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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킹과 소각...이더리움 공급구조

by 김창익

개요

이더리움의 공급은 고정된 일정표가 아니라, 프로토콜이 설계한 발행 곡선과 네트워크의 실제 사용량이 맞물려 순간순간 달라지는 가변적 구조다. 지분증명(PoS) 전환 이후 신규 발행은 스테이킹된 ETH의 규모에 의해 정해지는 속성을 띠고, 동시에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기본 수수료가 자동 소각되어 발행분을 상쇄한다.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이 예치되었는가”와 “얼마나 많이 쓰였는가”가 공급을 함께 결정하며, 어느 한쪽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순공급이 플러스로 부풀기도, 마이너스로 줄어들기도 한다.


발행 곡선과 스테이킹의 수학

프로토콜의 핵심은 총 스테이킹량에 비례해 발행이 늘되, 그 증가 속도를 완만하게 만드는 제곱근 곡선이다. 총 스테이킹이 네 배가 되면 발행은 두 배로만 늘어나고, 스테이커가 체감하는 수익률(APR)은 반대로 절반으로 감소한다. 이 역학은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 첫째, 스테이킹이 늘어날수록 네트워크 보안이 강화되지만, 개별 검증자의 추가 보상은 점점 덜 매력적이게 만들어 과도한 과열을 억제한다. 둘째, 스테이킹이 줄어드는 국면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상이 도드라져 다시 유동성을 끌어들이는 완충 장치로 작동한다. 이런 제곱근·역제곱근 관계는 단순하면서도 안정적 균형을 유도하는 수학적 장치로, 급격한 자금 유입과 유출의 진폭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예치 규모가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완화한다.


검증자 보상과 APR의 구조

발행량은 한 해 동안 네트워크에 분배되는 신규 ETH의 총합이며, 그 재원은 검증자 활동 보상으로 쓰인다. 검증자는 블록 제안과 검증, 동기화 위원회 참여 등 프로토콜이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상을 받는데, 이때 검증자 한 명이 받는 기대 보상은 총 스테이킹이 커질수록 체계적으로 낮아진다. 검증자 수는 대체로 총 스테이킹량에 비례해서 늘어나므로, 발행의 총합은 √(총 스테이킹)으로 완만히 증가하고, 반대로 검증자당 APR은 1/√(총 스테이킹)으로 줄어든다. 이 결과 한동안 스테이킹이 크게 증가해도 네트워크 전체가 발행을 통해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사태는 제한되고, 개인은 “더 많이 스테이킹할수록 수익률은 낮아진다”는 직관적인 신호를 받아 과열을 자제하게 된다.


순공급을 결정하는 소각 메커니즘

공급은 발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각이라는 반대축이 동시에 작동한다. 사용자는 트랜잭션을 보낼 때 기본 수수료(Base Fee)를 지불하는데, 이 수수료는 채굴자나 검증자에게 가지 않고 프로토콜이 자동으로 태워 없앤다. 따라서 네트워크가 바쁘고 혼잡할수록 기본 수수료 단가가 올라가고, 그만큼 더 많은 ETH가 소각되어 발행분을 상쇄한다. 여기에 덴쿤 업그레이드 이후 추가된 데이터 가용성 공간(블롭)을 사용하는 L2 거래의 블롭 수수료에도 베이스피 개념이 적용되어 별도의 소각이 발생한다. 온체인 활동과 L2 활동이 모두 활발하면 두 종류의 소각이 동시에 커지면서 순공급을 강하게 끌어내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설계 덕분에 이더리움은 “더 많이 쓰일수록 더 희소해질 수 있는” 독특한 통화 역학을 갖는다.


