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육체의 죽음을 받아들이자 Naked Body
공수래공수거 Empty-handed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인해 급히 잡았던 건강검진을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며칠 연기했다. 그 정기 검진에서 난 위 내시경 검사를 패스했다. 몇 년 전에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약 부작용으로 고생한 기억이 나서다. 요즘은 수면 내시경으로 인해 편안하게 합법적으로 숙면을 취하도록 해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난 수십 년 간 매년 하던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이다. 그 외 평상시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유방 검사와 안압검사, 그리고 백내장 검사를 패스했다. 나의 몸을 더 이상 타인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이자 현 의료시스템에 대한 보이콧이기도 하다. 아무튼 난 이렇게 내 몸에 대한 자유의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은 내가 쥐고 의사와 의료 사업 중심으로 굴러가는 병원 시스템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런데, 한 줌의 흙으로 변해버린 엄마를 땅에 묻은 지 열흘 째 난 속이 쓰려 잠에서 깨었다. 위 내시경 검사를 할걸 그랬나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스쳐가면서 시어머니의 죽음이 문뜩 떠오른다. 마치 25년 전 시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은 후 나의 집에 오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증상과 흡사하다.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고 지내다가 어머니가 죽은 후 위 내시경 검사를 하였다. 수면 내시경이 없었는지 아무런 권유를 받지도 못한 채, 눈물과 침을 줄줄 흘리며 검사를 받았다. 그리 힘든 검사라는 것을 의사가 말했다면, 나는 결코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도 어머니에게 해드린 꽃게탕을 먹을 때마다 속이 쓰리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그때와 똑같은 증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가 죽기 전과 후, 나의 일상은 동일하다. 하지만, 내 몸은 내 육신은 속 쓰림과 눈물이라는 증상으로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아픕을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 죽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울부짖는 욥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처럼 말이다.
욥기( Job ) 1장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1. and said: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22. In all this, Job did not sin by charging God with wrongdoing.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것은 시어머니의 죽음이다. 위암 말기로 진단을 받은 지 6개월을 넘기지 못한 69세 된 시어머니. 시골 병원에서 위 내시경을 한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 엄마가 위암 말기라네...
나: 집으로 모시고 와요!
종종 위가 아프다는 어머니에게 보약을 해드리던 남편에게 내시경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말에 어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것이다. 수술도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집으로 모신 후, 쑥 뜸을 하면서 안마를 해 드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려 했다. 하지만, 바로 몇 주일도 안되어 식사를 못하시기 시작했고 물만 마셔도 몸이 붓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연히 단식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어머니 앞에서 밥을 먹는 것이 괴로웠다. 어머니가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였지만, 칠순 잔치를 못한 채 추운 겨울, 선산에 묻혔다. 선산까지 가는 길은 옛날 스타일의 가마로 옮겨졌다. 어머니의 시신이 꽁꽁 얼은 차가운 땅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고 안타까워 땅을 치면서 울던 어린 새댁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설 떡국 떡에는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그렇게 난 사랑하는 이의 첫 죽음을 찐으로 경험했다.
11년 전 피부암에 걸리신 아버지는 6개월 정도의 투병기를 거친 후 죽었다. 비싼 오동나무 관에 담겨 군산에 있는 아빠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선산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는 석관을 사용한다 하여 석관으로 옮겨진 후 땅에 묻혔다. 두 번째로 죽음을 경험을 해서인지 어른이 되어서인지 시어머니의 죽음 때만큼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목에 삽입한 관으로 인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시다가 일주일 정도 고생을 하셨다. 마지막으로 만난 아빠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손가락으로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고자 하였다. 유언인가 했더니만 내 손바닥에 적은 것은 cof(coffee)였다. 몇 분의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난 알아채렸고 간호사의 허락을 받아 캔 커피를 면봉에 묻혀 혀에 발라 드렸다. 평소 커피를 즐겨하시던 아빠였기에 너무나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최근에 경험한 엄마의 죽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빼주지 않은 콧줄 때문에 내 속이 쓰린듯하다.
