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특정 지역의 예외가 아니라 21세기 인구·경제 구조의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세계 합계출산율은 1950년대 약 5명에서 빠르게 하락했고 2021년에는 2.3명 수준으로 내려왔다가 최근 2023년에도 2.3명 안팎에 머물렀다. 한국은 이 하락 추세의 최전선에 서 있다.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다시 최저를 경신했으며, 서울 등 대도시권에서의 주거·양육 비용 부담이 가파르게 반영되었다는 정부 통계 해석이 뒤따랐다. 저출산의 원인은 다층적이지만, 주거비와 교육비가 결혼·출산 의사결정의 임계값을 흔드는 핵심 변수라는 점에는 학계와 국제기구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OECD는 한국의 낮은 출산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주택 비용, 사교육 지출, 성별 임금격차와 경력단절 위험을 함께 지목했다.
이 글은 ‘세계화가 만든 통화 팽창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주거비를 밀어 올리고, 세대 간 자산 격차 확대를 통해 혼인과 출산을 제약한다’는 인과를 정리한다. 논지는 간단하다. 첫째, 1990년대 이후의 세계화·금융개방은 저물가·저금리 환경과 함께 통화량의 구조적 증가를 초래했다. 둘째, 늘어난 유동성은 생산적 실물투자보다 빠른 수익을 제공하는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쏠렸다. 셋째, 자산을 이미 보유한 고연령층은 자산소득을 통해 더 빠르게 부유해진 반면, 무자산의 청년층은 진입 비용 상승으로 자산시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넷째, ‘내 집 마련’이 결혼의 전제에 가까운 한국적 실천 규범과 맞물리면서 혼인 연령이 뒤로 밀렸고, 짧아진 가임기와 경력비용의 상승이 합쳐져 출산이 줄었다. 이 연결고리는 상식처럼 들리지만, 각 단계에는 데이터를 통해 확인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세계화와 통화 팽창의 연결부터 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을 거치며 주요국 중앙은행은 대규모 양적완화로 유동성을 공급했다. 유럽중앙은행과 각국 연구는 중앙은행의 자산매입이 장기금리를 낮추고 위험자산 가격을 밀어 올리는 채널을 확인했다. 한 연구는 중앙은행이 은행 시스템에 준비금을 주입할 경우 안전자산 수요를 충족시키며 신용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금융시장에서 자산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음을 모형과 실증으로 제시한다. 이와 병행해 국제결제은행과 각국 통화당국 자료는 양적완화 국면에서 주식·채권·주택 등 자산가격이 동행 혹은 선행 상승하는 패턴을 보고해 왔다. 통화량이 절대적으로 줄지 않는 한, 저금리·풍부한 유동성은 수익률이 높거나 담보가 확실한 시장으로 흘러가는데,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에서 그것은 부동산이었다.
주택가격과 가구의 감당 능력을 계량적으로 보면 그림은 더 또렷하다. OECD의 가격대비소득(PIR) 지표와 가격대비임대(PRR) 지표는 주택가격이 가계 소득이나 임대료 대비 얼마나 비싸졌는지를 보여 주는데, 다수 선진국에서 2010년대 후반 이후 PIR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주거비 부담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대도시와 비수도권 간의 가격 격차가 OECD에서 가장 큰 그룹에 속한다는 보고가 이어진다. 가격이 소득보다 빠르게 오르면, 무자산 청년층은 ‘다운페이’를 마련하기 위해 더 오랜 기간 저축해야 하고, 그 사이 집값이 또 오르면 목표는 다시 멀어진다. 이른바 사다리가 걷힌다는 표현이 괜한 과장이 아니다.
주거비와 출산의 직접적 연결에 대해서도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미국의 대규모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는 주택가격 상승이 현재의 출산율을 유의하게 낮춘다는 사실을 보였다. 주택은 자녀를 키우는 핵심 비용 요소이므로, 가격 상승은 임신·출산을 현재에서 미래로 미루게 한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이러한 가격효과는 무주택 가구에서 더 크고, 자가 보유 가구나 투자용 주택 보유자에게서는 보유자산의 부(富) 효과가 상쇄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가용 주택이 부족하고 교육·보육 인프라가 특정 학군에 집중되어 있을수록, 무주택 청년층의 출산 지연은 구조화된다. 한국은 이 조건을 대부분 충족한다.