팁·MEV는 재분배, 발행은 아니다

검증자가 받는 모든 보상이 발행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얹는 우선순위 팁과 MEV(최대추출가치)는 기존에 유통 중인 ETH가 거래 과정에서 이동한 것일 뿐 새로 찍어낸 화폐가 아니다. 따라서 팁과 MEV는 검증자의 총수익에는 영향을 주지만 공급 총량에는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발행이 곧 보상 전부”라는 단순한 등식을 깨뜨리며, 발행·소각·재분배라는 세 가지 흐름을 구분해서 봐야 공급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검증자 입장에서는 팁·MEV가 풍부할수록 실질 수익률이 높아지지만, 통화량의 증감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값이 0으로 상쇄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슬래싱과 예외적 소각

슬래싱은 규칙을 어긴 검증자의 스테이크 일부를 강제로 깎아 소각하는 제도다. 이 이벤트는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일단 발생하면 공급 측면에서 순감소 요인으로 작동한다. 개인의 부주의나 악의적 행위뿐 아니라, 인프라 구성의 오류가 대규모로 겹칠 경우 다수의 검증자가 동시에 슬래싱되는 꼬리위험이 존재한다. 이런 드문 사건은 소각에 의한 공급 감소를 일시에 키우는 반면, 해당 검증자 집단의 손실과 네트워크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운영자는 클라이언트 다양성과 이중서명 방지 등 위험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즉, 슬래싱은 공급 메커니즘의 주변부에 있으나, 시스템적 리스크 관리와 통화량의 미세조정이라는 두 층위에서 의미가 있다.


시나리오로 보는 정량 직관

가상의 수치를 통해 감각을 잡아보자. 총 스테이킹이 1천만 ETH에서 4천만 ETH로 정확히 네 배가 되었다고 가정하면, 연간 발행 총량은 제곱근 관계에 따라 대략 두 배가 된다. 같은 변화가 검증자 개인에게는 수익률 절반 하락으로 체감된다. 이때 네트워크가 한가하고 거래 수요가 낮아 기본 수수료와 블롭 수수료의 소각이 적다면, 순공급은 플러스로 남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반대로 대규모 온체인·L2 활동이 동시다발로 터져 소각이 급증하면, 발행을 넘어서는 소각이 지속되어 순공급이 음수로 내려가 디플레이션이 된다. 이처럼 발행은 스테이킹의 함수, 소각은 활동량의 함수이며, 두 함수의 차가 바로 공급 경로를 결정한다. 같은 스테이킹 수준이라도 트래픽이 달라지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관측치가 말해주는 동태

최근 몇 해 동안 스테이킹된 ETH의 총량은 꾸준히 증가해 수천만 개 규모를 넘어섰고, 활성 검증자 수도 백만 단위에 근접해 왔다. 이 수치는 네트워크 보안의 두께를 상징하는 동시에 발행의 기반을 뜻한다. 스테이킹의 누적 증가는 발행 총합을 조금씩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같은 기간에 온체인 거래와 L2 이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소각이 발행보다 더 빨리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시장의 활황기에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순발행이 마이너스로 유지되며 공급 총량이 서서히 줄어든 사례가 관측되었다. 반대로 시장 침체기로 거래가 잠잠해지면 소각이 급감하면서 순발행이 플러스로 전환되어 통화량이 완만히 불어난다. 이 패턴은 “가격—활동—소각—공급”이 서로 피드백 고리를 이룬다는 점을 시사하며, 단순한 선형 추정만으로는 공급 경로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감도와 정책 변화의 변수

스테이킹과 공급의 상관관계를 현실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두 가지 민감도를 의식해야 한다. 첫째, 스테이킹 민감도다. 총 스테이킹이 일정 비율로 늘 때 발행이 제곱근 비율로 늘어나는 만큼, 스테이킹 변화의 대세 방향을 보되, 그 기울기가 완만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활동 민감도다. 수수료 시장의 베이스피는 혼잡도에 의해 결정되고, L2의 블롭 수수료 역시 데이터 수요에 민감하므로, 활동이 갑자기 폭증하면 소각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커질 수 있다. 더불어 프로토콜 업그레이드는 발행 곡선이나 수수료 시장의 미세구조를 조정할 여지를 항상 남긴다. 합의 계층과 실행 계층의 개선, 데이터 가용성 비용의 추가 인하, 검증자 보상 규칙의 정교화 같은 변화는 모두 공급 경로에 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장기 예측에는 현행 설계를 기준으로 하되, 업그레이드 제안과 커뮤니티 합의의 방향을 함께 추적하는 보수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거버넌스·투자 관점의 함의

