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18>
요즘 여름휴가철이라 주변에 바닷가, 계곡, 워터파크 등으로 물놀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을 오히려 즐길 방법을 찾았다. 지금에라도 다시 가고 싶은 크루즈 승무원 시절 물놀이의 현장으로 타임머신 여행이다. 3편에 걸친 나만의 물놀이 휴가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닷속을 통째로 전세 내서 놀아버린 바다 액티비티 이야기다.
크루즈 승무원의 특권 중 하나인 크루 투어라는 것이 있는데, 크루즈 내에서 승객들에게 판매하는 기항지 관광을 직원할인가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특권은 특별한 경우에만 있는데, 있다고 해도 신청은 선착순으로 소수만 받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기항지 관광이라는 것 자체가 직원이 아닌 승객을 위해 운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다가 다수의 크루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가 있는데, 퀸 엘리자베스의 경우에는 활동적인 액티비티가 주요 상품인 경우이다.
각 크루즈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럭셔리하고 클래식한 것이 컨셉인 큐나드는 대부분의 승객이 50~90대이다. 그리고 크루즈 및 다른 여행 경험이 많은 승객이 대다수이며, 심지어 단골 승객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 활동적인 액티비티가 포함된 기항지 관광이 딱히 인기 종목은 아닌 것이다.
그럴 때는 크루들에게는 꽤나 쏠쏠한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호주 퀸즈랜드 케언즈 (Cairns, Queensland, Australia)에서의 투어가 그랬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해양 공원
(Grear Barrier Reef Marine Park)
이름 그대로 커다란 산호초, 그것도 약 2,300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이다. 이 산호초는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을 한 약 2,900개의 산호초와 약 900개의 산호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1,500종 이상의 물고기, 400종 이상의 산호, 3,000종에 달하는 연체동물, 6종의 바다거북, 30종의 고래 등, 아주 다양한 해양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있는 천연 보물이다.
이 해양 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코 바닷속 액티비티, 바로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이다. 둘 중 하나만 해도 즐거운데, 이 투어에서는 둘 다 가능했다.
당시에 승객들이 꽤나 신청을 안 했는지 꽤 많은 크루들에게 신청을 받았고, 물론 직원할인가도 있었다. 투어 당일 집합장소에는 70% 정도가 크루들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해양 공원, 즉 바다의 어딘가로 향한다는 뜻이다. 출발을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 육지에서 선박으로, 크루즈 같은 큰 선박에서 작은 선박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퀸 엘리자베스에서 텐더 보트를 탈 때처럼 물 위의 갱웨이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우리를 바닷속 액티비티로 안내해 줄 썬러버 리프 크루즈 여행사의 작은 선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양 공원으로 출발하며 점점 멀어져 가는 퀸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30분은 넘게 이동했는데, 기대에 가득 차 친구들이랑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착한 곳은 역시 바다 한가운데 어딘가였다. 작은 선박에서 또 한 번 물 위의 갱웨이로 이동하면, 거기에는 물 위의 단체 탈의실이자 휴게소이며, 바닷속 액티비티를 하기 위한 플랫폼 같은 것이었다.
미리 수영복을 입고 갔기 때문에 간단하게 겉옷만 탈의하고, 여행사에서 나눠주는 잠수복을 위에 입었다.
먼저는 스노클링 순서였다. 준비되는 대로 플랫폼에서 바다 방향으로 이동하면 계단이 있고, 내려가면 수면과 접해있으면서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거기서 오리발과 물안경 등을 장착하고 바로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스노클링 전용 물안경을 쓰는 것은 처음이라 물속에서 숨 쉬는 방법이며 물안경 닦는 방법을 연습해야 했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신비했다. 너무 재밌어서 바다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아쉬운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음은 스쿠버다이빙 순서였다. 스노클링도 그렇게 좋았는데, 이건 얼마나 더 좋을까 싶은 기대에 부풀러 준비장소로 향했다.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인스트럭터가 안전을 위해 2인 1조 구성을 맞춰줬다. 이상하게도 친한 친구가 아닌, 서로 인사만 하는 사이였던 크루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그것도 안정상의 이유로 서로 팔짱을 껴야 하는데 말이다.
준비장소에서 산소통 사용법을 익힌 후에, 비교적 얕은 바닷속 준비구간으로 내려갔다. 조금 전에는 되던 산소통 사용이 잘 안 되니 엄청 겁이 나기도 했다. 서너 번 정도 실패하다가 성공했고, 그때부터 얼굴만 아는 짝의 팔뚝을 엄청 세게 붙들기 시작했다.
이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고, 한동안 바닷속을 누비며 귀엽고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을 만나기도 했고, 신기하게 생긴 산호초들을 구경했다. 스노클링과는 다르면서 뭔가 훨씬 더 신비한 경험이었다.
엄청 신기하고 재미난 경험이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솔직히 무서워지기도 했다. 그럴수록 짝의 팔뚝을 더 세게 붙들 수밖에 없었다. 민망함이 없지는 않았지만 옆에 짝이 없으면 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바닷속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준다고 해서 겨우 안 무서운 척하며 눈을 부릅뜨기도 했다.
바닷속에서 인어가 된 것만 같았던 신비하고 특별했던 시간, 심지어는 깊은 곳에서 느꼈던 공포감과 짝의 팔뚝을 오랜 시간 너무 세게 붙든 나머지 손이 저리기까지 해서 크게 웃었던 순간까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크루즈 승무원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물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