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한의 『산중일기』, 치열한 독서 여정에 담긴 '지리산 불교'
▲경남 함양군 ‘최치원 역사공원’에 세워져 있는 고운 최치원(857~?) 동상. 우담은 함양 읍내 서원마을에서 묵었는데, 이 마을 이름이 최치원을 모신 백연서원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2017년 봄부터 ‘지리산 권역 인문학답사 콘텐츠’ 소개를 취지로 매월 독자 여러분과 만나오던 이 지면은 만 6년을 채운 다음 달 72회를 끝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필자의 ‘지리산 이야기’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 즉 ‘지리산 유람록’에 나오는 지리산의 길과 풍경, 사암(寺庵)과 고승들에 대한 내용을 자주 소개하였는데, 이때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의 『산중일기』를 가장 많이 인용하였다. 본고의 마지막 2편은 ‘지리산 인문학답사’ 콘텐츠 발굴과 지리산 불교사 연구에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산중일기』와 우담 정시한(1625~1707)이라는 인물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오랫동안 지리산 산악활동을 해온 필자는 2000년도 초반, 지리산 산사(山寺) 순례 과정이 담겨있는 우담의 『산중일기』 번역본을 접하며 큰 감명을 받았다. 이후로도 그 느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는데, 결국 필자는 『산중일기』를 텍스트로 하는 지리산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지는 2007년 늦여름 서울에 있는 ‘나주정씨월헌공파’ 문중 사무실로 걸음하게 하였고, 이때 문중에서 발간한 『국역 우담전집』을 비롯해 여러 책자를 증정받는 인연을 맺었다.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16년이 지난 지금도 미적거리고 있으니 송구할 따름이다. 부디 우담 선생의 『산중일기』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길 기대하며, 아울러 필자도 새롭게 그때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우담 정시한은 1625년(인조 3) 서울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부친(정언황)을 따라 원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대부분 이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1707년(숙종 33) 8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담의 본관은 나주(압해정씨)로 조부를 제외하고는 조상들이 모두 당상관 이상의 높은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였다. 그러나 우담은 출사를 포기하고 과거를 보지 않았으며, 문음(門蔭)으로 여러 번 관직에 추천되었지만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청장년기는 오로지 부모를 봉양하며 효행으로도 이름이 높았고, 직접 농사일을 관리하면서 실천적 삶을 살아왔다. 또한 퇴계 이황을 사숙하며 학문정진에 매진하여 도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다. 우담의 이러한 삶에 대해 방계 후손인 다산 정약용은 ‘우뚝하여 산악과 높이를 가지런히 하며 빛나, 일월과 빛을 다툰다.’라는 글로 극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담은 부친과 모친이 차례로 작고하고 삼년상을 치른 후에 산사에서의 독서를 통한 학문연구에 매진할 뜻을 세운다. 그리고 62세 때인 1686년 3월 원주의 집을 출발하여 여행에 나서며 실행에 옮긴다. 1649년 부친이 안동부사에서 파직되어 원주 법천에 머물 때에도 논어 1부를 가지고 산사를 왕래하며 10여 년 동안 읽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청년기에도 오랫동안 산사에서 독서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담이 지리산 산중암자에서 독서하던 『근사록』, 『심경』, 『주자서절요』 등은 그가 청장년 시절에도 반복해서 읽었던 책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담의 산사순례는 단순한 유람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자신의 학문을 정립하려는데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중일기』 번역본(신대현 역)과 「산중일기」상‧하권이 들어 있는 『국역우담전집』Ⅱ
『산중일기』는 우담이 전국을 여행하며 산중암자에 머물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매일의 생활을 기록한 책으로,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의 내용은 그 일정에 따라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를 감안하면 모두 4차례의 여정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1차 여정(1686년 3월 13일~1687년 1월 22일)에 지리산 권역에서 머문 내용이 들어있다.
『산중일기』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마다 ‘리里’와 ‘보步’ 등 거리 단위를 사용하여 이동 거리를 기록하였고, 산중암자와 주변의 자연세계는 물론, 그곳에서 만난 승려들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산중일기』는 ‘사찰사’를 비롯한 불교사에 있어 귀중한 사료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우담은 원주의 집을 출발한 후 속리산을 거쳐 남행하여, 가야산의 사암들을 들른 뒤 함양에 도착하였다. 사근역(현재 수동초교 자리)에서 말에게 먹이를 주고는, 읍내 서쪽 ‘서원마을’에 살고 있는 김후달의 집으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1686년 음력 4월 11일 저녁 무렵의 일이다. 그리고 우담은 이날의 일기 말미에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이곳의 고을수령을 하였기 때문에 이 서원이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라는 글을 남기며 백연서원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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