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유자들로 북적
▲한암대사, 추파대사 승탑과 비(碑). 왼쪽의 비와 승탑은 한암성안대사, 오른쪽 비와 승탑은 추파홍유대사의 것이다. 추파대사 승탑에는 ‘구연탑(九淵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지곡사(산청읍 내리)에서 도로를 따라 심적사 방향으로 약 300m 오르면, 오른쪽 주차장 있는 곳 산자락 입구에 있다.
11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날, 경남 산청군 웅석봉 아래에 있는 ‘지곡사 옛 절터’를 찾았다. 현재 이곳에는 1958년 옛 지곡사 산신각 터에 새롭게 지은 지곡사가 있기도 하다. 웅석봉 들머리에 있는 ‘내리저수지’ 위 주차장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지만, ‘옛 절터’의 느낌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산자락 아래 넓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농원으로 들어섰다. 팬션 등 단지를 이루고 있는 이곳이 절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원 왼쪽 모퉁이에서 탑신이 비어 있는 귀부 1기를 만났다. 예리한 날에 머리가 잘려나가고 없는 이 유물은 농원의 장식물처럼 무심하게 놓여있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 나오자 비로소 내리저수지 위, 버섯농장 옆에 서있는 문화재 안내판과 보호울타리 안에 놓여있는 유물들이 보인다. 이곳에도 역시 목이 잘려나가고 비신이 없는 귀부 1기가 있다.
2002년에 실시된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의 ‘지곡사지 시굴조사’에 의하면 지곡사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국태사라는 이름이었다고 또 다른 기록은 전하고 있다. 고려초기 석초, 혜월 두 대사가 머물 당시 크게 번창하였고, 대각국사 의천이 개창한 천태종 5산문에 들어갈 정도로 사세가 컸다고 한다. 내리저수지와 농원이 있는 산자락 일대 전체가 옛 절터였을 거라고 하니 절집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의 두 귀부에는 바로 석초, 혜월 대사의 일대기를 새긴 비신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석초대사의 비문은 탁본으로 남아있어 ‘지곡사 진관선사 오공탑비문’으로 전해진다.
▲지곡사 석탑재
조선전기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후기(19세기)에 간행된 각종 읍지에도 계속해서 ‘산음현(산청) 불우조’에 지곡사의 내력이 나올 정도이니, 조선시대에도 산청을 대표하는 큰 가람이었을 것이다. 지곡사는 일제강점기 때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1933년 박한영 스님이 쓴 유람기의 ‘산청의 지곡사 유허지를 돌아본 후에’라는 내용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6세기 중반, 성대한 학술회의 장소로서의 지곡사 풍경이 전해지고 있어 흥미롭다. 1566년 1월초, 성균관 학정을 제수 받은 덕계 오건(1521~1574)이 스승인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을 모시고 개최한 강회(講會)가 1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지곡사에서 열렸던 것이다. 경상우도의 수많은 유림들이 참석하였던 이 강회에는 당시 큰 절집이었던 지곡사의 수용공간이 부족해서 참석자 중 일부는 되돌아갈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강회에는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덕계 오건은 강회를 앞두고 옥계 노진(1518~1578)에게도 소식을 보내어 참석하게 되는데, 당시 옥계는 진주목사로 재임 중이던 때였다. 당대의 석학들이 참여한 학술대회, 갓을 쓰고 두루마기도포를 입은 유자들로 북적거리던 당시 지곡사 풍경을 상상해보시라. 이렇듯 지곡사는 유학자들의 강학장소로 자주 이용되었으며, 또한 독서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지곡사는 추파홍유(1718-1774)라는 고승에 의해 역사 앞으로 나온다. 추파대사는 한암성안을 스승으로 모셔 법맥을 이어받은 선승으로, 서산대사(청허휴정)의 법형제인 부휴선수에서 벽암각성으로 이어지는 부휴계의 법손이 된다. 처음에는 서산대사 문하의 용담조관에게서 배웠다고 하니, 넓게 보아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지엄 문중의 가르침을 두루 받은 것이다. 추파대사는 「유산음현지곡사기」, 「산음심적암기」’ 등의 기록을 남겨 당시 지곡사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한암, 추파 두 대사가 주석하였던 심적암은 지곡사의 산내암자였다.
지곡사 앞 도로를 따라 약 300m 오르면, 오른쪽 주차장 건너 산자락 입구에 있는 한암, 추파 두 대사의 승탑과 비를 만날 수 있다. 심적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계곡을 만나는 곳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포행하기 좋은 길이다. 심적사에는 대웅보전과 오백나한전, 그리고 규모가 큰 선방이 들어서 있다. 작은 절집 지곡사에서 느껴지던 허허로움은 절집의 부침(浮沈)도 세속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산줄기 위 파란 하늘로 향불처럼 피어오르는 구름타래를 보며, 오래전 이곳에서 펼쳐졌을 유불(儒彿)의 향연을 그려본다.[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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