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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fovator Jun 04. 2020

ep01. 우리가 바라는 건 별게 아닙니다

출국, 그리고 Jason의 충격적인 폭탄선언

2019년 8월 5일.


Jason과 내가 드디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날이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가려면 무려 14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뉴욕과 서울은 대략 13시간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만 했다. 그래서 출국 전 날, 나는 일부러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앞둔 사춘기 중학생 소년처럼 설레는 마음에 잠자리를 뒤척였던 것은 아니다. 그저 비행기에서 잠을 많이 자 놓아야만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질 빡센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2시간 정도 잤을까? 행여 늦을세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지친 몸을 공항버스에 실었다. 몸이 누적된 만성피로를 이기지 못했는지 공항리무진의 넓은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머리를 떨구었다. 그렇게 한참을 졸았을까?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있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나는 회사 업무에 시달렸다. 8월은 특히나 워낙 바쁜 시기였고,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들을 각개전투로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가올 여정에 설렐 여유 조차 없었다. 심지어 출국 전날까지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야,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비로소 '여행'에 집중하며 기지개를 켜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캐리어 바퀴가 공항의 아스팔트 길을 긁는 시끄러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하지만 그 소음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게 들리던지 내 가슴이 박자를 맞추며 빠른 속도로 쿵쾅거렸다. 캐리어와 길바닥의 마찰로 비롯된 미세한 진동이 손잡이까지 타고 올라와 손가락 뼈 끝을 울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행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한껏 들뜬 목소리로 Jason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저 멀리서 Jason의 모습이 보였다. 흐릿하게나마 그의 형체가 눈에 들어오자 나는 신나게 손을 흔들며 "여기야 여기!"라고 외쳤다. 나와 마찬가지로 신이 난 Jason은 발걸음마저 가벼워 보였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탑승수속을 위해 티켓팅을 하고 캐리어를 부쳤다. 비행기를 몇 번 타본 적이 없는지라 은근히 긴장되었다. 탑승수속 절차를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피곤한 몸은 내게 카페인 섭취를 요구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사서 유리창 너머로 비행기가 보이는 창가 벤치에 앉아 한참을 떠들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잠깐 정적이 흘렀다. Jason은 미리 준비한 것처럼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꽤나 진지한 어투로 목소리를 깔며 나에게 말했다.


"Heath, 나 사실 너에게 고백할 게 있어." (내 영어 이름은 Heath이고 Jason은 나를 '희쓰'라고 부른다.)


"나 이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길 것 같아. 뉴욕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



비장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Jason의 표정을 바라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누구보다 Jason의 성격과 성향을 잘 아는 베스트 프렌드로서 그의 소식은 진심으로 축하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자주 볼 수 없게 된다는 서운함과 그동안 내가 그를 잘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뒤엉켜 머리와 가슴을 때렸다.


Jason은 나의 입사동기였다. 본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 그는 입사 2년 반 만에 대기업이라는 우산 밖으로 나오겠다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퇴사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한 외국계 스타트업 브루어리 브랜드로 이직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크래프트 비어를 다양한 유통채널로 납품하는 영업관리직이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저 '그 일이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Jason은 본인이 새롭게 맡게 된 업무와 보다 자유로운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금방 적응하여 즐겁게 일을 했다. 비록 수입은 기존에 비해 훨씬 많이 줄었지만 그는 이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되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따라간다는 자신감이 그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국내 크래프트 비어 업계의 업황은 썩 좋지 않았다. 그렇게 본인의 진로에 대해 또 한 번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Jason은 또다시 남몰래 이직을 준비했다. 그리고 결국 Jason은 뉴욕에 있는 스포츠 브랜드 유통업체로 두 번째 이직을 하게 되었다.


Jason과 나는 90년생, '밀레니얼 세대'다.

인구통계학적 세대 구분의 기준은 태어난 연도로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같은 기간 내에 태어난 동일집단에 어떤 명칭을 부여하여 통칭한다. 먼저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집단은 '베이비 부머' 세대로 일컫는다. 그다음 1964년에서 1979년 사이에 태어난 집단은 'X세대'라고 말한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이처럼 세대 간 공감대의 간극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지수를 의미하는 'X'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그다음 세대부터는 영문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를테면 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는 'Y세대', 그리고 1996년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Z세대'라고 부른다. 그중 특히 'Y세대'는 새천년의 시작에 걸쳐있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세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태어난 연도에 따라 집단을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각, 문화적 공감대, 가치관 등은 분명 살아온 외부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측면이 존재한다. 각 세대는 특정 역사적 경험을 서로 다른 생애 주기의 단계에서 각각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외부 환경에서 본인에게 최대로 효율적인 생존 전략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빚어나가기 때문에 세대 간 생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개발주의 역사 속에서 고성장의 시기를 겪은 베이비 부머 세대들은 은행 예금 상품에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만 해도 10%~20%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IMF를 겪으며 대규모 실업상태에 처했던 그들은 직장의 안정성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직장'이 자신의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 사항이라는 점을 몸소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베이비부머 세대는 '개인'의 삶보다 '집단'의 삶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622663&memberNo=39046504


반면 우리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다. GDP 경제성장률은 높아봐야 2~3% 수준이고, 심지어 자본주의 역사 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예측하는 비관적인 신문기사들을 자연스레 접하면서 자라왔다. 경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이비부머 세대 때와 달리 은행 예금과 적금 상품의 이자율은 극히 낮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이 아닌 필요의 측면에서 보다 효율적인 재테크 방법들을 찾아 나선다.


