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불쌍해진다야
‘사랑의 유통기한을 백만 년으로 하고 싶다’는 <중경삼림>의 금성무 속 대사를 보고, 코웃음을 쳤던 20대 중반의 나는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을 하고, 이 터무니없는 말을 끊임없이 믿고 싶어졌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봄날은 간다> 속 유지태가 했던 대사를 들으면, 이게 금성무 대사 마냥 순진무구한 말을 뱉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 테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랑은 변하지 않아, 사람이 변하는 거지’라는 대답을 하며 그를 안아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은수(이영애)이었던 적도 있었던 나는, 당연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상대에게 물었던 상우(유지태)였던 적도 있다. 보통은 이 관계의 정의는 둘 중 누가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한번씩 겪어봤을 문제가 아닐까 싶다. 20대 중반, 그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에 나는 상우였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를 견뎌하지 못해 결국 이별했을 때, 나는 우리의 사랑보단 ‘상황’ 때문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결론적으로, 사랑도 그에 따라 유통기한을 하루 앞두고 절절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냉장고 속 썩은 우유가 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은수였을 적엔, 끊임없이 상우였던 남자를 바꾸고 싶었다. “일 끝나간다고”라고 외쳤던 자동차 속 씬에서, “그래서 너의 미래와 계획은 뭔데?”라고 계속해서 돌려 질문하는 은수에게 별안간 대답하지 못한 상우의 모습에서, 나는 여러 과거 속 장면을 떠올렸다. 결론적으로 그에게 캐물었던 말은, 내가 상대에게 들었었던 말이기도 했다. 사소한 채찍질도, 책망도, 칭찬도, 울음도, 온전한 미래도 모두 나에게 부재했던 것이었기에, 동시에 그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세계에서, 한 사람의 세상을 놓아버리는 일은 보통 그렇게 끝이 나곤 한다, 감정보단 ‘현실’에서 말이다.
나는 은수가 상우를 온전히 사랑하진 않았다는 해석이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녀는 외로웠고, 아이 같은 그에게는 사랑이 필요했다. 소리를 통해 교감하고, 사랑하는 과정부터 헤어진 이후에도 서로를 끝까지 잡고, 놓고, 잡히고, 놓치는 과정들이 너무나도 세밀하고 현실적이었다. 어떤 20대 중후반 즈음에 사랑을 가져다가 은수, 상우로 만들어 놓고 그 단면을 본다면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신의 품에서 운전을 하던 은수가, 이젠 자신의 차를 몰고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갈 때.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음을 앎에도 후회 없이 붙잡을 때의 상우의 모습은 처 연하 다기보단, 그 이별의 토네이도 속에서 그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 직후는 누구나 힘들다, 상대방의 생각이 나고, 그와 걷던 길, 가게, 글, 모든 것들이 내 주변을 맴돌며 내 눈물샘에 수도꼭지를 틀어버린다. 상우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술을 마시고 그녀가 보고 싶을 땐 강릉까지 찾아갔다. 그런 상우에게 은수는 ‘나 사랑하긴 하니?’라는 말에 대답조차 않는다.
영화를 보며, 어떻게 나는 20대 내내 저렇게 한번 안 해본 거지? 싶다가도, 그렇게 해본 적도 있었지 하고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별 직후, 상대에게 “나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었었을 때가 있었다. 그럼, 그는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이후, 그 거지 같은 말을 어느 정도 믿게 됐다. 내가 이별의 토네이도에서 헤어 나온 뒤,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기꺼이 위쪽부터 달콤한 토네이도에 빠져들어 씁쓸한 끝을 봤을 때도, 이상하게 그때 그 문장을 떠올렸다. ‘시간이 약이다, 모든 건 지나간다’
누군가 한국 멜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앞으로 주저 없이 <봄날은 간다>를 꼽을 것이다. 20대 후반이 돼서야, 진정한 이 영화의 참맛을 알게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라면 먹을래?”, “자고 갈래?”도 아닌, 상우와 택시기사 친구와의 대화였다. 상우는 헤어진 뒤, 서울에서 자신을 강릉까지 데려다줬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 이별한 상황을 듣고, 술을 마시자는 친구의 제안에 상우는
“나 별로 취하고 싶지 않아, 나 술 취하면 나 기다릴 거 같아 그 여자가”
“상우야, 그 여자 잊어, 그 여자 할머니 됐다고 생각해봐”
“머리도 하얗고 주름살도 많고, 그렇지 않냐, 그런 생각하면 좀 도움 되지 않냐?”
나는 이 대사의 끝에서 상우가 “그래, 도움된다, 그 여자 이제 잊어야겠다”라고 말하며,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상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네, 그니까 불쌍해진다야”
할머니 된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불쌍해진다"라고 하는 대사가, 아직까지 상우가 은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제일 와닿았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상우가 그 순간의 이별에 대한 ‘힘듦’의 정신적 고통 속에서 이제는 빠져나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콧노래가 담긴 음악을 듣고도 웃을 수 있는, 그녀에게 다시 화분을 건네버리고 발자국을 떼지 않았음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마지막 장면에 고스란히 표현되어있다. 어쩌면, 다시 만난 은수가 상우 할머니의 선물을 챙겨줌에도 “할머니, 돌아가셨어"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말을 아낀 것 자체가 이미 은수의 손을 놓고, 온전한 이별을 스스로 끝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이별의 토네이도는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새벽 5시까지 2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반드시 모든 이별이 가슴 아프고 나쁘고 처연한 것일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산뜻한 걸음일 수 있거든요. 이게 토네이도 같은 거예요.
그 안에 있을 때는 여기서 나가는 게 절대 못할 일인 것 같고 나한테 이 사람이 마지막 사람일 것 같지만,
막상 그 토네이도에서 나오고 나면 또 그다음 토네이도가 싫어도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