을 쉬기 위해 음악을 듣고, 또 말하는 사람. 내년 3월에 무려 새로 개관한 마곡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티켓팅에 성공하리라... 마음을 먹어본다. 이 앨범이 2주만 일찍 나왔어도 아마 올해 음악결산에 들어갔을 텐데!! 하는 마음에서 구구절절 써본 앨범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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