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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Apr 23. 2024

유부남 동료의 고백

연애 5년을 거쳐 결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남편과는 평화 그 자체였다. 집, 식장, 스드메, 신행, 주례 선생님 선물까지 싹 마음대로 정하는 동안 그는 고맙게도 태클  걸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 모래 위 평화는 조금씩 주저앉았. 아무리 대학원생이라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보며 안부조차 묻지 않는 2년이라니. 남편의 프리패스란 더 이상 존중, 양보가 아닌 무관심, 무책임, 무정함 등 무투성이로 느껴진지 오래였다.




독수공방 청승보단 회사로 관심을 더 쏟는 게 나을 것 같아 팀 이동 신청을 했고 송별회가 열렸다. 자리가 파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별안간 누가 묶은 머리를 훽 잡아당겼다.


"야 어디가. 우리끼리 한 잔 해야지."


'우리'라 함은 K선배 본인을 포함해 연령대가 비슷한 대여섯 명의 선배들.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워 쏘겠다 했고 예전만큼 자주 보지 못할  같아 신나게 썰도 풀었다.


왁자지껄 2차가 끝난 후 K선배와 같은 버스정류장으로 걷게 됐다. 


"배 너무 부르지 않아? 한 바퀴 걸을래?"


" 네? 그러죠 뭐."


배경화면  드레스차림 부인이 환히 웃고 있는 유부남이며 평판 좋은 선배인  경계심이라곤 개미 만큼도 갖지 않았다.


"남편이 무심하다고?"


술자리에서 오가던 이야기들을 이어가려는 모양이었다.


" 심하다니까요.. 언제까지 바쁠지, 어떤 계획인지 이야기라도 해주면 좋은데."


"나도 얘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해서.. 어디서부터 이끌어야 할지 모르겠어."


K선배는 결혼과 동시에 무기력해진 부인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처음 듣는 얘기여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동기부여 하면 어때요? 모델하우스 구경 간다든지, 여행을 떠나본다든지.."


버스정류장이 다시 다와가는데 선배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더니 내 쪽을 보더니 무슨 말을 꺼내려했다. 따라 고개를 돌리는데 그 짧은 찰나, 팔 소매가 끌어당겨지는 동시에 무언가 휙 하고 내 볼을 스쳤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돌진하 얼굴.


정리하자면, 그는 무려 입술을 대려 했고 순간적으로 피하다가 왼쪽 볼에 스쳤다. 



"뭐 하는.. 거예요..?"


술이 깨다 못해 머리카락이 쭈삣 곤두섰고,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곧장 큰길을 향해 뛰다시피 했다.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지난 몇 분을 곱씹어보았다. 걷자는 게 그런 의미였나. 내가 뭘 흘리기라도 한 건? 눈앞이 뿌예지더니 뒤적이던 휴대폰 액정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도착한 집은 인기척 없이 어두웠고 남편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사내메신저가 울렸다. 잠깐 보자며 부른 K선배는 퀭해진 날 향해 말했다.


"너를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야." 



부모님께 지원받은 전세금을 이자까지 쳐서 고 있는데,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 시작했는데, 마음을 바꾼 부인과 큰 충돌이 있었다. 그나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더니 친정에서 목돈을 받아오겠다고 해 실망이 큰 상태.  아내와 비교가 됐던 건지 혼자 아등바등하는 듯한 내가 신경 쓰였고(?) 우리 둘이 결혼했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 적도 있다.



지난밤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불구, 오지랖이 태평양인 나는 선배 상황에 또 몰입하기 시작했다. 배우자와 같이 일궈가고 다는 결혼관에 공감됐기 때문인데, 물론 그 투철한 책임감의 정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라면 못 이기는 척 얼른 돈 받아오라고 했을 거다;). 다 떠나서,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인계인수중 실수까지도 확인서 쓰게 하던 깐깐한 스타일이라 년을 한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그닥 친해지지 못했었고, 굳이 따지자면 비호감 범주로 분류되던 사람인데 갑자기 이 모든걸 와르르 쏟아낸다고? 내 앞에서? 그 정도로 힘든가?


 사정을 듣고 난 다음부터 이해심이 넘쳐흐르기라도 했 남이사 혼자든 말든 그딴  저지른 건 잘못이란 말이 나오질 않았. 새 팀에 들어자마자 '추행 당했으니 인사위원회 열어달라' 입이 떨어질 리 없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일을 키울 만큼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우세했. 오죽 갑갑했으면 그겠나 싶어 넘어가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만에 머릿속 계산을 부랴부랴 끝내버렸다.



 선배는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단 듯 행동할 뿐 아니라 업무들에 '너무 잘' 협조하는 등 소소하게 배상(?) 비스무리한 걸 해왔다. 어색했지만 이왕 넘어가기로 한 거 쿨해보기로 했다. 



어느 하루 퇴근길에 마주친 선배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뭐예요?"


"아, 와이프 등산화. 제주도 가서 같이 한라산 도전하기로 했거든."


와이프가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의지를 북돋아 줄 요량으로 깜짝 선물을 샀다고 했다. 마음속에서 왠지 오지랖이 불쑥 솟구쳤다.


'뭔 신발까지 사줘 가며 등산을 한대.'