우리는 평생고용,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바라지도, 생각지도 않는다. 부모 세대가 겪었던 IMF와 달리 밀레니얼 세대가 경험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존의 구조조정이라는 개념을 철저히 붕괴시켰다. 극악무도한 경제상황 속에서 잘 나가는 대기업의 대리급, 사원급에서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뉜다. 먼저 한 축에서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잘릴 일이 없는 철밥통 공무원을 꿈꾼다. '공딩족'이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2016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서는 전체 취업 준비자의 40% (약 25만 7천여 명)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한 축에서는 고용 안정성이라는 신기루를 목숨 걸고 쫓지 않는다. 그들은 조직이나 소속 집단에 큰 정을 주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자의에 의해서 건 타의에 의해서 건 언제든 회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상사의 한 마디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죽으라면 죽는시늉을 해야 하는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혐오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바라보는 직장의 개념은 그저 잠시 동안 커리어를 쌓고 일정한 수입을 얻기 위한 일시적이면서도 단계적인 루트에 불과하다. 이처럼 밀레니얼들에게는 직장생활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가깝다.



그렇다고 밀레니얼 세대가 대충대충 회사를 날로 먹으면서 다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고용 안정성을 쟁취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용 안정성은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밀레니얼이 추구하는 고용 안정성은 실상 능력 안정성, 이직 안정성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욱 맞을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할 확률이 굉장히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능력을 극상으로 끌어올려 이직 시장에서의 몸값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현재의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역량을 개발시키는데 힘을 쏟는다. 그래서 그만큼 회사에 기여하는 바도 많다. 그런 점에서 밀레니얼 세대들과 직장의 관계는 '내가 회사에 기여하는 만큼 수입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일종의 거래적 관계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들은 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지는 N 잡러의 삶도 마다하지 않는다. 애초에 상황이 이러니 밀레니얼 세대들은 높은 연봉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일자리를 선호한다. 이것이 밀레니얼 세대가 고연봉 대기업을 포기하고 이제 막 신생한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이유다.


또한 밀레니얼은 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에 익숙하다. 먼저 부모세대 때와 달리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해졌다. 교육적 측면에서도 보다 양질의 고급 교육을 받아왔기에 밀레니얼의 외국어 능력 또한 이전 세대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문화적으로도 이미 완성된 세계화 시대를 향유하며 자랐기에, 외국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질긴 생존력과 적응력을 얻을 수 있었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KTX를 주축으로 한 국내 교통수단의 눈부신 발전은 지역 간 이동을 쉽고 빠르게 만들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실상 얼마 되지 않은 1일 생활권의 시대를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네트워킹의 측면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시스템에 '연결'될 수 있는 멋진 무기를 항상 들고 다닌다. 그 무기는 바로 스마트폰. 우리는 24시간 카카오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대화한다.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타인과 공유하고 서로를 엿본다. 이처럼 손가락으로 몇 번 터치하고 쓸어내리는 간편한 행위 만으로도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사에 있어 혁명적인 발전이다.


사실상 밀레니얼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다. 밀레니얼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안착한 첫 세대로서, 디지털 유목민 즉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이러한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한 후, 우리 세대를 '욕망은 부풀었지만 자원은 쪼그라진 세대'라고 표현했다. 정확하다. 절대적인 소득의 크기는 전 세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으며, 선택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넓어졌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의 크기는 대폭 줄었다.


'세대'를 의미하는 영단어 Generation의 어원 gener은 새로운 탄생과 변화를 의미한다. 작가로도 활동 중이신 문유석 판사는 그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고 말했다. 인간은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밀레니얼 세대인 90년생 Jason의 선택은 굉장히 합리적인 본능적 선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번듯한 대기업을 포기하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것도 모자라 아예 뉴욕으로 생활 기반을 옮긴 것은 아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선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외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행복과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저성장 시대, 고용 안정성이 아닌 능력 안정성을 추구하는 직업관, 잘 구축된 글로벌 인프라와 문화적/언어적 능력, 네트워크와 디지털 시대의 발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이직에 성공한 Jason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대표하는 표본이다.



나는 같은 밀레니얼 세대로서 Jason의 선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여행을 앞두고 듣게 된 그의 폭탄선언에 아쉽고 서운한 것은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나서 나는 진심으로 그의 행보를 내 일처럼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우리 밀레니얼 세대들이 세상에 요구하는 것은 별게 아니다. 그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이해의 한 마디다. "너희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 혹은 "나 때는 말이야, 너희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라는 식의 삐딱한 시각이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고 이내 입과 귀를 막고 소통을 단절케 한다. 그들이 우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그저 한 번쯤은 우리가 처해있는 경제적, 기술적 환경, 성장배경을 고려하여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뉴욕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Jason과 함께 떠나는 30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시간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밀도 있고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나누게 될 묵직한 주제에서부터 시답잖은 농담 하나까지, 서로의 얼굴과 표정 하나하나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시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서른 살, 뉴욕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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