다시 세대 격차로 돌아가 보자.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이미 집을 가진 중장년층은 재산이 늘어나고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기지만, 청년층은 레버리지에 접근할 신용이 부족하고 금리 변동 위험에 취약하다. 세계화는 노동시장에도 비대칭을 만들었다. 대체 가능한 제조업 일자리는 해외로 이동하고, 자동화와 플랫폼화는 중간 기술층의 임금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남은 고임금 일자리는 상위 교육·자격을 요구해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주거비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 결과 혼인은 지연되고 가임 연령은 줄어든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72명은 이러한 ‘주거비-혼인-출산’ 사슬이 최종적으로 통계에 찍힌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출산의 원인을 오로지 주거비와 자산시장만으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성의 고학력화와 고용률 상승, 성평등 수준, 보육 인프라, 장시간 노동, 경력단절 위험, 가치관 변화 등 다수의 요인이 함께 작동한다. 그러나 국제 비교에서도 주거비와 교육비는 반복적으로 상위 설명변수로 오른다. OECD는 한국의 저출산 핵심 원인으로 높은 사교육 지출과 긴 근로시간, 성별 임금격차와 함께 주택비용을 지목했고, 정책 해법으로 공공임대 확대, 보육 서비스의 보편화, 남성의 육아휴직 확대, 노동시간 단축을 권고했다. 저출산을 줄이려면 가
치관 캠페인보다 비용 구조를 낮추는 것이 빠르고 확실하다는 의미다.
이제 통화 팽창과 자산시장 쏠림의 구조를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로벌 통화량이 늘어나는 이유는 단순히 중앙은행의 자산매입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 교역과 자본이동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기축통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금융부문이 ‘증권화’를 통해 신용을 창출하면서 광의의 화폐가 늘어난다. 위기 국면마다 중앙은행은 지급결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유동성을 보강했고, 그 과정에서 은행 준비금과 채권가격이 오르고 할인율이 내려가며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채널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스토리는 2008년과 2020년을 관통하며 확인되었다.
주택은 다른 자산과 달리 삶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더 강한 행동 변화를 유발한다. 가격 급등은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싸진다’는 기대를 형성해 수요를 당겨오고, 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레버리지가 확대되며, 건설·분양 제도는 특정 시점에 대규모 수요를 집중시켜 가격 탄력성을 높인다. 여기에 도시권 일자리 집중과 학군 경쟁이 결합하면, 청년층에게 사실상 ‘주거권=경쟁권’이 된다. 주거권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의 혼인·출산 선택지는 좁아진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 PIR 급등과 서울의 월세지수 상승은 젊은 세대의 가처분 소득을 잠식했고, 기준금리 상승기에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즉시 현금흐름 제약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압력은 한 가구의 첫아이 출산 시기를 1~3년씩 유의하게 미루는 효과를 내며, 둘째·셋째 출산 확률은 더 크게 낮춘다는 연구들이 보고되었다.
세계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저출산은 ‘가치관의 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 세대 동안 세계 평균 출산력이 2.3명 수준까지 내려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보편적 교육 확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아동생존율 개선 같은 긍정적 발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동일한 출산력 하락이라도, 주거비·교육비·노동시간의 구조가 높은 나라일수록 낙폭이 크고 회복 탄력성이 낮다. 한국이 ‘최저’라는 극단값을 기록하는 이유는 높은 도시집중, 주택·교육 비용의 동시 상승, 장시간 노동과 경력단절 위험, 성평등 지표의 상대적 정체가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정책 논의로 이어가면 몇 가지 원칙이 도출된다. 첫째, 주거비의 절대 수준과 변동성을 낮춰야 한다. 공공임대의 물량·품질·입지를 개선하고, 생애주기형 주택 공급과 장기 고정금리 모기지를 확대해 청년층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교육비 특히 사교육비의 구조적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공교육의 질·신뢰·방과후 지원을 강화하고, 대학입시제도와 지역균형 발전을 결합해 학군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셋째, 보육의 사회화와 노동시간 단축, 남성 육아휴직의 실질적 사용을 통해 ‘경력비용의 비대칭’을 줄여야 한다. 