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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금리에 갇힌 연준, 그리고 장기 금리 안정 논쟁

by 김창익



연준은 왜 단기 금리에 집착했는가

연방준비제도의 출범은 1913년 금융 불안을 수습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초기 연준은 지역 연준은행과 민간 은행의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였고, 본래는 은행의 지급준비율 관리와 단기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췄다. 즉, 처음부터 단기 금융시장 안정이 핵심 목표였던 셈이다.

이후 20세기 중반, 통화정책은 점차 거시경제 관리 수단으로 자리잡았고, 단기 금리가 그 중심에 섰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중앙은행이 단기 이자율을 조정함으로써 투자와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이는 연준의 정책적 자기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1960년대에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통화량과 단기 금리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준이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단기 금리를 규칙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는 연준의 정책도구가 단기 금리에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단기 금리 중심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

단기 금리 중심 정책은 분명한 효과를 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 폴 볼커 의장이 단행한 고금리 정책이다. 당시 미국은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는데, 연준은 단기 금리를 20% 가까이 끌어올리며 수요를 억제했고, 결국 물가 상승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연준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 볼커 쇼크는 러스트벨트 지역의 제조업을 붕괴시켰고, 신흥국의 외채 위기를 촉발했다. 경제사학자 배리 아이켄그린은 『Exorbitant Privilege』에서 “미국의 금리 정책이 자국 인플레이션은 잡았지만 세계적 불평등과 위기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단기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양적완화(QE)라는 비전통적 정책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가격은 폭등했지만 실물경제 회복은 더뎠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연준의 저금리 정책은 월가의 자산 가치를 지켜줬지만, 청년층과 서민에게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높은 부채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하이먼 민스키는 『불안정한 경제를 안정화하기』에서 이미 경고한 바 있다. “단기 금리에만 집착하는 통화정책은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를 심화시키고, 자산가격 버블을 만들어 결국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한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 위기 당시 연준의 대규모 완화는 증시와 부동산을 급등시켰고, 불평등을 더욱 벌려놓았다.


단기 금리 치중의 구조적 귀결

단기 금리 중심 정책은 계급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 수익률(r)이 성장률(g)을 초과할 때, 불평등은 심화된다”고 했다. 연준의 저금리 정책은 자본 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했고, 자산을 가진 계층만 이익을 누렸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Debt: The First 5000 Years』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은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권력 관계”라고 지적한다. 단기 금리 인상기는 곧바로 채무자인 서민·중산층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월가는 저금리 유동성을 활용해 레버리지를 키웠고, 위기 때마다 연준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런 구조는 재정정책에도 영향을 줬다.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오르면,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 비용은 급격히 늘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재정적자가 확대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높은 금리로 인한 이자비용 폭증이었다.


장기 금리 안정의 필요성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책무에 장기 금리 안정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장기 금리는 단순한 금융 지표가 아니라 실물경제와 직결된다.

첫째, 기업 투자. 장기 금리가 높으면 기업은 설비투자나 연구개발을 꺼리게 된다. 마이클 허드슨은 『호스트를 죽이는 금융』에서 “높은 장기 금리는 산업자본이 아니라 금융자본만 살찌운다”고 말했다.

둘째,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미국의 30년 고정 모기지 제도는 장기 금리에 직접 의존한다. 장기 금리가 급등하면 집값은 폭락하거나 거래가 얼어붙고,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 꿈은 멀어진다.

셋째, 재정 지속가능성. 장기 국채 금리 불안정은 정부의 이자 부담을 폭증시킨다. 경제학자 로런스 볼은 “장기 금리의 변동성은 결국 정부의 재정 여력을 제약해 장기 성장에도 해롭다”고 경고했다.

넷째, 금융 안정성.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장기 금리 급등으로 은행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이 발생하면서 촉발됐다. 이는 장기 금리 변동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 사례와 국제 비교

연준이 장기 금리를 직접 관리한 적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전쟁 재정을 소화하기 위해 장단기 국채 금리를 일정 수준에 묶어 두었다. 당시 연준은 사실상 “수익률 곡선 통제”를 실행했고, 이는 재정 안정과 전후 경기 회복에 기여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10년물 국채 금리를 목표 범위 내에서 관리하는 ‘수익률 곡선 통제(YCC)’를 시행했다. 물론 엔화 가치 하락과 시장 왜곡이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금융 안정 차원에서는 일정한 효과를 거뒀다.

찰스 굿하트는 “중앙은행 독립성의 신화”라는 글에서 “장기 금리야말로 경제주체의 기대와 금융안정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다. 단기 금리에만 매달리는 중앙은행은 현실의 절반만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콧 베센트의 제안

이런 맥락에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2025년 WSJ 기고에서 연준의 책무에 장기 금리 안정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이 단기 금리 관리와 비전통적 자산매입을 통해 월가의 이익을 지키는 한편, 오히려 실물경제와 재정 안정에는 해를 끼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연준이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되, 동시에 장기 금리 안정이라는 새로운 축을 더해야 금융 안정과 서민·중산층 보호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베센트는 특히 “연준의 정책은 실험실을 탈출한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다”고 표현했다. 위기 때 도입된 정책이 상시적 관행으로 굳어져, 시장과 정부 재정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준이 단기 금리에만 집착하는 것은 결국 특정 집단, 즉 금융 엘리트에만 유리하게 작동한다고 비판했다.


찬반 논쟁과 앞으로의 길

물론 장기 금리 안정 책무에는 반론도 많다.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고, 중앙은행이 사실상 재정 파이낸싱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본은행의 사례는 이런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이 심화된 오늘, “중앙은행이 단기 금리에만 매달리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경제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제도적 권력의 재구성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연준의 책무를 재설계하는 논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결론: 단기에서 장기로, 월가에서 사회로

연준의 단기 금리 중심 정책은 20세기 경제사의 주된 기둥이었지만, 21세기 불평등과 금융 불안정의 시대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베센트 장관의 제안은 단순히 통화정책의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정체성과


권한을 다시 묻는 문제다.

장기 금리 안정이 연준의 책무로 포함된다면, 이는 금융자본과 월가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실물경제와 서민·중산층을 고려하는 새로운 통화정책의 길을 열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금리를 관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 민주주의의 한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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