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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May 19. 2024

우산은 따로 쓰지만

같이 쓰는 공용어가 있다

남편 대학선배 부부를 만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신발을 신더니 우산을 두 개 꺼내드는 남편.


결혼하고 얼마 뒤부터 매번 겪는 일이지만 낯설다. 연애 초기 (어언 10년 전이지만) 에는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처럼 남방 하나를 뒤집어쓰곤 소나기에 맞서 뛰던 우리인데 어쩌다 이 지경일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비가 올 때면 우산은 각자 쓰자는 주의였고 한때 느끼던 서운함은 치사하고 더러워서 같이 안 쓴다는 오기로 바뀌었다.


파라솔을 들 게 아니라면 웬만한 우산으로 어차피 비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비를 핑계 삼아 오붓하게 붙어 서로에게 우산을 기울여주면 좋을 텐데. 남편은 '두 명 모두 어깨가 한쪽씩 젖어야 하는데 굳이 왜 같이 써야 하냐'라고 반문한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나와 상반되는 극 개인주의 혹은 극 실용주의자인지 다시금 상기한다. 정확히는 '낭만결여자', '무드상실자' 등으로 불러야 맞겠는데 이도 속 시원치는 않다.





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가니 예쁜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며 나란히 서있다. 남편 선배인 J오빠는 야무지게 동여맨 검은색 장우산으로 골프 스윙 연습 중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 앞에 J오빠는 익숙한 듯 부인 어깨를 감싸더니 남은 한 손으로 스윙 연습 하던 듬직한 우산을  들었다.


남편은 이걸 보고도 느끼는 게 아무 것도 없는지, 낼름 제 우산을 펼쳐 들더니 휘적휘적 앞서 걷는다. 얄미운 뒷모습을 열심히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식당이 보인다. 먼저 도착해 우산을 접다 우리를 발견한 J오빠는 곧장 빵터졌다.



"너네 우산 따로 쓰고 왔어?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무안해져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니까요. 왜 저러나 좀 물어보세요."


남편은 구구절절 왜 따로 쓰는지에 대해 설명했으나 나머지 3인은 어깨에 떨어지는 비의 양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우리 사이엔 왜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2차 장소로 이동하려고 식당을 나서는 찰나. 갑자기 남편이 슥 다가왔다. 우산을 펼치더니 내 어깨를 감싼다. 


"뭐야, 왜."


내 우산을 펴려 하니 남편은 한사코 본인 우산을 들이민다.


" 같이 ~"


아까보가 비가 더 세게 쏟아지는데.. 하필 지금 안 하던 짓을 한다.  작은 우산을 이제 와서 왜 같이 쓰자는 건지.


"아 진짜 갑자기 왜 그래?"


놀게 된 내 우산이 신발 위로 빗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집에 오는 길.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서 뭔가 느낀 건지 궁금해졌다.


"근데 아까 왜 그랬어?? 형네 부부 예뻐보였지?"


 아니나 다를까 진지한 얘기는  견디는 그는 바로 도망칠 태세를 취한다.



"아 무슨 우산에 의미를 부여하냐~~"



촐랑대며 앞서뛰기 시작하는데 어느새 전화기를 꺼내 찍고있는 나. 철딱서니와 어처구니가 골고루 없는 행동으로 오늘도 나를 웃게 하고 있다. 우산을 각자 쓰고 평소 대부분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웃음만큼은 꾸준히, 열심히 우리 사이를 채운다. 



반품도 못 할 거(?) 예쁘게 바라보자. 우리 사이의 공용어, 웃음을 질리도록 많이많이 써야 한다.

12×35 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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