거버넌스 차원에서 이 메커니즘은 이해관계자들의 인센티브를 조정한다. 네트워크 보안에 기여하고자 하는 자본은 스테이킹으로 유입되지만, 그 수익률은 스테이킹이 늘어날수록 자연히 희석되므로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게” 분산된 구성을 유도한다. 사용자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수수료 효율과 L2 확장을 통해 활동을 늘리는데, 활동이 많아질수록 소각이 늘어 공급이 조인다. 결국 보안·활동·공급 세 축이 서로의 과잉을 견제하는 균형을 이루는 셈이다. 투자 관점에서는 단기적으로 스테이킹 증가가 발행을 키우는 측면이 있으나, 활황기에 동반되는 활동 증가가 소각을 더 크게 키워 순공급을 줄이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즉, “스테이킹 증가=무조건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고, 항상 활동 변수를 함께 봐야 한다.


결론

이더리움의 공급은 스테이킹과 소각이라는 두 힘이 맞물려 결정된다. 스테이킹이 커질수록 발행은 제곱근 속도로 완만하게 늘고, 검증자 수익률은 그 역제곱근만큼 낮아진다. 동시에 네트워크가 활발히 쓰일수록 기본 수수료와 블롭 수수료가 연소되어 발행을 상쇄하거나 그 이상으로 줄이며, 드물지만 슬래싱이 추가 소각으로 가세한다. 어느 날은 스테이킹의 증가가 두드러져 발행이 앞서고, 또 어느 날은 거래와 L2 데이터가 폭주해 소각이 우위를 점한다. 그래서 이더리움의 공급 경로는 한 줄 그래프가 아니라, 스테이킹이라는 안정화 장치와 소각이라는 수요 반영 장치가 교차하는 동적 궤적이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왜 같은 스테이킹 수준에서도 때로는 디플레이션, 때로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가”를 설명할 수 있고, 스테이킹 정책과 수요 촉진 정책이 공급에 미치는 효과를 분리해 읽어낼 수 있다. 요컨대, 이더리움의 공급은 “스테이킹이 만든 발행의 바닥” 위에 “활동이 만든 소각의 천장”이 내려앉으며 정해지고, 그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거나 벌어지는 만큼 순공급이 호흡한다.


스테이킹은 지분증명(PoS) 블록체인에서 네트워크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 자산을 예치하는 행위로, 이더리움의 경우 검증자가 되려면 ETH를 네트워크에 일정 기간 묶어 두어야 한다. 검증자는 자신이 예치한 지분을 바탕으로 블록을 제안하고 검증할 기회를 얻으며, 정직하게 참여하면 신규 발행된 ETH나 거래 수수료 일부를 보상으로 받지만, 규칙을 어기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하면 예치한 일부 ETH가 강제로 소각되는 슬래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스테이킹을 하려면 반드시 새로 ETH를 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ETH가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예치하면 된다. 다만 ETH가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시장에서 구매한 뒤에 스테이킹에 참여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최소 32 ETH를 직접 예치해 자신의 검증자 노드를 운영하거나, 거래소나 탈중앙화 스테이킹 풀을 통해 소량으로도 참여하는 방식이 있다. 직접 운영은 안정적인 서버 관리와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풀 스테이킹은 상대적으로 진입이 쉽고 보상은 수수료를 제외한 형태로 나눠 받는다. 따라서 스테이킹은 “ETH 구매” 자체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참여를 위해서는 ETH 보유가 필수이므로 자연스럽게 구매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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