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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채채 Dec 27. 2023

'연말' 공연의 의미

브로콜리너마저 2023년 연말 콘서트 -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브로콜리너마저의 연말 공연 며칠 전 운 좋게 취소표를 구했다! 드디어 보러 가는구나.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이지만 공연을 본 게 처음....이다. 말로만 팬이었나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공연에서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걸 보면 진짜 팬이구나 싶고.. 무튼 그랬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야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나는 홍대와 가까워서인지(?) 인디 음악에 깊게 빠지게 되는데..... 그때 당시 들을게 한창 많기도 했다. 인디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브콜너의 노래 역시 열심히 들었다. 근데 그때는 계피님의 보컬에 좀 더 매료되어 가을방학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졸업] 앨범을 들을 당시 나는 어렸고, 실패라든지 우울 같은 것 따위와는 거리가 멀거라 생각하기만 했다. 이제 나에겐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으니까. 졸업도 먼 일로 느껴졌다. 그래서 이 앨범은 발매 당시보다, 오히려 대학 졸업 이후에 더 많이 찾았다. <울지마>는 30대가 된 지금도 주기적으로 듣게 되는데,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라는 구절에서는 k-직장인의 비애와 맞닿아 퇴사 직전 힘들 때에도 많이 들었다. 정말 대단한 가사라고 생각한다. 울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라도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그렇게 말하는 마음이라는 게.



힘이 들 때 찾게 되는 노래

돌이켜보면 힘들 때 그들의 노래를 더 찾았다. 2021년에 나온 ep가 딱 그랬다.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EP) 앨범커버 (출처: 벅스뮤직)


당시 나는 이직을 위해 계속해서 도전했지만 결국 5번의 최종탈락을 겪고 넉다운 상태. 그때 나에게 <어떻게든 뭐라도>는 생명수와도 같은 노래였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너는, 이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구절에서 나는 그냥 울 수밖에 없었다. 포기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그냥 <바른생활>의 가사처럼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자, 생각을 하지 말고 생활을 하자”를 하려 했다. 생각을 하면 더욱 깊이 빠져버리니까, 그냥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시간들을
혼자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다들 편안히 잘 지냈는지

애쓰지 말고 편해지렴
수고했어 긴 시간 동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너는
이젠 어떡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시간은 흘렀다. 더 최선을 다할 방도도 없어서 그냥 흘려보낼 수밖에 없던 시간들. 시간은 흐르고, 힘든 시간이 지나면 성장한다지만 딱히 남은 건 크게 없었다. 그냥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들었다. 너무 이직 준비에만 매여있던 나에게 다른 여가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의 방면에서는 딱히 뭐랄게 없었다. 후회되는 건 아니지만, 그때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애쓸 수밖에 없는 나.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나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아도 누구보다 열심히 해내려 한다는 걸 안다. 내년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덕원님 말처럼 내년은 그렇게 너무 애쓰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깊은 수렁을 지나와서 그런가. 그래도 살다 보면 또 이렇게 행복한 순간들도, 손꼽아 기다리는 일들도 생기니까.



공연을 보고 나면 항상 새롭게 좋아하는 곡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꾸꾸꾸><막차>가 그랬다. “감출 수도 없는 초라한 마음을 위로받으려 할수록 외롭기만 했었지만,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별 볼일 없는 날들도 나쁘진 않을 거야”라는 가사가 유난히 와닿았다. 아이브의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라는 가사가 나오기도 훨씬 전부터 내 장점은 솔직함이라 생각했는데, 최근 솔직히 솔직하기 어려운 순간이 조금 있었다. 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뻔한 사실을 새삼 느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나는 계속 솔직하고 싶고 특히나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더욱 그러고 싶다. 그래서 이 구절이 크게 느껴졌나 보다.



보편적인 노래, 2009년의 우리들, 앵콜요청금지... 이 노래들을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 행복하고 아련했다. 저 노래를 듣던 10년도 더 전엔 이런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훌쩍 커버린 느낌이다.



[어떻게든 뭐라도 -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신곡) - 잊어버리고 싶어요 -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 1/10] 까지 이어지는 셋 리스트에서는 그야말로 연말 공연에 걸맞은 선곡이라 생각했다.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게 하고, 또 놔주게도 하고. 남은 2023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연말을 마무리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남은 2023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연말을 마무리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잊어야 할 일이든 아니든 잊어버려야 다시 좋은 기억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으로 떠날까요”라는 그들의 가사 구절처럼, 새롭게 쌓일 2024년을 기대하며 지난날들을 놓아줘야겠다. 아니, 기꺼이 놓아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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