나로선 받아보지 못한 케어를 봐버리니, 더군다나 버거울 정도로 수동적이라던 부인에게 저토록 헌신하는 남편이라니 그녀의 비결은 대체 뭘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날 밤 남편을 기다렸다가 어디라도 가지 않겠냐 물었다. 예상대로 스케줄이 어찌 될지 모른다는 철벽. 심술은 져만 갔고 그간 쌓인 서운함과 합쳐져 분노가 되었다.


"그럼 언제 될 거 같은지 알아보기라도 하든지. 한 번이라도 어디 가자 한 적이 있어? 밥이라도 먹자 한 적은? 도대체 시간 나도 아무것도 안 잖아."


남편은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회피할 태세를 취했다. 


"벽이랑 사는 것도 아니고.. 혼자 뭘 더해야 되는데!!"


말 한 번 대충했다 불어닥친 분위기에 남편은 어쩔 줄 몰라했다. 순간 깨달았다. '나 급발진중이구나.'





 LA에 살고 있는 대학선배가 떠올라 무작정 가겠노라 통보했다. 정확히 누구를, 무엇을 향해 얼만큼씩 쌓였는지 구분 되지 않는 분노를 진화하고 싶었다. 눈치 빠른 언니는 흔쾌히 시간을 내주기로 했고 남편은 이마저도 별 말 하지 않았다.

당시 정신상태(..요래 짜놓고 먹는 곳이긴 합니다.^^;)


돌아오기 전 날, LA 답지 않게 장대비가 쏟아져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해지던 밤, 언니가 말했다.


"살아봐야 아는 것도 있으니 힘들 수 있어. 근데 그 선배는 너가 약해진 상태인 걸 알아서 그러는 거 같거든. 나쁜놈이야."



K선배는 어느 날 갑자기  떠맡은 가장으로서의 버거움을 토로하며 이상행동을 했다. 거시적 집안 경제부터 미시적으로는 아내의 체중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여하니 힘들만도 했는데, '흑기사 콤플렉스'라도 앓는 게 아닐까 의심되던 참이었. 얼마나 헌신적이고 가정적 남편인지 어필하듯 늘어놓곤, 의존하는 부인 때문에 또 힘들다는 레퍼토리(어쩌라고!)를 털어놓곤 했으니까. 그 말을 들어준답시고 오지랖 피우다 '신발 사줘가며 등산 모셔 남편도 있는데, 장 보러 갈 때조차 사정해야 하는 내 그지같은 상황' 비교하며 남편에게 불똥 튀기기도 했고.


결국 팩트는, 선배는 제 손으로 판 구덩이에 갇혀있을  나에게 저지른 뻘짓에 면죄부 받을 만큼 불행한지도 의문이었다. 본인 상황을 방패삼아 오묘한 선을 넘나들며 '취약해진 나'를 챙겨주고 신경을 쓰는 듯한 처사는 분명 옳지 않았다. 내가 받아야할 건 애매한 케어나 목적 불분명한 호의가 아닌 분명한 사과였다.



얼어죽을 쿨은 집어치우고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 가정을 시작했다. 눈에 띄어도, 마주치더라도 무시했고 옆의 다른 사람과 인사할 일이 있으면 그 무리 전체를 흐지부지 지나쳐버렸다. 몇몇이 '쟤 인사 안 한다'라고 오해할 것도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 자리를 찾을 수록 심란함이 가시고 약간의 통쾌함까지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배가 석사과정을 위해 휴직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휴직 전 날 우리팀에 인사를 하러 들렀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훗날 복직 후 또 한 번 우리 사무실에 들렀지만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는 걸 보니 기억이 정화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가 바로 전근을 가며 다시 마주칠 일이 없게 됐다.




 일 이후 남편과의 이야기를 늘어놓순간들이 새삼 아찔해졌다. 푼수처럼 "나는 혼자예요" 방송 해댄 나날들이. 내 이야기를 땔깜삼아 남들을 따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역할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너를 무시한  아니라던 선배는 본인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새 나를 만만하게 보게 된 게 틀림없다.


 K선배의 이중적 모습을 통해 깨달은 것도 있었다.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다면 솔직하게 부딪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 회피한 채 '외부'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시도는 비겁할뿐더러 답도 아니다. 겉으로만 갈등 없고 스스로 좋은 남편, 부인이라 위안하 뭐하나. 정작 신의를 저버린 상태일 수 있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뒤지게 싸우는 게 낫다.




더 고꾸라질 곳 없어 보이는 남편과의 관계에 그래서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마침내 입 밖으로 꺼냈다. 혼자만의 신혼을 보내며 가정을 꾸린 한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그날 혼자란 걸 깨달았어. 그런 짓 했는데도 나 힘든 걸 알아보는 것 같으니 뭐라 하지도 못 하겠더라. 무슨 일이냐 묻지도 않는 남편보다 굳이 더 나쁜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실수한 거라 이해하고민까지 들어주고 앉아있었어 호구처럼." 


남편이 흥분하지 않을까 한 켠의 두려움을 억누르고 털어놓았던 그날. 이대로라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이 충격적이긴 했던 걸까, 아무 대답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나아질 기미도, 더 나빠질 기미 또한 없었고, 싸우고 돌아온 병사들처럼 각자 조용히 숨을 고르기만 했다. 그렇게 몇 달. 약속이나 한 듯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 엉망이 된 우리 집, 우리 울타리 안으로 다시 조금씩 발을 들여놔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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