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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키워키 May 19. 2024

나보고 정치병자라니

감각 민감자와 감정 민감자의 결혼

영화 "올빼미"

영화 올빼미에서 경수(류준열 분)는 잘 보지 못하는 대신 청각, 후각 같은 이외 감각들이 예민하게 발달했다. 보는 내내 오감이 민감한 남편이 떠올랐다.



모기나 파리 한 마리에도 홈키파 난사, 물리는 게 덜 해로울 . 하루 최소 두 번 샤워 하고 물기 남지 않을 때까지 나체상태 유지. 온습도계를 매일 체크하고 그의 코를 통과하지 못한 빨랫감들은 건조기에서 나오자마자 아예 삶통으로 들어간다. 요만한 생채기도 틈 벌려 소독부터 시작하고 유통기한 넘은 빨간약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등등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불쑥 얄미울 때가 있는데, '감정' 에는 무뎌도 너무 무디기 때문. 


여기저기 이입하느라 감정이 요동치는 나와는 정반대. 특히 굵직한 사건 사고인 경우 그 여파가 오래가는 편이다.


세월호 참사로 수백명의 아이들이 갔을 땐 안산 근처를 지나기만해도 마음이 안 좋았다. 분향소에 못 갔던 게 마음에 걸려 차 뒷유리에 노랑리본을 몇 년간 붙이고 다녔다. 


종종 이태원에서 놀던 1인으로서 200명이 서로에게 엉켜 빠져나오지 못했던 날. 남일 같지 않아 밤새 뒤척였다. 그러길래 누가 가랬냐는 댓글들을 볼 때마다 그 비아냥이 나를 향하는 듯해 울분이 터졌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정치병' 증세가 있다고 했다. 노랑리본은 강성 티를 내는 거라며 달가워하지 않았고, 국가가 축제 하나까지 책임질 의무는 없지 않느냐 했다.


한 명의 유족이라도 우연히 내 차와 스치며 잊지 않은 사람이 있음에 위안 얻길 바랐다. 그 바람을 비뚤게 해석하는 게 되려 정치적이라 느껴진다. 이태원에 놀러갔든 봉사활동 하러 갔든, 모든 게 우연이고 안타까운 사고라 어쩔 수 없는 거라면 경찰관, 소방대원 등 현장 책임으로만 모는 웃전들의 프레이밍은 더욱이 비겁한 것 아닌가..


남편이 쉽사리 동조 해주지 않는 것은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공감엔 목이 말랐다. 대다수 사람들은 겪지 않는 일들을 겪어버린 사람들의 입장에 서보는 것. 그들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 병이라니.. 남편의 입장에선 내가 선민의식에 취해 가르치려하고 무조건적 동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을 수 있다. 그치만 병이라니!  길고양이나 개 한마리에 눈을 못 떼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따뜻한 남편이, 오감이 민감한 남편이 주변 인간사엔 저리 무딘 이유가 궁금했다.



어렴풋한 답은  아빠와의 대화에서 등장했다.


대체로 사람은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만큼 이해하고 공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래 경험한만큼 이해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선 남편이 더 민감한 사람일 수 있다고도.


"평범한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한 거지. 너무 민감한 나머지 본인 감정이나 주변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으로 낮춘 게 아닐까. 에너지가 한정돼있으니 어느 부분은 무뎌지도록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겠지.. 너는 반대고."


그리고 덧붙이신 한 마디.


"그러니 늬들은 잘 만났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욕실에서 발을 닦고 나와 온 집안에 물발자국을 남기고, 덜 마른 옷도 그냥 입고, 설거지도 빠른 (대신 대충) 하며, 손이 베어도 피만 멎으면 그만이다. 남편의 입장에선 도통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개선을 요구하거나 지적 적이 단 한 번도 없긴했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욕실화는 가지런히 벽에 받쳐 세워두며, 설거지해둔 그릇들을 물 잘 빠지게 재배열하고, 세탁기 세제통을 분리해 홀로 닦고있는 모습을 보일뿐이다. 상처를 소독해주고 내가 벗어둔 잠옷을 삶으면서도 생색 내지 않는  자세 덕분인지 남편의 생활습관들을 어느정도는 닮아가던 중이었다. 



어느순간부터 나도 조용히 대나무숲을 찾았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브런치에 못다 표현한 마음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을 괴롭히지 않고 내버려두자 놀랍게도 점차 귀를 기울이는 성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왜 울적해보이냐' 묻기도하고, 투표날 안 가겠다고 드러누워 씨름하는 일도 없으며, 가끔이지만 뉴스도 자발적으로 튼다. 댓글 다는 나를 댓글부대원이냐 놀리면서도  무슨  터졌 물어온다. 이거면 됐다. 우리가 서로 닮아가는 거 같다고 했더니 들려오는 대답.



"봐. 처럼 사니까 사람답고 쾌적하지?"


그 뜻으로 한 말이 아니지만 틀린 건 아니다.



뿌듯해하는 남편이 귀여운데 내 눈에만 그렇겠지.. ^^;



예방접종 후 팔이 아파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남편. 나도 같이 맞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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