넷째, 거시적으로는 통화·금융정책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대출 규제, 분양·세제, 토지공급 정책을 사이클에 맞게 미세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조합은 단기 출산율을 즉시 끌어올리기보다, 혼인과 첫 출산의 지연을 줄이고 둘째·셋째 출산의 문턱을 낮추는 방향에서 점진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팬데믹 시기 경험은 통화·자산·출산의 상호작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동 제한과 원격근무 확산 속에서 각국은 대규모 재정지출과 사상 최저 수준의 정책금리를 동시에 사용했고, 그 결과 주택을 포함한 실물 자산의 수요가 급증했다. OECD의 주택가격 트래커는 많은 국가에서 2020~2022년 사이 가격이 기록적으로 상승했음을 보여 준다. 같은 기간 신용공급과 통화량은 빠르게 늘었지만, 실물 투자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시장에서는 주거비가 가계소득을 압도했다. 세계는 이제 과잉 인구보다 인구 둔화와 고령화의 비용을 더 크게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전환을 다룬 최근 분석도, 출산율 하락의 근본에 경제적 제약과 불확실성이 자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산가격과 출산의 미시 메커니즘을 조금 더 풀어 보자. 가격 상승은 임차가구에게 ‘가격효과’와 ‘소득효과’를 동시에 유발한다. 신규 주택을 사야 하는 가구에게는 필요한 초기자금이 늘어나 현재의 출산을 미루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이미 주택을 보유한 가구는 평가이익이 늘어나 소비 여력이 증가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출산에 대한 재정적 제약이 다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무주택 청년의 비중이 높은 도시에서는 전자의 효과가 지배한다. 교육·보육 인프라가 특정 지역에 쏠려 있을수록 ‘해당 지역으로의 이사’가 출산의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는 실제로 이러한 점을 확인하며, 주택가격이 한 표준편차 상승할 때 임차가구의 출산 가능성이 유의하게 낮아진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또 다른 중요한 매개는 ‘기대’다. 사람들이 향후 주택가격과 금리 경로를 어떻게 예상하는가에 따라 현재의 생애계획이 달라진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면, 젊은 층은 결혼과 출산보다 ‘내 집 마련’ 저축을 우선시한다. 반대로 정책이 예측 가능하게 공급을 확대하고 가격 변동성을 낮추면, 가계는 큰 폭의 가격 상승을 우려하지 않고 출산을 앞당길 수 있다. 정책의 신뢰는 그래서 출산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의 경우 주택 시장의 급등·급락 사이클, 단기적 대출·세제 규제의 잦은 변경은 기대의 불확실성을 키웠고, 가계는 위험을 회피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비용은 특히 첫아이 출산을 계획하는 가구에게 크게 작용한다.
연령·자산에 따른 분절은 더 직접적이다. 자산을 보유한 부모 세대는 가격 상승의 부(富) 효과를 누리며 자녀 세대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지만, 이러한 지원은 소득 분위와 지역에 따라 극단적으로 차별화된다. 일부는 결혼·주택·육아 비용을 가족 내 이전으로 상당 부분 해결하지만, 다수의 청년층에게는 그러한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혼인·출산의 격차가 계급화된다. 고임금·고학력·자산가 집단의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고, 불안정 노동·무자산·고주거비 집단의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과 유럽의 미시적 연구가 보여주듯, 주택가격 상승은 임차가구의 출산을 지연시키며 둘째아 이상 출산 가능성을 낮춘다.
종합하면, 세계화는 무역과 자본의 자유화를 통해 물가를 낮추고 성장의 여지를 넓혔지만, 같은 과정에서 통화와 신용의 팽창이 자산시장에 먼저 반영되면서 세대 간·계층 간 격차를 확대했다. 그 격차는 주거와 교육이라는 생활 기반에서 청년층을 압박했고, 혼인과 출산의 타이밍을 늦추었다. 국제 데이터는 출산율 하락이 보편적임을 보여주지만, 한국처럼 주거·교육비가 높고 노동시간이 긴 나라에서 낙폭이 더 깊다. 결국 해법은 ‘돈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쏠리지 않도록 공급·세제·금융을 설계하고, 보육·교육과 일터의 제도를 통해 경력비용을 낮추며, 정책의 예측 가능성으로 가계의 기대를 안정시키는 것, 그것이 저출산 대응의 실질이다.
마지막으로 숫자로 요약하면, 세계 평균 합계출산율은 2023년 2.3명, 한국은 2023년 0.72명이다. 팬데믹기 이후 다수 국가의 주택가격은 급등했고 OECD의 가격대비소득 지표는 부담 증가를 가리킨다. 주택가격 상승은 임차가구의 출산을 낮추며,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자산가격 채널을 통해 이를 증폭한다는 증거가 있다. 결론은 분명하다. 청년층이 감당 가능한 주거와 예측 가능한 경력 경로를 갖추도록 비용과 제도를 낮출 때 출산은 회복될 수 있다. 비용 신호가 생애계획을 바꾸는 힘이 크다. 정책 신뢰가 높을수록 전환이 빨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