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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Dec 05. 2021

사랑은 영화처럼, 이별은 책과 같이

01. 난 사랑과 맞지 않아

"언니,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은수는 엄마의 품을 떠나, 홍콩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이것저것 챙기며 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다, 핸드폰을 끄기 전 네이버 카페를 뒤적거리며 홍콩 여행 커뮤니티  '포에버 홍콩' 카페를 가입했다. 2016년, 난생 첫 혼자 여행을 홍콩으로 떠나던 그때에는 그녀에게 주어진 책 한 권이 전부였지만 이젠 한 커뮤니티를 통해 모든 걸 해결하겠노라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녀가 홍콩을 다시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중경삼림'과 '아비정전', '첨밀밀' 덕분이었다. 그날, 그 시기에 왜 갑자기 홍콩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첨밀밀'을 보며 인생의 운명과 인연을 믿게 되었고, 그 역사적인 영화들이 쓰인 공간을 3년 만에 다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일종의 '성지순례'식으로, 그녀는 1일 차에는 '중경삼림'의 청킹 멘션, 2일 차에는 '첨밀밀'의 캔톤로드를 가고자 했다.


그녀는 작은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여, 홍콩으로 떠났다. 필름 카메라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던 그녀는 시류에 편승하며 무작정 인천공항으로 떠났고, 그렇게 3시간가량의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당장 가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이 부른 참사처럼, 6월의 홍콩은 습도와 온도가 대단했으며 통통한 체형 때문에 노출을 꺼렸던 그녀는 겪어보지 못한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여행을 오기 전, 그녀의 가방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바로 원태연 시인의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와 피천득 수필집의 '인연'이었다. 사랑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그녀는 첫째 날 밤, 원태연 시인의 시집을 읽다 오글거리는 문장을 볼 때마다 '키득'하며 웃었다. 다음 날엔, 숙소 앞 구룡공원에서 홀로 앉아 원주민들과 함께 아침체조를 하며 피천득 시인의 '인연'을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인연'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죽게 된다면, 글을 쓰고 있다가 죽고 싶다고.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던 김기영 촬영 감독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는 배가 고파졌고, '중경삼림'  금성무가 방문했던 맥도널드를 굳이 찾아갔다. 거기서 매번 맥모닝을 먹고, 책을 읽고,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너무 심심해졌다. 홀로 여행이 익숙했던 그녀는 맛집을 검색하러 들어간 홍콩 카페에 들어가다 '동행'을 구한다는 여러 문구를 보며, 생애 첫 '동행'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광경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 재밌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결국 그녀는 극단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6월 30일, 내가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동행하는 사람과 만날 것이다. 그럼 적절한 헤어짐을 고하고, 친해지더라도 "이만 가야 한다"라고 말하며 헤어질 수 있지 않을까.


둘 째날, 그녀는 카페에 게시물을 올렸고 두 남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민됐다. 한 남자는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이었으며, 한 남자는 나와 같은 날짜에 떠난다고 말하며 점심만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결국 처음, 연락 온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연락했다. 만나기 전, 그들은 간단한 카톡을 주고받았다.


"오늘 홍콩 날씨예요", "여기는 밥은 안 주고 마파두부밖에 안주네요", "내일 조심해서 오세요" 뒤떨 린 설렘과 함께 그녀는 은근히 마지막 날을 기다렸다. 벌써부터 그와 여행을 함께하는 느낌이었으며, 어떤 연유로 홍콩에 혼자 오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여러 상상을 했다. 얼굴도, 본 적도 없는 그를.


습도가 적절했던 날, 여자는 하버에서 그를 기다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 건물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그녀는 그를 처음 만나는 날, 빨간 반팔티 사이로 드러난 팔뚝살이 잘 보이는지, 하체를 가리려고 입은 청바지가 핏은 잘 맞는지, 화장은 지워지지 않고 잘 되었는지 등 엘리베이터 앞에서 십 분 동안 옷을 고쳐맸다. 그가 배를 타고 항구로 온다, 얼굴도, 만나본적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는 그가 온다,


그는 도착했다고 말했다. 시계탑 뒤, 흰 셔츠를 입고 우산을 쓰고 있었던 그는 깔끔히 머리를 넘기고 우리의 연애에 종종 등장했던 '크리드 어벤투스' 향기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홀로 홍콩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 왜 서운하지? 그렇게 그와 함께 '첨밀밀'의 캔톤로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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