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콧 속에는 L-튜브, 일명 콧 줄(비위관)이 끼워있다. 입을 통해 식사를 할 수 없는 환자의 코를 통해 관을 위까지 삽인한 후 뉴 케어(상표명)라는 액상 식사를 매일 3번 투여하는 것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양을 조절하는 데 간병인이 하는 주요한 업무이기도 하다. 식사도 잘하시고 외식도 가끔 즐기던 엄마는 4개월 전 급성 폐렴 증세로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간 후 열이 내려가지 않아 한 달여간 두 병원을 오간 뒤에야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사래가 걸린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 이후, 콧 줄을 끼웠다. 그것으로 인해 이전에 계시던 요양원으로 갈 수 없으니 요양병원을 알아보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특수 식사이기에 자주 발생하는 가래를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병원 통합 시스템을 통해 요양병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환자의 병력 치료과정이 서로 공유되기에 신청을 하면 병원을 연결해 준다. 하지만, 난 몇 군데의 병원을 알아보고는 한 간호사의 추천으로 지금의 요양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곧 콧줄을 빼고 식사를 하리라 생각했지만, 첫날 주 치의와의 면담을 통해
완전한 착오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냥 임의로 뺄 수도 없고 식사가 가능한지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를 위해서는 2달여간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떡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사망하는 사례를 종종 들었지만, 사래에 걸리는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미 2년 전부터 연유제를 드시고 계셨는데, 연유제란 음식이 폐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식사 보조제다. 사래증상의 원인을 찾아보면서 일상에서 가볍게 경험할 수 있는 사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죽음에 대한 경고임을 알게 되었다. 대재난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한 두 가지 전조증상처럼 말이다.
식도가 막히면 죽음의 카운트 다운(count down of death)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식도 즉, 음식의 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인체의 신비 중에 하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 의료기기의 발달로 인해 콧줄로 연명하여 10여 년 더 살기도 한다. 이건 분명한 연명치료에 속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연명치료에는 속하지 않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콧 줄을 삽입한 것이다. 물론 환자 당사자인 엄마의 동의와 참여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과정이었기에 이러한 선택을 한 엄마의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하여 의구심은 있지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다. 당연히 죽음 앞에서는 연약해지고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테니까. 문제는 그로 인해 엄마는 살아생전에 경험하지 못한 육체적 고통을 오랜 시간 이겨내고 버텨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외마디: 살아있는 게 지옥이다!
요한계시록( Rev ) 9장
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6. During those days people will seek death but will not find it; they will long to die, but death will elude them.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입에 넣을 수 없는 상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이러한 상황이 지옥이 아니겠는가! 물 한 모금 원하는 엄마에게 거즈에 물을 적혀 드리고자 했지만, 거즈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고 말하는 젊은 간호사는 당차게 "의료인의 양심과 책임으로서 해 드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의료인이라! 사실, 의료 통역사 검증시험을 위해 의료법을 공부하였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의료인이란 말을 너무나 단호하게 언급하자 그들의 책임감이 크게 다가왔기에 더 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그 후 한 두 달간은 물 한 모금드리지 못했다. 그로 인한 고통은 보는 자나 겪는 자나 서로 바라보면서 할 말이 없는 상태가 된다. 엄마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성경 구절이 있다.
예레미야 애가서(the lamentation of Jeremiah) 3장 6절.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 He has made me dwell in darkness like those long dead. )
사실 의료인이 이러한 소극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환자나 보호자들의 소송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다. 그 후에 다른 간호사의 말을 통해 환자의 요양을 위한 간호보다는 사실은 자신들의 신변보호가 먼저였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행여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예상해 물 한 모금 주지 않는다는 것은 환자의 진정한 요양을 위한 간호라 할 수 없다.
[의료법 2조에 의하면,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②의료인은 종별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1.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5. 간호사는 다음 각 목의 업무를 임무로 한다.
가.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위의 법을 참조한다면 간호판단에 따라 물을 마실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 외에도 식도가 아닌 폐로 음식이 넘어갈 때 발생할 수 있는 폐렴의 위험이 있기에 그런 단호한 태도를 취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후 2개월간 폐렴 재발로 인해 두세 번이나 항생제 투여 외 여러 긴급한 조치를 받아야만 했다. 물 한 모금 마셨다 할지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는 생각이다.
한 달 전 주치의를 통해 엄마의 폐 기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후, 입을 통해 물과 곱게 간 과일 그리고 꿀을 드리고 있다. 그때마다 엄마의 표정은 상기되고 행복한 미소까지 지으신다. 그러면서도 "너무 달아!"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 미각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아직도 건강을 챙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식도의 기능이 멈추고 미각이 사라지기 전에 실컷 먹고 단식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길이 진정한 죽음에 이르는 방법이 아닐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든다.
엄마는 아빠의 경험을 토대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였기에 자식들도 이에 동의를 하였다.
엄마의 경우, 중환자실에 있을 때 구두로 동의를 하고 서류에 사인하는 형식을 취했다. 아마도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 환자와 보호자들 그리고 의사의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로부터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았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위의 정보에 의하면 엄마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의약품과 의료 기술을 이용해 연명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 하나가 L-tube인 것이다.
현대 의료기술이 보통의 자연적인 죽음을 막고 있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위장과 소화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다가 식도 주변 근육이 약해지면서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자연사다. 얼마간 식사를 잘하지 못하다가 단식(fasting) 함으로 죽음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존엄사. 이것이 바로 노화로 인해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한 조물주의 축복인 것을... 그 축복을 역행하는 저주가 바로 콧 줄이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위암 말기로 6개월 후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자마자 수술과 치료를 아예 포기한 채, 남편과 내가 집에서 간호를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전신에 쑥 틈을 해드리며 마사지를 해드리면서 성경을 읽어 드리는 것이었다. 한두 번 간호사이신 형님이 오셔서 링거를 놓아 드린 날이면 온몸이 부어오르는 증상을 겪곤 하셨다. 처음에 오셨을 때만 해도 좋아하시는 꽃게탕을 끓어드렸지만, 점차 식사를 하지 못하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종 전 한 2주 정도 시골집에 가고 싶어 하시더니 그곳에서 임종소식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임종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식음을 전폐한 어머니 앞에서 밥을 먹는 것이 내겐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They loathed all food and drew near the gates of death. '(시편 107:18)
입으로 음식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음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통해 배우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시점이 되니까.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세상의 온갖 영화를 누린 지혜의 왕인 솔로몬은 이미 깨달은 바를 선포하듯이 외치고 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자기 혼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도다. 내가 이것도 보니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There is nothing better for a man, than that he should eat and drink, and that he should make his soul enjoy good in his labour. This also I saw, that it was from the hand of God).' (전도서 3:24)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Lord's Prayer) 중에 한 구절이다. 평상시 아무런 감흥 없이 하던 기도이지만, 요즘은 이 구절에서 울컷하곤한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수고하는 인생들과 물 한 모금 입으로 마실 수 없는 가련한 인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또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참고: [환자의 의향에 따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이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으며, 환자 가족들은 심리적 혹은 사회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 효과 없이 임종하기까지의 기간만 연장하는 의료 시술을 뜻한다.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둘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받은 등록기관을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작성 및 등록해야 한다. 가까운 등록기관이 어디인지는 연명의료정보포털(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는 비용이 들지 않으며, 본인 확인을 위해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되어야만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 의향서를 작성한 지 15일이 지난 뒤 연명의료정보포털을 통해 자신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조회할 수 있으며, 신분증을 지참하고 가까운 등록기관에 방문해서도 조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