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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Oct 18. 2023

시부모님 앞에서 술주정 부린 자

자수합니다

추석에 당직이 걸 미혼 동료에게 고기를 사줘가며 순번을 바꾸었다. 차량 정체를 극도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SRT 어플도 눈 빠져라 '새로고침' 했다. 밀리면 4~5시간은 걸리기에 어떻게든 티켓팅에 성공해야 했다. 그렇게 진 빼며 도착한 시댁..!


고향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겠다는 남편에 이미 한 번 화를 낸 상황이었고, 그러면 같이 나가자는 말에 또 한 번 화를 낸 참이었다.


"얼마나 자주 뵙는다고 또 밖에 나가?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우리 엄마 아빤 진짜 괜찮다니까?"


간신히 고집을 꺾었나 했더니, 대화 보단 낮잠을 선택한 그였다. 남편은 시댁만 가면 팬티 바람으로 거실바닥과 한 몸이 되어버리곤 해서 나 혼자 시부모님과 대화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결혼 이후에는 친정에 가도 내 집 같지는 않던데 시댁에서, 더군다나 낮에 잠이 올리 없었다.


심심할까 싶으셨는지 본래 말수가 별로 없으신 아버님은 아끼시던 이 술, 저 술을 꺼내다주시기 시작하셨다. 하나를 클리어하면 또 다른 주종이 오마카세처럼 등장했다.


며느리가 좋아한대서 사두셨다는 흑맥, 이웃이 담근 복분자, 아껴놓으셨던 미국 와인,.. 마지막으로 출장 다녀온 옆 직원이 사다준 보드카까지.  홀짝이던 술에 제대로 앉은뱅이가 되었고 정수리에 떠있던 해는 사라지고 창밖이 붉은빛이었다.  마침내 아버님이 잠시 주무시러 들어가셨을쯤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어머님과 이야기할 차례였다. 몇 번이나 한숨 자고 오라 하셨는데, 시금치를 다듬으시는 바로 옆에 찰싹 붙어 앉아서는 살아온 서사와 엄마 시댁살이에 이르기까지 두서없이도 주절댔다. 술기운에 불 타 뭐라도 며느리 역할을 해보잔 의도였지만, 실상은 만취한채 과도 들고 설치는데 '딸이 아니어서 뭐라고도 못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창 밖이 어두워지고 아버님이 오침에서 깨어나셨다. 산책 나가자 말씀에 남편도 마지못해 일어났고 헤롱대는 내 꼴을 흘긋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마셨대."


마디 던질 뿐인 무심한 그가 미친 듯이 얄미웠다. 결혼 준비부터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경험해온 남편의 고질적인 무심함또한 머릿속에 복받쳤다.


이번 추석만 해도 언제 어떻게 내려올, 선물은 뭘 챙겨올, 기껏 도착해서도 부인이 꽐라가 되든 말든 모든 걸 나 몰라라. 결혼은 왜 한 걸까.


어머님 운동화를 빌려 신고 간신히 집을 나선 때부터 안타깝게도 이런 부정적 생각들에 휩싸여 몸과 마음 모두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본격 추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익명의 공간이니 솔직해져 보자면, 일단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 서서 팔짱을 꽉 꼈다. 손을 잡았던 것도 같다. 나는 우리 엄마와도 손을 잘 잡지 않는데 두 분을 그렇게 양 옆에 끼고 비틀대며 혼자 저 멀리 앞서 걷는 남편을 부르기 시작했다.


"오빠 같이 가자"로 시작된 멘트는 "같이 좀 가자 ㅇㅇㅇ~!"으로, 그래도 남편이 별 동요가 없자 갑자기 열이 치밀었던 것 같다.. 마침내 입에선 나오지 말아야 할 말이 뛰쳐나왔다.


" ㅇㅇ !! 이 나쁜 놈!!"

"같이 좀 가자고 나쁜놈아!!!!!"

"너 진짜 그러는 거 아니야" ..



좌우에서 얼마나 흠칫하셨을지..  팔짱을 낀 건지 매달린 건지 구분되지 않는 인사불성의 며느리가, 아들을 향해 고래고래 부르짖는 상황이라니..  굳이 겪으실 필요 없는 일이었다.


뭘 이렇게 많이 먹였냐는 남편에게 아버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던 것 같다.


"너가 ㅇㅇ이 술 잘 먹는다고 했잖아."


남편은 내가 술을 잘 먹는 편이라 말씀드려놓았고, 아버님은 직장에서 내 또래 직원들이 '잘 먹는다'라고 표현할 땐 정말 말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소중한 술들을 일부러 꺼내주신 거라셨다. 내 안의 이야기는 꺼내고 권해주시는 술은 다 집어넣었는데. 결국 망쳐버렸다.


밤새 문 턱이 닳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이 날밤 숙취는 단언컨대 태어나서 겪어본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다음 날 아침, 용케 알람에 눈을 떠 시체처럼 어기적대며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기까지 불과 몇 초동안 지난밤의 일들이 떠올라 정말이지 세상에서 딱 사라지고 싶었다.


"잘 잤어? 속은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


모든 인내력을 쥐어짜 부대끼는 속을 누른 채 웃어 보였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이러다 머리가 깨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차례상을 차리시는 어머님 옆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종종거리는 척했다. 그 와중에 시댁의 차례는 여자들이 절을 하지 않아 진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친정에서처럼 한 명씩, 단체로 몇 번이나 숙여 절을 해야 하는 차례였다면, 나는 조상신 앞에서 토한 최초의 며느리가 됐을 거다.


산적구이를 너무 많이 먹어 체한 것 같다고 둘러댔지만, 벌초 다녀오신 남편과 아버님이 건네주신 봉지 안에는 술병약이 들어있었다.




이 일에 대해 우리 엄마는 세상이 망한 듯 크게 놀라 나를 질책했다. 당시 남편과의 문제가 많이 곪아있긴 했지만, 시어른들 앞에서 그런 방식으로 표출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


남편을 포함한 시댁 가족들은 일절 탓하지 않으셨다.  다만 이후로는 "마실 만큼만 마셔도 된다"라고 에둘러 표현하셔서  뜨끔했다. 위안이 되는 구석도 있다. 남편은 이 일 이후로 혼자만 자러 들어간다거나, 부모님과 나만 남겨두고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보겠다는 둥의 계획은 세우지 않게 되었다. 한 몸 바쳐 얻은 수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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