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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섭 Sep 26. 2024

벽암대사와의 만남, '화엄사'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절집, 중창불사 주도

▲ 구례 화엄사 '벽암국일도대선사비' . 조선후기 불교중흥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벽암각성대사의 행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뒤편에 보이는 전각은 화엄사 금강문이다.    


지리산자락으로 겨울비답지 않게 많은 비가 내려 설산(雪山) 지리산의 모습을 기대하였지만, 예상과 달리 만복대와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에는 희끗희끗 잔설의 흔적만 비치고 있다. 이대로 겨울은 지나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조바심 때문일까, 기다림 때문일까라는 또 다른 물음이 툭 던져진다. 그동안 지나치기만 하던 구례 화엄사를 마음을 다잡고 찾았다. 너무도 잘 알려진 큰 절집이야기를 하기란 그 부담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오르기 직전, 배롱나무 한 그루가 마치 수호하듯 서있는 곳에 ‘벽암국일도대선사비’라는 오래된 석비가 있다. 이 비에는 조선불교 중흥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벽암 각성대사(1575~1660)의 행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벽암은 그 엄혹한 억불의 시대에 지리산을 비롯한 속리산, 가야산 등의 사암(寺庵)에서 수행하였고, 문하에 수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하였다. 또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지리산의 절집과 보은 법주사, 순천 송광사, 합천 해인사 등 전국 주요사찰의 중창불사를 주도하였다.    

 

‘벽암’은 법호이고, ‘각성’이 법명인 스님은 10세 때 화산 설묵화상을 스승으로 출가하였다가, 14세 때인 1589년에 벽송문중(碧松門中)의 유명한 선승인 부휴선수대사를 만나 그의 문하에 들게 된다. 이로서 그의 스승이 주로 활동하고 있던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벽암각성은 벽송문중의 사형인 사명대사의 권유로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18세의 어린 나이로 의승수군으로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1600년 25세 되던 해에는 병환 중이던 스승의 지시로 지리산 칠불암의 강석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비록 젊은 나이였지만 당시 벽암이 지니고 있던 교계에서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612년 무고로 스승 부휴대사와 함께 옥에 갇혔을 때는 오히려 광해군은 이들의 인품에 매료되어 벽암각성을 판선교도총섭으로 임명하여 봉은사에서 주석하였다. 


1615년 스승 부휴선수대사가 입적하자 다시 칠불암으로 돌아오게 되며, 1618년부터 인근의 신흥사에 머물며 법을 펼쳤다고 한다. 바로 이 시기 벽암각성은 지리산을 다녀간 사대부들이 남긴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임진왜란기 군담소설 ‘최척전’의 저자인 조위한(1567~1649)은 1618년 4월 중순 하동 쌍계사에서 만난 벽암각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절의 승려들이 앞뒤로 삥 둘러앉았는데, 그 중에 옷이 매우 깨끗하고 눈빛이 빛나는 이가 있었다. 법명은 각성(覺性)이라고 하는데 경서에 통달하고 글을 볼 줄 알아서 불가의 대승의 교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중략) 젊고 환한 승려들 수백 명이 나한(羅漢)처럼 둘러서 있는데 모두 각성의 제자들이었다.’   


                     ▲벽암각성대사 진영. 사진ⓒ월간 고경

  

이처럼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벽암에 대해 한결같이 ‘용모가 수려하고, 경서에 통달하였고, 시문을 주고받았다’라며 묘사하고 있다. 이는 스스로의 수행뿐만 많은 문도들을 거느리며 제자양성에도 치열했던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후 1624년 임금 인조로부터 팔도도총섭으로 제수되며 승도들을 동원하여 3년 만에 남한산성 축성을 마치게 되는데, 이때 비문에 있는 ‘국일도대선사’의 시호를 하사받게 된다.     


그리고 1630년부터 1640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왕실의 지원과 원력으로 화엄사와 쌍계사의 중창불사를 주도하여 대가람의 면모를 유지하게 하였다. 이후 벽암각성은 해인사, 법주사 등에 머물다가 1648년에 화엄사로 되돌아온 후, 1660년 입적하였다. 세납 85세, 법랍 72세 때의 일이다. 불우의 시대를 만났지만 평생을 오롯한 정신으로 헤쳐 나간 스님을 기리며, 그의 석비 앞에서 예를 올린다.[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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