엄마의 입관식에서 본 엄마의 차가운 시신을 보니 콧 속이 헐고 찢어져있다. 그때까지 참았던 오열이 터졌다. 끝까지 콧줄을 빼주지 않은 의료인들에 대한 원망과 그렇게 내버려 두었던 나 자신의 무력감이 큰 탓이리다. 임종 전 며칠 전부터 임종의 때가 왔음을 알리는 임종면회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콧줄로 삽입하던 식사도 중단한 채 너무나 힘들게 숨을 들이쉬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이고자 콧줄을 빼 줄 것을 제안했지만, 단 칼에 거절당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고생하던 엄마의 마지막 순간, 얼굴과 몸이 시체처럼 되어가던 그 순간까지도 콧줄을 빼 달라는 내 소리를 의료인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새벽 2시. 오늘도 잠에서 깨어 시간을 보니 역시나 2시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인데, 엄마의 장례를 치룬지 열흘이 지났다. 난 매일 잠을자고 깨어난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듯 아침마다 눈을 뜨고 무의식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간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다. 엄마의 사망시간은 024년 7월 26일 오후 3시 8분. 엄마의 마지막 숨이 멈춘 시간이다. 몇 달 동안 엄마의 손가락에 끼워 놓은 혈압과 맥박을 재는 기계(Patient Monitor)가 멈추자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침상 옆에 있던 알람 시계도 엄마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임종일 날 아침 9시,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자마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의 말투를 들어봐도 때가 되었음을 짐작했다.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포화도와 맥박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승압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승압제는 혈압을 올리기 위한 링거형 약이다. 엄마를 병원에 모실 때 내 허락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아, 그 때 작성한 것이 이럴때를 위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부리나케 준비해 놓은 가방을 가지고 10시에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의 얼굴은 이미 시체처럼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압제로 인해 심장이 쿵쿵 뛰면서 몸과 호흡에 무리가 되는지 힘겨워하시는 모습이었다. 난 승압제 사용 중단을 요구했고 바로 들어주었다. 그 외도 엄마의 병상 주변에 여러 약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링거와 진통제 그리고 요로감염 항균제 등. 모두가 새로 갈아 끼운 듯 꽉 차있는 모습에 우리 형제들은 어이없어했다.
의사가 엄마의 죽음을 선고한 시각은 엄마의 육체적인 기능, 즉 바디 기능(body function)이 멈춘 시간이다. 가사상태(apparant death:외견상으로는 숨도 안 쉬고 심장도 멈춰 죽은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살아 있어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있는 엄마 옆에 있었지만, 6인실 침상이 있는 병실에서 오래 머물러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옆을 지나가는 주치의를 붙들고 엄마의 예상 죽음 시간을 묻자 12시간이 넘게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산소 주입을 중단하면 어떤지 조심히 묻자 바로 "의료법 위반"이라면서 얼굴을 붉힌다. 그 재서야 1인실로 옮겨 대기하라는 말을 하였지만, 실제 환자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할 병실은 없었다. 25만 원의 1인실 병실은 원래 꽉 차있어 대기를 해야만 했었기에 우리 형제들은 반나절의 시간을 병원 밖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기다려야만 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맥박 라인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다.
우리는 때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엄마의 인지 기능(person function)은 이미 멈춘 상태였지만, 살았다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의 마지막 숨쉬기는 힘들어 보였다. 뇌의 기능은 멈춘 듯 보였고, 체온도 차갑고 피부세포도 변해가고 있었지만,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기에 그 순간까지 기도를 하며 기족들은 엄마의 사망선고를 기다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의사가 바라본 죽음은 맥박이 온전히 멈추어야만 '사망'이기에 그런 듯하다.
그렇게 엄마의 사망 선고가 떨어지자 병원 장례식장과 상조회사에 부고를 알렸다. 그 외 회사와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의료인들은 어이없어한다는 것을 가톨릭대 호스피스의사 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라는 칼럼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채
추모는 뒷전이고 통화 소음과 과한 화환으로 가득 채우는 장례식장의 문화를 빗대어 체면을 중시하는 경박한 죽음 문화라 한다. 추모는 온데간데없이 숨이 멎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를 돌리기 바쁘다고 말이다. 임종 선언 의례 중간에도 전화를 하는 등 무심하게 살다가 임종 순간만을 지켰다는 체면과 화환등으로 자신을 인증하는 등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라고 쓴소리를 한다. 그 외 관, 수의 음식, 빈소 크기등 장례의 과정 곳곳에 체면을 자극하는 상업주의가 깊게 스며들었다고 한다. 그 외 체면 때문에 부모의 편안한 임종을 막고 상급병원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렇게 체면으로 점철된 한국의 죽음 문화는 한마디로 경박하다. 즉 이해가 얕다. 살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한 고민도 배움도 없기 대문이다. 죽음 문화가 경박할수록 우리의 마지막은 더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웰다잉(well-dying) 전도사로 활동하는 강명구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에 의하면, "장례식만 해도 부조금 낸 뒤 절하고 육개장 한 그릇 먹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인이 누군가의 가족, 지인인 줄 알고는 있지만 자신과는 특별한 관계가 아닌 경우도 많다. 즉 우리 장례문화는 '유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화이지 '고인 중심'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진정한 추모는 이뤄질 수 없다."
