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박사 졸업 후 좀 더 연구실에 남아있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왕 박사후 과정(post-doc)을 할 거면 해외 경력으로 쌓는 게 더 좋다고들 하니 영어 공부를 해두는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차피 한 집에 살아도 못 보니 잠시 떨어져 살 각오도 되어있었고.
그렇게 남편을 설득해 주말아침마다학원으로 향하게 됐다. 혼자 다니기 싫을테니나도등록했고무언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없던 힘도 솟아나는듯 했다.
남편은워낙 영어를 싫어하기도 하고잠이 부족했던 때라 고생스럽긴 했을 거다.아니나다를까몇 주 지나고부터 노골적으로 가기 싫어하기 시작했고,더 지나자 안 간다며 드러누워버렸다. 실망스러웠지만혼자서라도열심히 다녔다. 약속을 깨버리는 모습에 미약하게나마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라면서.
어느 토요일,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러 함께 가게됐는데며칠 전부터 있던목 염증이 커져내 상태가 별로였다.
수업내내 오한에 시달렸고목구멍이 쓰리다못해 귀까지 먹먹했다. 마침내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 서있기조차 어려워서 말했다.
"오빠, 나 내려서문 연 내과나 이비인후과 아무데나 가봐야겠어."
병원이라도 검색해주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으나 대화가 끊어졌다. 서운해할 힘을 아껴 가까운병원을향해 용 쓰며 걷는데 남편은 아까부터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가기 싫던 학원에 끝내 다녀온 게 못마땅한듯 했고 진료에 동행하고 싶어하는 눈치도 아니었지만 더 신경쓸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편도선염이 심하니링겔을 맞으라셨다. 대기실로 돌아오니 남편이 보였다. 눈은 여전히 휴대폰 속 야구경기에 빠진 채.
"나 링겔 맞을건데 30분 정도 걸린대. 혹시 집에 가고싶으면 갈래..?"
누가 들어도 진짜 가란 뜻은 아닐텐데,
"아 그래? 알겠어."
순간 남편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더니병원 입구를 쌩 빠져나가버렸다.뒷모습을 허탈하게바라보다병실로 들어가 누웠다. 한숨 잘까 싶다가도침대 옆 텅 빈소파를 보고있자니옆 병실의보호자모습과겹치며화가 치밀었다.결국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어, 왜?"
"진짜 너무한거 아니야? 나 아프다고."
"어 알지."
"근데 물어보지도 않냐? 어디가 아픈지. 옆에 있어줄지, 아니 그냥 옆에 있어 줘야하는 거 아니야? 나도 힘든데 학원 갔어. 우리 약속이기도 하니까."
"아프면 수업 그냥 빠지면 됐잖아. 그리고 방금 너가 집으로 가랬고."
이때쯤 되자 눈물이 났다. 서운함과 분노와 배신감이 합쳐진 부정적 감정 종합셋트 눈물이었다. 아무리 세게 두드려도 미동조차 않는거대한 벽같아 숨이 막힌다. 늘 이런 식이다.
"아 그냥 다시 오라고!!!"
더럭 터진 내 분노에 다시 병실로 복귀한 남편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이내 시선은 야구 중계가 흘러 나오는 전화기로 다시 쳐박혔다.
그러고보니 결혼 직전 목디스크 시술 후 입원해있을 때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그때도 남편은 당연하단 듯 대답했다. "너가 올 필요 없다며. 그리고 수술아니고 '시'술이잖아." 수술이라 칭한 내 표현을 칼 같이 바로잡는 그 일지라도,굳이 안 와도 된다-는 말에 3일 동안 안 올 줄은 정말몰랐다.
연애 초반, 귤 껍질을 말려 차를 끓여주던, 눈 딱 감고 마시고나니 정말 감기가 나았던 '기적의 귤차'를 달여주던 그가, 존재하긴 했었나..?
얼마 안 가 남편도 아프기 시작했다. 나한테 옮았나 싶어 최선을 다해 간호에 나섰다. 병원에 데려가고, 죽을 끓이고, 이마 위 물 수건을 갈아주었다. 걱정되고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느끼길 바랐다. 평소라면 빌리지 않았을 손이지만 빌려도 보고, 기꺼이 빌려줘가며 옆에 있어주는 것이 서로의 역할이라는 것을.
"아플 때 이렇게 죽 끓여주고 약 챙겨주고 하니까 좋지 않아?"
기대감을 갖고 던진 회심의 질문이었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근데 옆에 있어준다고 안 아픈 건아니잖아."
정말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은 약인데 괜한 수고하지 말라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너무무미건조한 논리였다. mbti가 지금처럼 일반화 됐었다면 'T발 C야?'라는 물음을 달고 살았을 거다. 여하튼 이러니 내가 아플 때도 '평범한 방향'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악의 없는 말똥한 눈빛으로 정말 챙겨줄 필요가 없다 말하는 남편을 보자 왠일인지 그간의 서운함이나 화가 되려 식어가기 시작했다. 대신 안쓰러웠다.정말 모르는구나.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러고보니 혼자 살았지.보살핌 받아본 적도 잘 없겠구나.
"그래도 같이 사는 가족이면.. 부부로 같이 살기로 했으면 아프거나 약해졌을 때 서로 돌봐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 난 오빠가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
얼마나 진정으로 받아들일 지는 모르겠으나 내 말에 남편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렵 깨달았다. 생활패턴이 달라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바빠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토라지거나 삐진 시늉에 무조건 사과하고, 눈치 보던 20대 초반의 남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존심 내려놓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지 않으면, 개선은 커녕 알아챌 가능성조차 희박한 타인만이 내 옆에 있다. 그리고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이혼 안 할거면 잘 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