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19>
햇볕은 좋고 땀을 쏟아낼 정도로 덥지도 않은 것이 바람도 적당히 부는 그런 날씨.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호주는 그런 기분 좋은 날씨가 많은 듯하다.
어렸을 적 친구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가더니, 인생 한번 사는데 이런 날씨에 살고 싶다며 눌러앉아버렸다. 그 친구 덕에 호주 하면 화창한 날씨가 떠오른다. 실제로 내가 몇 년 동안 경험한 호주도 항상 날씨가 좋았다.
모두 호주 하면 어떤 것을 먼저 떠올릴까.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사막여행, 혹은 호주출신으로 유명한 휴잭맨 같은 할리우드배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호주 하면 어떤 것을 먼저 떠올릴까.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나는 호주가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다 할 이유를 나열할 수는 없지만, 호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 희한하게 생긴 동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호주 크루즈를 처음 시작하면서, 코알라 크루투어를 소식을 듣고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신청해 버렸다. 솔직히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지만, 몇 년에 걸쳐 호주를 왔다 갔다 했는데 코알라랑 캥거루도 못 봤다 하면 말이 안 되지 않나 싶은, 그런 웃기는 생각으로 신청한 투어였다.
론파인 코알라 보호구역
(Lone Pine Koala Sanctuary)
당시 정박한 도시는 호주 브리즈번이었다. 항구는 크루즈 전용이라기보다는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할만한 곳이었고, 시내까지 차 이동으로 30~4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뭘 하든 어딜 가든 멀리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항구에서는 배에서 나와 이동하는 버스에만 타면 알아서 다 해주는 크루투어가 제일이다.
버스에 올라타서 40분 정도 이동했다. 내가 탄 버스에만 크루가 30명 정도 타 있었는데, 모두들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날 생각에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뭔가 모를 의무감에 타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모두는 나를, 나는 모두를 신기해하며 웃고 떠들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 표를 끊고 들어가면, 갖가지 호주산(?) 동물들이 있는 구역 안내가 있다. 각 구역으로 이동해서 본격적으로 동물들을 만나기 전에 꼭 해두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1) 코알라 기념사진 예약
(2) 기념품 가게에서 캥거루 먹이 구매
이왕 갔는데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하기에 나는 고민하지 않고 했다. 내가 다시 코알라랑 캥거루를 보겠다고 이 시간과 돈은 안 쓸 테니 말이다.
(1) 코알라 기념사진 예약
성수기거나 주말에 가면 사람들이 몰릴 텐데, 코알라 사진은 추가상품으로 현장 구매예약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 입장하자마자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예약하고, 시간이 되어 해당 코알라 구역에 찾아갔다. 관심이 없던 내 눈에도 나무에 앉아있는 코알라들이 귀엽기는 했다. 둥글둥글한 것이 데굴데굴 굴러갈 것 같은 게 오밀조밀 모여있는데 만져보면 부들부들했다.
문제는.. 기념촬영이었다. 내 순서가 되어 아무런 걱정 없이 지정자리에 섰는데, 코알라 얼굴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고, 내 가슴에 안기기 위해 손과 팔을 뻗치는데 손톱이 내 얼굴을 칠 것만 같았다.
순간 무서워서 큰 소리를 질렀는데, 바로 직원한테 코알라 놀란다며 등짝 스매싱과 함께 엄청 혼났다. 코알라가 먼저야 사람이 먼저지 하며,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을 쳐다보며 구시렁거리려 하는데.. 그 순간 더 큰일이 일어났다.
둥글둥글 말려있던 몸이 펴지면서 내 몸통보다도 커다란 코알라를 직원이 내 가슴 앞에 손 위에 갖다 얹혔다. 코알라는 무섭고, 소리는 못 지르겠고, 숨은 못 쉬겠고, 근데 사진은 찍어야 했다 ㅋㅋ
코알라한테 죽기야 하겠어 하면서 사진만 생각하자 하며 참았던 그 1분도 안 되는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고 무서웠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래도 그 순간을 참아서 남길 수 있었던 사진을 보며 뿌듯하다 ㅎㅎ
코알라 클리어 했으니 캥거루가 남았다.
(2) 기념품 가게에서 캥거루 먹이 구매
동물과 접촉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너 봉지는 사야 할 것이다. 공원에서 굶기는지.. 내가 만난 애들은 아주 후딱 다 먹어치워 버렸다.
그림에서 보던 캥거루는 노랗고 주황빛도는 갈색 털이었고, 그 주머니에는 귀여운 아기 캥거루가 들어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누런 건지 하얀 건지 한 팔다리 긴 동물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캥거루들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도 않고 아주 익숙하고 편안하게 누워있거나 가만히 있거나 먹이를 먹곤 했다. 친구들 모두 흥분해서 다가갔는데, 나는 멀뚱히 그 광경을 쳐다보다 캥거루 클리어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코알라도 떠오르는 데다가 캥거루 덩치가 커서 쳐다만 보고 있으니, 이렇게 만져라 이렇게 먹여라 다들 잔소리 한가득이었다. 그래도 코알라처럼 내 위에 올라타는 것은 아니니 하면서 꾹 참고 사진만 생각했다.
코알라랑 캥거루 외에도 여러 동물들이 있다. 커다란 공작새가 잔디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자그마한 동물들이 어슬렁 거리기도 한다.
동물원이나 수족관도 잘 안 가는 나로서는, 호주의 코알라와 캥거루를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 것이기에 다시 생각해도 그저 뿌듯하다. 혼자서 또 갈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ㅎㅎ
화창하고 기분 좋은 날씨의 호주 브리즈번을 방문했다면 한 번쯤은 가볼 만한 장소이다. 특히 코알라와 캥거루를 안 만나봤다면, 심지어 동물을 좋아한다면, 호주 여행 중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