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뒤부터 매번 겪는 일이지만 낯설다. 연애 초기 (어언 10년 전이지만) 에는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처럼남방 하나를 뒤집어쓰곤 소나기에 맞서 뛰던 우리인데 어쩌다 이 지경일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비가 올 때면 우산은 각자 쓰자는 주의였고 한때느끼던 서운함은 치사하고 더러워서 같이 안 쓴다는 오기로 바뀌었다.
파라솔을 들 게 아니라면 웬만한 우산으로어차피비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비를핑계삼아 오붓하게 붙어 서로에게 우산을 기울여주면 좋을 텐데. 남편은 '두 명 모두 어깨가 한쪽씩 젖어야 하는데 굳이 왜 같이 써야 하냐'라고 반문한다. 이 사람이 얼마나 나와 상반되는 극 개인주의 혹은 극 실용주의자인지 다시금 상기한다. 정확히는 '낭만결여자', '무드상실자' 등으로 불러야 맞겠는데이도 속 시원치는 않다.
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빠져나가니 예쁜 부부가 우리를 기다리며 나란히 서있다. 남편 선배인 J오빠는야무지게 동여맨 검은색 장우산으로 골프 스윙연습 중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 앞에선 J오빠는 익숙한 듯 부인 어깨를 감싸더니 남은 한 손으로스윙 연습 하던 듬직한우산을 펴 들었다.
남편은 이걸 보고도 느끼는 게 아무 것도 없는지, 낼름 제우산을 펼쳐 들더니 휘적휘적 앞서 걷는다. 얄미운 뒷모습을열심히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식당이 보인다. 먼저 도착해 우산을 접다 우리를 발견한 J오빠는 곧장 빵터졌다.
"너네 우산 따로 쓰고 왔어?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무안해져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니까요. 왜 저러나 좀 물어보세요."
남편은 구구절절 왜 따로 쓰는지에 대해 설명했으나 나머지 3인은 어깨에 떨어지는 비의 양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았다.만날 때마다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우리 사이엔 왜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2차 장소로 이동하려고 식당을 나서는 찰나. 갑자기 남편이 슥 다가왔다. 우산을 펼치더니 내 어깨를 감싼다.
"뭐야, 왜."
내 우산을 펴려 하니 남편은한사코 본인 우산을들이민다.
"같이써 ~"
아까보가 비가 더 세게 쏟아지는데.. 하필 지금 안 하던 짓을 한다.그 작은 우산을 이제 와서 왜 같이 쓰자는 건지.
"아 진짜갑자기 왜 그래?"
놀게 된 내 우산이 신발 위로빗물을 뚝뚝 흘릴뿐이었다.
집에 오는 길. 형부부의 다정한모습에서 뭔가 느낀 건지 궁금해졌다.
"근데 아까 왜 그랬어??형네 부부 예뻐보였지?"
아니나 다를까 진지한 얘기는 못견디는 그는 바로 도망칠 태세를 취한다.
"아 무슨 우산에 의미를 부여하냐~~"
촐랑대며 앞서뛰기시작하는데어느새전화기를 꺼내찍고있는나. 철딱서니와 어처구니가 골고루 없는 행동으로 오늘도 나를 웃게 하고 있다.우산을각자 쓰고 평소 대부분 서로 다른 언어를 쓰지만 웃음만큼은 꾸준히, 열심히 우리 사이를 채운다.
반품도 못 할 거(?) 예쁘게 바라보자. 우리 사이의 공용어, 웃음을 질리도록 많이많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