거의 매일 사망선고를 하고 지켜보는 의료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를 누가 만든 것인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지 그 답을 찾아보고 싶어 진다. 요즘의 신종병이자 온 가족에게 스트레스와 골병을 유발하는 병이 '간병'이다. 엄마의 간병기와 죽음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경험한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병원과 장례식장의 상업주의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망 선고를 받자 병원과 장례업체(상조회사)에 바로 연락을 해야만 한다. 그 후에야 시체를 옮기고 장례를 위한 절차를 밟게 해 준다. 심지어 화장터(양재 숲 예약도 빨리 해야하는데 그것도 상조업체를 통하니 빠르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체 하루 보관료가 100만 원이고, 엄마를 모신 상급병원(대학병원) 빈소(방)하루 사용료(70평)가 200만 원이 넘는다.
엄마는 4년간 요양병원 세 곳과 요양원 그리고 중환자실을 오고 다녔다. 요즘 말로 엄마는 '임종 셔틀'을 여러 번 타신 셈이다. 그동안 여러 검사와 진료 그리고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온갖 검사로 100만 원 이상의 비용과 300만원 이상의 치료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엄마나 나도 종일 밥도 못 먹고 의료진이 하라는 말에 복정해야만 했다. 심지어 퇴원을 앞둔 시각에도 화장실을 가야 하는 엄마를 붙들고 의료인들은 엄마의 발에서까지 채혈을 했다.그러한 엄마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었기에 마지막 임종은 이 요양병원에서 하기로 결정한 후 4개월 만에 육체로 사는 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5. For the living know that they will die, but the dead know nothing; they have no further reward, and even their name is forgotten.
죽은 자 즉 망자는 망자일 뿐이다. 죽은 시체 앞에서 추모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난 추모를 위해 그리고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식이나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죽은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물론 가끔 혹은 평생 기억하며 추억을 상기할지라도 그들의 이름은 잊어진다. 실제, 나도 내 시어머니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니 말이다. 난 죽은 자 나름의 소중했던 물건(유품)들이지만,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을 보면서 육신으로서의 삶은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짐을 경험한다.
롬 7:19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엄마의 초상을 치르기 전 요가 샘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평안'을 찾고자 요가를 시작했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몇 시간씩 몸을 수련하고 명상을 하지만, 평안이라는 아주 작은 감정조차 찾지 못한 셈이다. 난 내가 찾은 평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영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동물도 인간과 같이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 동물은 식물처럼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미리 만들어 준 생명체이지만, 짐승이나 인간이나 호흡이 멈추면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도서( Ecc ) 3장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8. I also said to myself, “As for humans, God tests them so that they may see that they are like the animals.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19. Surely the fate of human beings is like that of the animals; the same fate awaits them both: As one dies, so dies the other. All have the same breath ; humans have no advantage over animals. Everything is meaningless.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0.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육신의 생각'은 신체적 물리적 외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 바로 오감과 몸속 장기에 지배받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성경은 '영의 생각'으로 살라고 조언한다.
예수님이 말하길, "내가 평안을 주노니 이것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안이다. "
더 이상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생명과 평안을 얻는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통한 영적인 구원. 육체를 가지고는 살지만, 영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 육체의 죽음을 맛보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타인의 죽음이 아닌 나의 육체적인 죽음이 오늘 일어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영으로 사는 것(Living by the Spirit(롬 8:1))이다. 따라서 영으로 사는 것, 즉 성령과 함께 사는 것(Living with the Spirit)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나의 육체적인 죽음의 '비상 탈출구'인 것이다.
욥기( Job ) 10장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9. Remember that you molded me like clay. Will you now turn me to dust again?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0. Did you not pour me out like milk and curdle me like cheese,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1. clothe me with skin and flesh and knit me together with bones and sinews?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2. You gave me life and showed me kindness, and in your providence watched over my spi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