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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크루 Jul 29. 2023

통째로 빌린 섬에서 혼물놀이 해봤니?

크루즈 승무원의 일상 <기항지 편 ep. 17>


요즘 여름휴가철이라 주변에 바닷가, 계곡, 워터파크 등으로 물놀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을 오히려 즐길 방법을 찾았다. 지금에라도 다시 가고 싶은 크루즈 승무원 시절 물놀이의 현장으로 타임머신 여행이다. 3편에 걸친 나만의 물놀이 휴가다.




첫 번째는 통째로 전세 냈던 바닷가, 아니 섬의 이야기이다.



컨플릭트 아일랜드, 파푸아뉴기니
(Conflict Islands, Papua New Guinea)



파푸아뉴기니는 호주 위에 인도네시아 바로 옆에 위치한 오세아니아 국가이다. 600개 이상의 아주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로, 1975년경 호주로부터 독립했고 인구가 900만 명 정도이다.


오세아니아 크루즈 중에 파푸아뉴기니에 갔는데, 라바울 (Rabaul), 알로타우 (Alotau), 키리위나 (Kiriwina), 컨플릭트 아일랜드 (Conflict Islands), 총 4곳의 기항지를 경험했다.



오세아니아 국가, 그리고 파푸아뉴기니 지도 (출처: Ezilon, Adobe Stock)



그중 하나인 컨플릭트 아일랜드는 투쟁/분쟁/갈등을 뜻하는 섬의 이름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지는 기항지였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이름에는 흥미로운 의미가 담겨 있었다. 1886년 해도 작성을 위해 항해하던 영국선 The Conflict가 이 섬을 발견했고, 그래서 그 이름을 따서 섬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2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섬은 평소에 30명 정도밖에 거주하지 않는 섬으로, 인공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고자 존재하는 듯한 곳이었다. 분쟁이라는 섬 이름 뜻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수정같이 맑고 푸른 바다, 강청색 석호와 암초, 녹색 초목, 설탕처럼 부드러운 모래 등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온한 곳이었다.



컨플릭트 아일랜드 위치 및 항공샷 (출처: Daily Mail, Vladi Private Islands)



언제 봐도 좋은 매일 봐도 좋은 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 승무원이지만, 물속에 몸을 담그는 물놀이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자 재미이다. 당시 섬에 아무것도 없지만 해변가는 끝내준다는 정보를 듣고 물놀이 복장을 하고 하선했다.


바다에 접한 작은 섬이기 때문에 품체가 큰 퀸 엘리자베스는 멀직히 바닷속에 닻을 내리고 작은 구명보트로 섬까지 이동하는 텐더링 포트였다. 기항지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항상 제한적인 크루즈 승무원에게 솔직히 텐더링은 반갑지 않다. 하지만 이 섬에서 만큼은 수정 같은 바다 위의 우아한 엘리자베스 모습이 잊을 수 없는 그림 같은 추억을 선사했다.



섬에 들어와서 보이는 퀸 엘리자베스
텐더링 부두와 우리들의 지키미 시큐리티 동료들
섬 입구에서 찍은 퀸 엘리자베스와 부두 모습



퀸 엘리자베스가 앵커링한 이날 이 시간만큼은, 컨플릭트 아일랜드는 오직 우리 승객 2천 명과 직원 1천 명 만을 위한 곳이 된다. 섬이 통째로 다 우리 것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진정 “플렉~스“ ㅎㅎ


텐더보트에서 내려서 부두를 걷는데 알 수 없는 노래와 악기소리가 들려왔다. 섬사람들의 환영무대 같은 것이었다. 정글 원주민이나 인디언 영화에서나 볼법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우리가 섬에 머무르는 동안 계속 노래를 불러주었다. 기분 좋은 바닷소리와 바람소리와 함께 오묘하게 섞여 들리는 노래가, 섬에 있는 내내 딴 세상에 있는 듯한 즐거우면서 신비한 기분을 유지하게 했다.



섬 입구에서 보이는 광경과 섬 사람들의 우리만을 위한 공연



섬 입구를 기준으로 좌우로 길이 나있는데, 왼쪽은 언뜻 봐도 기다란 해변가로 되어 있는 듯하여 오른쪽을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갖가지 녹색의 초목 사이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터미널이라고 이름 지어 자연의 자재로 지어 올린 집모양의 휴게소 같은 것이 있었다. 군데군데 있는 몇 안 되는 모든 건물들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초목이 무성한 길을 지나니 뭔가 여기다 싶은 장소에 이르렀다. 나무 사이로 내려가면 사람들도 없는 것이 혼밥이 아니라 혼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모두들 길게 빠져있는 해변가 쪽으로 향한 터라 반대쪽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내 감이 맞았다ㅎㅎ





바닷물이 이보다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혼자서 첨벙첨벙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컷 혼물놀이를 즐기고는 친구들이랑 약속한 시간에 맞춰 섬 입구 쪽으로 향했다. 이런 오지 같은 곳에 오면 어떤 먹을 것이 있나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너무 열심히 혼물놀이를 한 덕에 배도 고파졌고 하여 뭔가 사 먹어 보기로 했다. 특별한 것을 굳이 꼽자면 코코넛 주스가 있었고, 나머지는 육지에서 사 온 냉동식품과 캔맥주 등이었다.





다 같이 긴 해변가 쪽으로 향했다. 곳곳에 승객들과 동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우리밖에 없는 데다가 길게 뻗어져 있는 해변가라서 전혀 복잡하지 않은 것이 그저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나무로 지은 독채 리조트 같은 것도 몇 채 있었는데, 다이빙이나 스노클링, 카약, 스탠드업 패들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며 휴양할 수 있는 장소인 듯했다.





물놀이도 할 만큼 했으니 다시 배로 돌아가야 한다. 승객이며 직원이며 할 것 없이 물놀이의 흔적과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 채 텐더보트로 향했다.


텐더보트가 오래 타면 답답하기는 하지만 좋은 점이 있다. 커다랗고 우아한 엘리자베스를 향해 바다 위를 달리며 가까이 다가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달려도 좋은 바다, 그리고 언제 봐도 좋은 엘리자베스
텐더보트가 엘리자베스에 도착해서 내리는 모습



컨플릭트 아일랜드는 열대낙원이자 한적한 휴양지였다. 오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었다. 해양생물도 풍부해서 어떤 액티비티도 가능한 바닷속이었다. 남태평양의 꼭꼭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었다.


그런 섬을 통째로 빌려 놀 수 있다니 크루즈 승무원이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물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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