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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혜 Jun 21. 2024

[북토크] 조성익 작가의 <건축가의 공간 일기>

공간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브런치에 그 기록을 남기면서부터 나에게 '공간'은 여전히 가장 큰 화두이다. 그러나 실체가 너무나도 명확한 '공간'이라는 대상 앞에서 나는 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야 공간의 분위기를 사진에 잘 담아낼 수 있을지, 또는 글로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기록하는 일에 이유 모를 망설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그 대상이 ‘공간’이 되면 어렵게 느껴져요. 나보다 크기 때문이에요. 내가 맛보고, 만지고, 입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거꾸로 내가 그 속에 담기는 대상이라 그렇습니다.

I 24.06.07 롱블랙 공간 감상 수업 1 : 당신이 그곳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아시나요? 중
 


그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민의 원인을 발견했다. 프리랜서 커뮤니티의 한 멤버가 공유한 롱블랙 기사 한 편에서 말이다. 공간을 기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내가 공간 안에 담기는 대상이라 그렇다니. 이 사실에 아주 작은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보다 훨씬 거대한 '공간' 안에서 어떤 것을 먼저 보고 알아차려야 하는지, 그 순서와 방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카메라부터 들고, 손을 키보드에 얹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기사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간 감상'이라는 단어처럼 나보다 큰 공간을 기록하려면 그에 맞는 시선과 관찰이 선행되어야 했다.


나의 고민을 한 차례 덜어준 그 기사는 조성익 건축가의 신간 <건축가의 공간 일기>에서 비롯된 글이다. 기사를 통해 책을 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토크가 열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안고 참여했다. 인생 첫 북토크였다.


책과 북토크에 주된 화두는 '나만의 인생 공간 찾기'이다. 이 주제를 보면 "인생 공간을 왜 찾아야 할까?", "인생 공간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피어오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공간이 주는 힘과 인생 공간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일화에서 탄생한 저자의 인생 공간을 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직업이 건축가라 해서 대단히 유명한 공간만 추려진 건 아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찾았던 근처 성당, 저자가 자주 찾는 동네 바 등 유명세보다 공간이 기획된 의도와 그곳에서 느꼈던 저자의 감정에 보다 집중돼 있다.


저자가 그러했듯, 나의 상황과 감정을 '인생 공간'이라 불릴 만한 곳에서 돌아보고, 정리하고, 내려놓고, 때로는 타인과 나누기도 하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그러한 공간이 필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찾아가야 하는 곳보다 부담 없는 마음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 인생 공간에 리스트업 될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인생 공간을 찾는다는 건 내가 나를 더 잘 챙기기 위한 어렵지 않은 노력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인생 공간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여기서 저자는 '공간 감상법'이라는 4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먼저,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인 벽과 바닥, 천장을 살핀다. 어떤 소재인지, 색감은 무엇인지, 어떤 무늬로 그려져 있는지 보는 것이다. 그 후 가장 큰 가구부터 작은 가구까지 공간 안에 배치되어 있는 사물을 묘사하듯 본다. (① 공간 묘사)


그리고 공간의 내부 요소로부터 느껴지는 나의 오감을 곧추 세우면(②오감 안테나), 따뜻한 색감의 벽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거나, 소리가 울리지 않는 환경이라 집중이 잘 된다거나, 커피 향이 풍겨 마음이 들뜬다는 등 감정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③감정 관찰)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이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보면(④사람 관찰), 이 공간이 다시 찾고 싶은 인생 공간인지, 아닌지 그 척도가 명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즉, 공간 묘사 - 오감 안테나 - 감정 관찰 - 사람 관찰의 순으로 공간을 감상하고 그로부터 느껴지는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 공간 감상의 핵심이다.


이 방법대로 공간을 감상하다 보면 분명 공간에 대한 내 취향이 더 뾰족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까지는 단순히 인테리어나 가구, 조명과 같은 오브제들을 주로 봤었는데, 공간을 이루는 큰 덩이부터 작은 덩이,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까지 살핀다면 좋고 싫음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향의 이유를 줄 세우는 과정이 선행된다면 사진이나 글로 남기고 싶은 공간의 면면을 조금 더 좁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궁금했던 공간을 찾고, 감상하고, 기록하는 일이 앞으로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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